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핵무기, 한국의 막강한 재래식 전력으로 막을 수는 없을까?

[정욱식 칼럼] 불가역적인 핵시대로 접어든 한반도, 생존의 조건은?(끝)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선(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정상회담 성사 여부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내에서는 트럼프가 조선의 핵보유를 용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짙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가 8월 19일(현지시간) 조미정상회담의 목표가 비핵화냐는 질문에 대해 "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김정은과 좋은 관계"이고 "핵무기를 57개"나 갖고 있는 나라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도 말하면서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우려를 씻기 위해 한미간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나 '핵 없는 한반도'라는 원칙을 관철해야 한다는 주문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는 조미정상회담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왜 핵보유국은 전쟁에서 핵무기를 쉽게 사용하지 않을까?

우리가 미국의 조선 핵보유 '용인' 가능성을 극구 경계하는 데에는 '재래식 전력으로는 북핵을 억제할 수 없다'는 확고한 인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한미연합훈련이 반토막이 나고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이러한 불안감은 더욱 크게 소비된다. 한국이 3년 연속 세계 5위의 군사력 보유국으로 평가받아도 이러한 우려를 씻는 데에는 역부족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정녕 한국의 막강한 재래식 전력은 조선의 핵위협을 억제할 수 없을까? '핵에는 핵으로 맞서야 한다'는 신념이 워낙 강하기에 이러한 질문 자체가 안보를 무시한 철없는 발상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런데 흥분을 가라앉히고 실제 안보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두말한 나위 없이 핵무기는 엄청난 파괴력과 살상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 '핵무기의 역설'이 존재한다. 핵무기가 품고 있는 과도한 파괴·살상력이 실제 핵무기 사용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1945년 7월 핵무기 등장 이후 핵보유국의 전쟁 수행 방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핵보유국이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한 사례는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한 것이 유일하다.

그 이후로 미국이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부터 21세기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르기까지 여러 전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 했는데에도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았거나 못했다. 오늘날의 이란 전쟁에서도 재래식 무기와 미사일방어 능력이 소진되는 상황에서도 핵무기를 실제 전쟁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4년이 넘도록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는 간혹 핵위협을 가하곤 하지만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소련 몰락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패퇴할 때에도 핵무기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들은 고전이나 패배 상황에 처할 때에도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이들 나라의 인도주의 정신이 강해서가 아니라 아무리 '전쟁광'이더라도 핵무기 사용 문턱을 넘기에는 그 문턱이 너무나도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재래식 전력이 억제에 더 효과적일 수 있는 이유

재래식 전력은 아무리 현대화되어도 핵무기보단 파괴·살상력이 훨씬 작다. 이는 거꾸로 재래식 무기의 사용 문턱이 핵무기보다 훨씬 낮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세계 전쟁사에서 입증된 바이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의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재래식 무기의 특성은 '재래식 무기로는 핵무기를 억제할 수 없다'는 통념을 해체할 필요성을 일깨운다. 억제 효과는 무기의 파괴·살상력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 나를 공격하면 반드시 보복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상대가 보복의 위협을 믿을수록 억제 효과는 커진다. 그런데 실제로 사용할 것이라는 신뢰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재래식 무기가 핵무기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피공격자가 재래식 무기로 보복을 가할 것이고 공격자는 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선 '핵보유국의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9개의 핵보유국 모두 재래식 군사력 건설에도 박차를 가한다. 상대적으로 약했던 파키스탄도 최근 인도와의 제한적 무력 분쟁에서 핵무기 사용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선 재래식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 조선이 최근 재래식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데에도 마찬가지 사유가 작동하고 있다. 자멸을 각오하지 않는 한, 유사시 핵무기를 바로 쓸 수 없다는 '핵의 역설'에서 조선도 예외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조선이 "핵무력의 제1의 사명"을 '현상 변경'이 아니라 '현상 유지'에 두고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핵이 억제용인 점이 분명해질수록 비핵국가이면서도 막강한 재래식 군사력을 보유한 우리가 조선을 억제하기도 수월해진다.

불편한 말이지만, 한국 재래식 전력의 '신뢰성'과 조선 핵무력의 '파괴력'이 균형을 이룰 수는 있다. 이것이 비록 '비대칭적 균형'이지만, 막강한 재래식 전력으로도 상대에게 가공할 비용을 부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억제의 균형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당분간 추구해야 할 접근은 지금보다는 더 나은 미래, 예상되는 미래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고 실천하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역효과가 큰 비핵화는 내려놓고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전쟁의 근원 자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른바 '북핵 문제'는 평화체제와 세계의 핵군축이라는 더 큰 그릇에 담아내려는 노력을 병행하면서 말이다.

▲20일 인천 제물포구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열린 2026년 을지연습 '인천항 국가중요시설 통합방호 및 피해복구훈련'에서 공군 166대대 대원들이 천궁2 발사대를 작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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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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