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이 아니라 '평등'!… 노동·여성·청년이 만날 때 세상이 바뀐다

[노회찬재단 함께맞는비 포럼] 평등사회 실현을 위한 노동의 과제를 짚다

이념이나 정파를 떠나 누구든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이 점점 더 강화되는 추세임을 인정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반도체 관련 기업 주식 가격이 상승하면서 불평등의 정도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에 맞서 '평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더 약해지기만 한다. 얼마 전부터는 '평등'보다는 '공정'을 이야기해야 현실을 더 잘 알고 시대에 부합한다고 인정받는 분위기다. 그러나 주어진 경쟁이 얼마나 '공정'한지만 따진다면, 불평등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강화될 위험이 높다. 애당초 경쟁 자체에서 배제되는 더 많은 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공정'은 '평등'을 대체하기에는 너무 협소한 목표다.

하지만 이런 전반적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줄기차게 '평등'을 외치며 그 구체적 실현 방도를 고민해온 사회과학자가 있다. 바로, 사회학자 조돈문(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계급 문제를 연구한 E. O. 라이트 등의 영향을 받으며 세계 각국의 계급 구조와 노동운동을 비교, 분석해온 조돈문 대표는 2024년에 <불평등 이데올로기: 수저 계급 사회에 던지는 20가지 질문>(한겨레출판)을 내놓았다. 이 책은 '평등'이라는 말을 잊어가던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고, 특히 '흙수저' 계급론에 공감하는 젊은 세대에게 '공정'을 넘어 '평등'을 추구해야 함을 역설했다.

최근 조돈문 대표는 <불평등 이데올로기>의 후속편이라 할 또 다른 저작, <평등사회 프로젝트>(한겨레출판, 2026)를 발표했다. 600쪽이 넘는 이 대작은 단순히 불평등의 여러 양상을 강조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는 논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를 치유할 종합 처방을 제시한다. 단순히 좋은 정책을 나열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이런 정책을 실현해나갈 주체를 형성할 전략을 함께 제안한다. 책의 부제가 이 전략의 얼개를 명확히 밝힌다. "노동과 여성 · 청년이 만나면 세상이 바뀐다".

노회찬재단은 <평등사회 프로젝트> 출간을 계기로, 노회찬 의원이 '평화', '생태', '연대'와 함께 '제7공화국'에서 실현되어야 할 핵심 가치로 여긴 '평등'의 실현 방도를 찾고자 8월 19일, 저자 조돈문 대표와 '함께맞는비' 포럼 제19차 토론회를 가졌다. 특히 <평등사회 프로젝트>가 평등사회 실현의 주역 중 하나로 주목하는 '노동'에 관해 집중 토론하기 위해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을 지정토론자로 초청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저자는 1시간 10여 분에 걸쳐 책 내용을 열정적으로 소개했고, 김진억 본부장의 지정토론으로 시작된 토론 역시 40여 분의 시간을 꽉 채우며 내실 있게 펼쳐졌다.

▲조돈문 대표 ⓒ노회찬재단

스웨덴이 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조돈문 대표는 우선 한국 사회에 불평등을 조장하고 한국인들이 불평등을 묵묵히 받아들이게 만드는 대표적 이데올로기들을 분석한 <불평등 이데올로기>의 내용으로 운을 뗐다. 이 책은 의외로 다수 한국 시민이 '불평등은 없다'라거나 '불평등은 정당하다' 같은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 통계로 보여준다. 다만, 불평등을 체념하게 만드는 사고방식 중에서 '대안적 평등 사회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생각만은 동의 정도가 꽤 높다는 점이 확인됐다.

<평등사회 프로젝트>는 바로 이 가장 강력한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반박하기 위한 작업의 결과다. 정말로 평등은 현실에 뿌리내릴 수 없는 공허한 이상에 불과한가? 소련, 동유럽 국가들 같은 현실사회주의권의 붕괴로 '평등사회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됐는가? <평등사회 프로젝트>는 20세기에 모범적 복지국가를 건설했고 지금도 복지국가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스웨덴 사례를 중심으로, 이 물음에 단호히 '아니다'라고 답한다.

그래서 <평등사회 프로젝트>의 전반부는 '스웨덴'이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웨덴 사회를 한국만큼이나(혹은, 훨씬 더) 불평등이 심한 미국 사회와 비교하면서, 미국만 교과서처럼 떠받드는 한국 풍토를 비판한다. 그리고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 스웨덴 사회의 역사적 노력과 제도적 성과를 상세히 정리한다. 특히 스웨덴이 평등사회로 나아가는 데 기둥 역할을 한 독특한 노사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노회찬 의원은 "진보정당이 만들고자 하는 현실은 스웨덴 같은 나라"라고 말하곤 했는데, <평등사회 프로젝트>는 노 의원이 '스웨덴'을 거론한 이유를 명쾌히 설명해준다.

그러나 스웨덴의 노동과 한국의 노동은 다르다. 스웨덴 노동 세력이 20세기에 복지국가를 만들던 당시의 여건과 지금 우리의 여건 또한 다르다. 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21세기 한국에서 노동이 앞장서서 평등사회 건설에 나서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평등사회 프로젝트> 후반부는 이 물음에 대한 저자의 공들인 답변이다. 특히 제3부 "계급형성 과제와 노동의 실천"은 평등사회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노동운동이 실패한 지점이 무엇이고 혁신의 노력이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지에 관해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조 대표는 이 대목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조돈문 대표는 민주노총에 대한 비호감 정서가 대체로 보수 여론층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노동운동을 둘러싼 부정적 여론을 좀 더 분석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진보, 보수를 가릴 것 없이 다수가 기존 노동조합운동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는 연대임금제도 등을 통해 노동계급 연대를 실현한 스웨덴 노동운동과 극비 대비되는 모습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문제가 한국 노동운동이 넘어서야 할 가장 중대한 장애물임은 분명하다.

다만, 조돈문 대표는 민주노동조합운동이 이런 한계를 돌파할 가능성을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찾아보면, 최근 20여 년간 민주노동조합운동이 보편적 사회 이익을 실현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외환위기 직후에 철도, 발전, 가스 등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구조조정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사유화를 저지하는 데 앞장섰고, 덕분에 한국은 신자유주의 시기에 철도 등을 사유화한 다른 나라들이 지금 겪는 문제들에서 자유롭다.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사유화 반대' 요구에 '정리해고 반대' 요구만큼이나 진지하게 임했던 덕분이다.

또한 노동운동은 공적 의료보험이 자리 잡는 데에도 커다란 역할을 했다. 제6공화국 초기까지만 해도 한국의 공적 의료보험은 완전히 '보편적'이라고 하기 힘든 처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사회개혁투쟁의 핵심 과제로, 직장 의료보험과 지역 의료보험의 통합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그 결과, 2000년에 직장과 지역이 통합된 체계, 즉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국민건강보험 체계가 들어섰다. 이후에도 민주노동조합운동은 정부의 끊임없는 의료 사유화 시도를 저지하는 데 앞장섰다. 스웨덴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노동운동이 복지국가 건설의 주역임을 실천으로 보여줬던 것이다.

조 대표는 노동운동이 평등사회 실현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려면, 보편적 사회 이익 실현에 앞장섰던 이런 사례를 새롭게 확대 반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노동'과 여성', '청년'이 교차하는 영역이야말로 보편적 계급 이익과 사회 이익을 실현할 중심 무대다. 가령 한국의 성별 임금 불평등은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게다가 공적 돌봄 결핍의 부담이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다. 다른 한편, 남녀를 불문하고 청년 세대 전체가 일자리, 주거 등에서 심각한 세대 간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제는 노동과 여성, 청년의 연대가 필요하다. 조 대표는 "노동 없이는 안 되지만, 노동만으로도 안 된다"면서 노동, 여성, 청년의 연대이야말로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평등사회 동맹'이 될 수 있고, 또한 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노동운동, '신 전태일3법' 제정에 나서자

토론에 나선 김진억 본부장은 <평등사회 프로젝트>의 전반적 내용에 동의를 표하면서도, 실천의 측면에서 이 책의 제안을 어떻게 발전시켜나갈지에 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저자가 강조하는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는 시급한 과제가 맞지만, 조합원이 늘어난다고 노동조합의 문제가 다 풀리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모든 노동조합은 자기 조합원의 단기적-경제적 이익 추구에 치중하는 실리주의 성향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실리주의를 극복하려는 '특별한' 실천적 노력이 없으면, 기존 노동조합의 실리주의 성향이 비정규직 중심 조직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곤 한다.

요컨대 계급적-보편적 이익 추구와 실리주의 추구는 노동조합에서 늘 나타나는 양면성이다. 이런 '두 얼굴' 가운데 후자보다 전자를 부각시키려면 체계적인 장기 전략이 필요한데, 이런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 민주노총의 근본 문제다. 김 본부장은, 위원장을 배출한 정파가 자기 입장을 일방적으로 관철하는 정파패권주의나, 위원장 임기 3년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시야가 갇힌 단기업적주의가 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런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까? <평등사회 프로젝트>는 정파 문제를 해결할 제도적 대안으로 정파등록제 등을 제안한다. 그러나 김진억 본부장은 이런 제도 개혁 이전에 민주노총이 새로운 실천을 통해 체질을 개선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토를 달았다. 그래야만 제도 개혁의 토대와 동력도 마련될 수 있다. 김 본부장은 이런 실천 사업에서 무엇보다도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0년대 초의 무상급식 도입 운동이나 2010년대 말의 최저임금 인상 운동처럼 노동운동의 역량을 집중 투입할 의제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진억 본부장은 이런 전 조직적 실천 의제로 우선 '신(新) 전태일 3법'을 제안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민주노총은 '전태일 3법'이라는 이름 아래 '근로기준법 제11조 개정(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노조법 제2조 개정(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합 활동 보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추진했다. 이 중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제외한 나머지 두 과제는 아직도 숙제로 남아 있다. 민주노총이 미완의 이 두 과제에 '초기업단위 교섭과 단체협약 효력 확장'을 새롭게 더한 '신 전태일 3법'을 추진한다면 기존 조합원 울타리를 넘어 보편적 계급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

김 본부장은 조돈문 대표가 '노동'과 '여성'이 만나는 중요한 쟁점 중 하나로 꼽은 돌봄 문제도 노동운동이 역량을 집중할만한 의제라는 의견을 밝혔다. 노동과 여성이 함께 '공공 돌봄 확대'를 요구하자는 것이다. 김 본부장에 따르면, '공공 교통' 역시 이러한 의제가 될 수 있다. 서울의 경우, 현재 시내버스가 '준공영'이라는 기형적 형태로 운영되고 있고 전체 버스의 10%가 사모펀드의 수중에 있다. 김 본부장은 이런 상황에서 노동이 '시내버스 완전 공영화'를 앞장서서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억 본부장 ⓒ노회찬재단

AI 자동화에는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로 대응하자

지정토론이 끝난 뒤에 참석자들과 함께 하는 토론이 이어졌다. 한 참석자는 "AI나 휴머노이드 등을 통해 자동화가 급진전되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과연 투쟁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스웨덴 노동운동이 복지국가의 기틀을 놓던 무렵은 대량생산 체제가 막 도입되던 때라 노동자들이 산업별 노동조합을 통해 교섭력을 갖추기 용이했다. 반면에 지금 한국 노동운동은 AI 시대의 도래로 노동의 교섭력이 어느 때보다 위협받는 시점에 평등사회 건설을 모색해야만 한다. 질문자의 물음은, 과연 이렇게 달라진 조건에서도 평등의 실현이 가능하겠냐는 참석자 전체의 의구심을 대변하고 있었다.

조돈문 대표는 <평등사회 프로젝트>가 제시하는 결론의 연장선에서 답을 내놓았다. 노동, 여성, 청년 동맹의 요구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노동의 교섭력을 유지하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는 민간부문보다는 공공부문에서 더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 자동화만큼이나 우리 시대의 심각한 문제들인 돌봄 결핍, 팬데믹, 기후위기 등에 대처하자면 ('보편적 기본소득'이 아니라) '보편적 기본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며, 그러려면 이를 담당할 공공부문이 확대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특히 여성, 청년을 위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그러면 대규모 실업 예방 효과 덕분에 노동의 교섭력이 유지될 수 있다.

질문 가운데에는 "한국 사회에서 증세를 지지하는 여론이 전반적으로 약해지는 상황에서, 노동조합 안에서부터 복지 증세 지지 여론을 불러일으키기만 해도 평등사회 실현에 크게 기여하지 않겠는가" 하는 물음도 있었다. 김진억 본부장은 늘 단체협상 현안에 쫓기는 노동조합운동 분위기 때문에 이런 캠페인이 제대로 전개되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1995년 민주노총 창립 직후에 '주거/부동산' 문제에 적극 대응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이 역시 1년 뒤에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불발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앞으로 공공 돌봄이나 공공 교통 같은 요구와 연동해 조합원들에게 복지 증세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조돈문 대표는 마지막으로 노동운동에 대한 조언을 덧붙였다. 민주노동조합운동이 청년, 여성, 미조직 노동자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에 나서길 꺼려선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교섭을 통해 일자리, 주거, 돌봄 문제를 과감히 제기해야 한다. 조 대표는, 노동 진영이 사회적 교섭을 활용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압박하거나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라고 요구하고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평등사회 실현, 노동-여성-청년 동맹 ... 두 시간의 토론으로 답을 얻기에는 너무 벅찬 주제들이었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는 '평등'이 결코 과거의 철지난 이상일 수만은 없음을, 과거 어느 때보다 지금 더 절실한 과제가 되어 있음을 확인한 소중한 자리였다.

▲함께 맞는 비 포럼 ⓒ노회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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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을 공부했고, 진보정당 운동의 정책 ·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배곳 산현재 기획위원, 노회찬재단 노회찬비전포럼 운영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장석준의 적록서재>, <사회주의>, <신자유주의의 탄생>, <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지도>(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 <민주주의인가 보나파르트주의인가>, <포식하는 자본주의>, <좌파의 길>, <길드 사회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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