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정당 약진에 맞선 영국의 '좌파 삼국지'…한국 정치에 주는 교훈은?

[장석준 칼럼] '신당 돌풍' 당신의당, '보선 승리' 녹색당의 엇갈린 도전…노동당, 총리 교체로 희망 불씨

작년 여름, 영국 정치가 모처럼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2025년 7월 3일 노동당 하원의원 자라 술타나가 탈당함과 동시에, 노동당과 경쟁할 좌파 신당 창당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술타나 의원은, 2015~20년 노동당 대표를 지냈지만 이후 '반유대주의자'라는 모함을 받으며 출당당한 무소속 제러미 코빈 의원도 신당 창당에 함께 할 것이라 밝혔다. 당시 키어 스타머 총리가 이끌어온 노동당 정부에 실망한 많은 이들이 이 뉴스에 환호했다.

7월 24일 코빈과 술타나가 '당신의당(Your Party)'이라는 임시 당명을 내걸고 온라인 회원을 모집하자 8월 말까지 한 달만에 80만 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당비를 내는 정식 당원은 아니었지만, 삽시간에 100만 명에 가까운 지지자들이 몰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국 정치판을 들썩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당과 대등하게 경쟁하고 심지어 이를 대체할 수도 있을 좌파 대중정당이 등장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영국 정치에서는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9월 2일, 잉글랜드-웨일스 녹색당(이하 녹색당) 대표 선거에서 '좌파 포퓰리즘' 노선을 내세운 잭 폴란스키가 85%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대표에 당선됐다.

2010년에 처음으로 하원의원을 배출하고 2024년 총선에서 4석을 획득한 녹색당은 사실 가장 오랫동안 범좌파 지형에서 노동당과 경쟁해온 정당이다. 하지만 한 세기 동안 노동조합운동, 협동조합운동에 뿌리내려온 노동당의 자리를 '환경'정당인 녹색당이 대체하기는 힘들다는 게 중론이었다. 차라리 당신의당처럼 노동당 내 상당 부분이 떨어져 나와 노동조합 일부와 결합해야 노동당과 의미 있는 경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녹색당이 새 대표를 선출하기 전까지는 확실히 그래 보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당시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와 마주하고 있다. 작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당신의당 열풍은 무참히 식어버렸다. 당원 모집을 둘러싸고 코빈과 술타나가 격하게 충돌하는 바람에 신망을 잃었고, 11월 29~30일 열린 창당대회 이후 화제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한때 당신의당에 쏠렸던 스포트라이트는 이제는, 대서양 건너편에서 작년 11월 뉴욕시장 선거 이후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에 온통 집중되고 있다.

영국에서 DSA와 비슷한 역할을 한 것은 당신의당이 아니라 오히려 신임 폴란스키 대표가 이끄는 녹색당이었다. 당신의당 준비 세력이 한창 내홍에 휩싸일 무렵(9월), 녹색당은 새 대표의 인기에 힘입어 6만5000명 정도였던 당원을 10만 명으로 늘렸다(이후 20만 명 이상으로 증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녹색당은 노동당 지지층을 잠식하며 지지율을 평균 15% 수준으로 높였다. 그리고 급기야 올해 2월 26일 고튼-덴턴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녹색당의 해나 스펜서 후보가 극우 영국개혁당과 노동당을 누르고 당선됐다. 당신의당에 기대됐던 역할을 정작 당신의당이 아닌 녹색당이 해내고 있는 셈이다.

모처럼의 역사적 기회를 살려내지 못한 당신의당

당신의당은 왜 기회를 살리지 못했는가? 짧은 글 한 편에 다 담지 못할 복잡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래도 간략하게나마 대강의 사정을 살펴본다면, 일단 작년 어느 시점이 노동당의 스타머 노선에 맞서 새로운 정치 흐름을 띄우기에 적기였음은 분명하다. 당신의당 창당을 먼저 공표한 술타나뿐만 아니라 코빈도 이 점에서는 생각이 같았다. 그래서 이들은 작년 여름 이전에 물밑에서 다른 여러 좌파 인사들과 함께 신당 창당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논의를 과연 언제 수면 위로 올릴지, 언제부터 실질적 창당 과정에 돌입하는 게 바람직할지에 관해서는 커다란 이견이 있었다. 술타나 의원은 하루라도 더 빨리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고 봤고, 오랫동안 노동당 바깥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해온 트로츠키주의 정파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술타나 의원을 중심으로 급진좌파 정파들이 모인 일정한 블록이 형성됐고, 이들은 좌파에게 익숙한 강령, 규약 토론 중심의 창당 과정을 빠른 속도로 밟아나가려 했다.

하지만 코빈을 중심으로 한 그룹의 생각은 달랐다. 코빈이 대표였던 시절에 노동당 주류는 당 내 좌파(이른바 '코빈 좌파')를 '현실을 모르는 괴짜 이상주의자들'로 몰아붙였지만, 노동당 좌파는 노동당 바깥의 정파들에 비하면 대중정치에 훨씬 더 익숙하다. 코빈과 그 동지들은 비록 어쩔 수 없이 노동당에서 쫓겨나거나 탈당했지만, 영국 풍토에서 노동당 바깥에 의미 있는 대중적 정치 흐름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작업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좌파 신당 창당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창당에 돌입하려면 좀 더 확실한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런 의견 차이 때문에, 7월 초에 술타나 그룹이 먼저 창당 계획을 발표했을 때 코빈과 그 주위의 무소속 하원의원들은 '동참' 의사를 밝히면서도 썩 흔쾌해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코빈 그룹이 가장 우려한 것은 과거에 노동당 왼쪽에 새로운 정당을 만들려 했던 시도들이 예외 없이 도달했던 결말이 반복될 가능성이었던 것 같다. 노동당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급진좌파 정파들이 신당 창당을 시도하곤 했지만 잠깐 관심을 끌다가 몇몇 정파만 잔류한 소규모 유령 정당을 남기고 끝났던 것이다.

당장은 이런 우려가 기우인 것만 같았다. 전 세계적 뉴스가 된 온라인 회원 가입 물결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는 환상을 심어준 이 돌풍이 오히려 이번 창당 시도에 쏠린 기대와 열망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냉각시키고 말았다. 술타나 그룹은 온라인 회원 가입 물결을 곧바로 당원 가입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코빈 쪽과 충분히 합의하지 않은 채 당원 모집과 당비 모금에 나섰다. 코빈 그룹이 노발대발했고, 한때 신당 창당 자체가 무산될 분위기였다. 이런 충돌이 언론에 그대로 노출되자 당신의당은 창당도 하기 전에 실망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창당이 무산되지는 않았다. 숱한 논쟁 끝에 결국 창당대회가 열렸고, 당신의당은 5만여 명의 당원이 참여한 가운데 집행부도 선출했다. 그러나 기대와 신뢰가 일단 무너지고 나자, 당신의당을 둘러싼 모든 움직임이 대중의 눈에 부정적으로만 비치기 시작했다. 급진적 구호를 내세우면서도 아마추어 같은 행동만 반복하는 술타나와 그 주위의 급진좌파 정파들은 나이 든 세대의 회고담에 등장하던 '트로츠키주의자들'의 괴팍한 모습 그대로였다. 반면에 이런 정파들의 개입을 막겠다며 계속 트집만 잡는 코빈 그룹은 지나치게 '관료'적으로 보였다, 노동당 '관료'에 맞서 싸우던 코빈 좌파가 이제는 또 다른 '관료'가 된 것 같았다.

결국은 애초에 코빈이 우려했던 바가 현실이 됐다. 대중정치에 가장 부합하는 형태를 띠어야만 그나마 노동당에 맞서 생존력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좌파 신당 창당 과정이 대중정치와 가장 거리가 먼 정파정치로 왜소화됐다. 7~8월에 기적적으로 돌출한 온라인 회원 가입 물결은 대중정치의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당신의당 창당 세력들은 이를 끝내 살려내지 못했다. 노동당 좌파에서 출발한 코빈 주위 세력도, 오랜 소규모 정파 활동의 연장선에 있는 술타나 주위 세력도 그럴 준비가 안 돼 있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준비된 대응은 다른 쪽에서 나왔다. 당신의당 바람 때문에 채 주목받지 못했던, 새 노선을 주창하는 새 대표를 맞이한 녹색당이 그 주인공이었다.

때맞춰 제대로 개입할 줄 안 녹색당

녹색당의 새 대표 폴란스키는 처음에는 자유민주당에 입당해 사회적 자유주의자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2017년 자유민주당의 시리아 공습 지지 당론을 비판하며 녹색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이 시기에 폴란스키는 당시 노동당을 이끌던 코빈 좌파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그래서 현재 그의 주장은 코빈 좌파와 상당 부분 겹친다. 부자 증세, 탈-긴축 재정, 임대료 통제, 국민보건서비스(NHS) 재건, 철도와 상수도의 재국유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더 나아가 폴란스키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한다. 가자에서 벌어진 일을 정확히 '학살'이라 규정하고, '이스라엘 비판'과 '반유대주의'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못 박는다. 이 문제가 바로 노동당이 코빈을 '반유대주의자'로 말아 출당시키는 빌미가 됐음을 감안하면 폴란스키의 이런 태도는 영국 정치의 금기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 할만하다. 오직 폴란스키 자신이 유대계라는 사실만이 그나마 코빈에 비해 '유리한(?)' 점이다. 뿐만 아니라 폴란스키는 영국이 언젠가는 NATO에서 탈퇴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공언한다.

폴란스키의 이런 입장은 과거 녹색당 기조보다 확실히 더 급진적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국 사회에서 완전히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노동당 좌파가 주장해온 내용이기도 하고, 노동당 바깥의 급진좌파 정파들이 늘 하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동당 좌파는 해체되고 좌파 신당 창당 시도는 용두사미로 끝난 상황에서, 뚜렷한 원내외 기반을 갖춘 정당의 대표가 이런 입장을 천명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대중에게 특정 이념이나 정책의 역사, 사연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당장, 누가 그것을 가장 힘 있게 대변하느냐'가 중요할 따름이다.

폴란스키가 이끄는 녹색당은 이렇게 확보된 자신들의 위상과 저력을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잘 알았다. 고튼-덴턴 보궐선거 무대가 열리자 녹색당은 이에 단호히 개입했다. 맨체스터 광역시에 속한 이 선거구는 노동당 거점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극우파 영국개혁당 지지율이 치솟는 중이었다. 녹색당은 극우 파시즘에 맞설 대연합의 중심은 이제 노동당이 아니라 녹색당이라 외치며 이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녹색당 후보를 당선시켰다. 이 승리는 극우파의 급성장을 걱정하면서도 스타머 정부에 대한 실망 때문에 패배주의에 빠져 있던 노동당 지지층 상당수에게 희망의 횃불로 다가왔다.

물론 보궐선거 승리는 ('전쟁'이 아닌) '전투'의 승리일 뿐이다. 녹색당의 폴란스키 노선 역시 아직 최종 검증을 통과했다고 할 수는 없다. 고튼-덴턴 선거 직후 여론조사에서 녹색당 지지율이 한때 노동당을 앞서기도 했지만, 이런 추세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절치부심하던 노동당이 지난 7월, 총리를 스타머에서 온건좌파인 앤디 버넘으로 교체하자, 노동당 지지율이 반등했다. 노동당에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려는 이들이 결집하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녹색당은 지지율이 낮아져 10% 선을 오르내린다.

이것은 기존 정치 지형에 대한 개입을 중요시하는 좌파 정치 노선이 보일 수밖에 없는 부침이다. 개입의 결과로 도전 세력의 지지가 급증할 수도 있지만, 기성 정치 세력의 반격과 회복에 의해 그 지지가 쉽게 흔들릴 수도 있다. 더구나 소선거구제 일변도의 영국 하원의원 선거제도 또한 녹색당이 앞으로 더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장애물 노릇을 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녹색당이 '때맞춰' '제대로' 개입할 수 있었다는 점, 그것이 중요하다. 당신의당은 그러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러한 개입에 가장 적합하도록 창당 과정을 설계하거나 추진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폴란스키의 녹색당은 '준비된' 주인공으로서 역사적 전투에 과감히 뛰어들었던 것이다.

'때맞춘' 개입, 대안 정치 세력에게는 이것이 전부다

때에 맞춘다는 것, 정세에 가장 필요한 행동을 감행한다는 것, 이것은 언제나 정치의 최대 덕목이다. 그러나 이것이 평소보다도 더 절실하게 요청되는 역사적 시기가 있다. 불행히도 지금 우리는 그 시기를 살고 있다.

우리 시대는 문명이 무너져 내리는 시대, 그러면서 이 문명의 기득권 세력에 맞서 두 도전 세력, 즉 더 나은 문명을 개척해보자는 목소리와 야만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치열하게 경합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경쟁자가 앞을 향해 내딛는 한 걸음은 결코 단 한 걸음의 격차를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 한 걸음만큼 돌이킬 수 없는 패배의 수렁을 향해 밀려났음을 뜻한다. 그래서 그만큼 전투 하나하나의 승패가 결정적이다. 시간 여유를 과시하며 무시해도 될 패배 따위는 이제 생각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제는 '때맞춘' 개입이 모든 대안 정치의 전부다. 기성 정치의 궁지에 도전하고 이를 대체하려는 정치적 시도에서 이러한 개입 가능성을 뺀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고매한 강령 논쟁도, 가장 민주적인 제도를 따지는 규약 토론도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이미 파멸 직전인 행성에서, 한 세대 전쯤에 시작했어야 할 일을 뒤늦게 복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안이 되길 꿈꾸는 정치 세력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기성 정치가 꺼내놓는 제한된 선택지에 어떻게든, 없었던 항목을 하나 더하는 것이다. 그 항목을 선택함으로써 기존 선택지의 족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대중을 결집하는 것이다. 영국에서도 그렇고, 지금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신흥 좌파정당 '당신의당' 리더 중 하나인 자라 술타나 하원의원(오른쪽)과 잉글랜드-웨일스녹색당 잭 폴란스키 대표가 지난해 8월 한 행사장에서 만나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폴란스키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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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을 공부했고, 진보정당 운동의 정책 ·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배곳 산현재 기획위원, 노회찬재단 노회찬비전포럼 운영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장석준의 적록서재>, <사회주의>, <신자유주의의 탄생>, <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지도>(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 <민주주의인가 보나파르트주의인가>, <포식하는 자본주의>, <좌파의 길>, <길드 사회주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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