피해자와 유족의 시간은 멈추고 법원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신당역 살인사건 4주기 연속기고] ③ 유족 대리 변호인의 소회

서울교통공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입사 동기였던 남성 직원에 의해 숨진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4주기가 되어간다. 비극의 반복을 막고, 젠더폭력과 괴롭힘 없는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담아 공공운수노조가 보내온 글을 싣는다.

2022년 9월 14일로부터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2022년 9월 14일 오전, 피해자분께 보낸 '내일 판결 선고 결과를 확인하는 대로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피해자분과 소통하던 카카오톡 방은 그대로 멈췄습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시간이 멈췄다'는 피해자, 유족의 이야기를 이 사건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머리로 이해했지만 가슴으로 이해하지는 못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에 머물러 그 슬픔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어 시간이 멈췄다고 표현하는 것은 아닌지 짐작해봅니다. 가족의 사망 그 자체로 큰 슬픔에 빠질 수 있는 일인데, 거기에 강력범죄 피해까지 있다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짧은 장례 기간, 장례를 치르는 것조차 큰 부담인데 수사에 협조하고 그 과정을 챙기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짧은 장례가 끝나고 피해자 유족은 재판에 참석하고 양형증인으로 출석해 재판부에 사건으로 인한 피해를 설명하며 미처 치르지 못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최근 피해자 유족이 양형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해 자신의 피해에 대해 재판부에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절차 지연 등을 이유로 탄원서로 제출하라는 답변을 듣기도 합니다. 진술할 내용을 A4 5페이지 정도로 정리해 진술해도 시간은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데 탄원서로 제출하라는 답을 들을 때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피해자 유족이 어떠한 마음으로 재판에 참석하는지, 그들로서는 엄벌 탄원을 하는 것이 사망한 피해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한 번쯤은 헤아려줬으면 하는 대목입니다.

피해자 유족이 재판에 참석하더라도 진술할 수 있는 기회가 피고인만큼 많지는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족은 그저 방청객과 다름없이 재판을 참관하고 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판사의 허가 없이 재판에 끼어들거나 피고인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 행여나 재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커 재판을 참관할 뿐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없어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간 언론 보도와 상관없이 모든 사건은 동일하게 처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지만, 신당역 살인사건은 사건 발생부터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되면서 피해자 유족 대리인으로 형사절차에 참여하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느꼈습니다.

법에서 정하고 있는 피해자의 권리라 하더라도 수사기관의 판단, 법원의 허가가 필요한 경우 절차 지연 등을 이유로 형사절차 참여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2차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형사절차 참여를 수월하게 하고자 피해자 유족이 피해자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고 피해사실을 스스로 공개하는 등 사건이 언론 보도가 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제가 유족의 대리인으로 진행한 또 다른 사건에서는 유족분께 '언론 보도가 됐을 때 보도 취지와 무관하게 제3자로부터 다르게 해석되거나 2차 피해가 생길 수 있게 되고 그것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방향이라면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유족의 의지와 상관없이 언론 보도가 되었고 그 보도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라면 그때 언론 인터뷰를 고려해보자'고 설명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형사절차에 참여하기 어려운 면도 분명 있었지만, 언론 보도를 활용하지 않아도 법원에서 제대로 판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제출한 의견서의 수도 상당했고, 양형증인으로 유족분이 진술도 하고 마지막 기일에는 피해자 변호사로서 발언 기회를 얻어 검찰의 구형 이후 피고인 최후 진술 전 진술을 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유족으로서는 어떠한 형량도 만족스러울 수 없지만 다행히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습니다. 2차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언론 보도를 활용하고자 하는 피해자 유족의 마음은 백번 이해하지만, 그에 앞서 피해자 유족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수사기관과 법원이 형사사법시스템이 공정하고 신뢰할 만하다는 믿음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피해자가 살아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면, 피해자 유족에게 만족할 만한 형량이란 없을 것입니다. 신당역 살인사건을 경험하기 전, 언론 보도를 통해 피해자 유족이 재판부를 향해 '당신 딸이어도 이렇게 판단했을거냐'며 울분을 토로하는 모습이 비춰졌을 때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법관이라면 자신의 딸이어도 동일하게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차가운 마음을 가지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을 경험하고 피해자 유족분께 '사형이 선고되는 일이 많지 않다, 특히 최근엔 찾아보기 어렵다'고 설명 드리면서도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는데 왜 그 대가는 생명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최종적으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지만 1심에서는 징역 40년이 선고되었습니다. 변호사로서 40년이라는 형량이 가볍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밖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당시 '이런 것이 법이라면 이런 법을 믿고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자'고 설명하며 돈을 버는 이 직업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변호사인 저조차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법원이 알아서 잘 판단해주겠지'라고 법원을 믿고 기다렸다가 생각보다 낮은 형량이 나왔을 때 강하게 울분을 토로하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판결문 속 범죄사실에 '사망하였다',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는 그 문구의 무게감과 이에 담긴 슬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슬픔이 수사, 재판 과정에서 계속 이어지고, 슬픔이 너무 커 법원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의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는 것도 알게 습니다. 법원의 판결은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판단이자 피고인이 행한 범행에 대한 무게를 결정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피해자 유족에게는 법원의 판결이 사건이 이제는 종결되었다는 인식을 하게 되는 신호가 되고, 이 사건을 어떻게 가슴에 담아둘 것인지를 정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사망한 피해자를 위해 남아 있는 가족으로서 최선을 다했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상황, 받아들일 수 없는 형량이지만 어찌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등 다양한 상황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법원의 판결이 유족에게 위안이 되기도, 또 다른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글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행여나 재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그저 재판을 참관할 수 밖에 없는 피해자 유족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2022년 9월 14일 이후 두 달여간 추모문화제가 이어졌고 수많은 시민들이 신당역 화장실 앞 추모공간에 찾아와 헌화와 애도의 글을 남겼다. ⓒ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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