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새만금에 9조 원을 투자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로봇 제조·부품 클러스터, 수전해 플랜트, 태양광 발전, AI 수소도시를 조성하기로 하면서 전북은 단숨에 대한민국 피지컬 AI와 로봇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떠올랐다.
현대차의 투자가 계획대로 진행되면 AI 데이터센터와 태양광·수전해 시설은 2027년 착공해 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완공되고 로봇 제조·부품 클러스터는 2028년 공사에 들어가 2029년 1단계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러나 수조 원 규모의 산업시설이 들어서는 속도와 달리 이곳에서 일할 기술인력을 준비하는 전북의 직업교육 체계는 아직 현대차 투자와 직접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앞서 800조 규모의 호남권 반도체공장 건설이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발표됐지만 가장 큰 걸림돌이 '전문 인력을 구하는 일' 일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가 제기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현대자 그룹이 새만금에 9조 원을 투자한다고 해도 전북이 필요한 인력을 제때에 충분히 길러내지 못한다면 투자 효과를 얻어내기는 커녕 협력 기업의 유치에도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현재 현대차의 새만금 9조 원 투자와 연계해 공식적인 인재양성 협약을 체결한 전북지역 교육기관은 전북대학교가 유일하다.
현대차그룹이 구축 중인 새만금 인공지능(AI) 밸리의 실행력 및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지역 내에서 인재를 양성해 첨단 생태계를 고도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협약이 맺어졌다.
현대차와 전북도, 전북대는 지난 7월 20일, '지역 성장엔진 연계 인재양성 및 공동연구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피지컬 AI와 로봇, 수소에너지 분야 계약학과 설치와 맞춤형 교육과정 개발, 공동연구를 추진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산업 현장의 인력 수요를 제시하고 교육과정 자문과 실무 전문가 참여를 지원하며 전북대는 계약학과 운영과 교육·연구를 주관하고 전북도는 행정·재정적 지원을 맡기로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첨단산업 주도권 확보를 위해서는 기업 뿐 아니라 우수인재를 육성하는 대학과 이를 뒷받침하는 지역사회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지만, 이 협약에 전북교육청과 도내 직업계고는 포함되지 않았다.
도내 고등학교 가운데 현대차나 새만금 AI 밸리의 인재양성 연계학교로 공식 지정되거나 선정된 학교도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대차가 특정 직업계고의 교육과정을 함께 설계하거나 현장실습과 채용에 참여하기로 한 협약도 확인되지 않는다.
대학 단계의 고급 연구·개발 인재양성은 시작됐지만 로봇 제조와 설비 운영, 유지·보수, 부품 가공, 전기·전자 제어, 품질검사 등을 담당할 고졸 기술인력 양성체계까지는 연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 새만금 사업에는 AI 연구자와 소프트웨어 개발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관계 전문가는 "연간 3만 대 규모로 계획된 로봇 제조공장과 부품 클러스터가 가동되려면 로봇을 조립하고 생산설비를 운용하는 인력, 모터·센서·감속기 등 핵심 부품을 가공하는 기술자, PLC와 자동화시스템을 제어하는 인력, 산업용 로봇을 설치·정비하는 현장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AI 데이터센터에도 서버·네트워크뿐 아니라 전력과 냉각설비를 운영·관리할 기술인력이 있어야 하며 수전해 플랜트와 태양광 발전시설에는 전기·전력, 화학공정, 에너지설비, 가스·산업안전을 담당할 인력이 필요하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직업계고와 전문대학에서 체계적인 실습교육을 받은 중간기술 인력이 담당해야 할 분야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차와 인재양성 협약을 맺은 기관이 전북대 한 곳에 머물면서 전북의 인재정책이 대학과 연구인력에 치우쳤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공장 가동 시점은 다가오는데 직업계고 학생이 어떤 과정을 배우고 어느 기업에서 실습하며 어떤 직무로 취업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경로는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0여 년 전부터 대기업을 비롯한 여러 기업과 MOU를 맺고 그와 관련한 교육과정을 개설해 학생들을 지도하고 졸업 후 취업까지 연결시켜 온 전북도내 한 마이스터고에 재직 중인 A교사는 "직업계고에서는 현장에서 필요한 인적 자원을 양성하기 위해 '맞춤형 교육'에 초점을 맞춰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는데 새만금 현대자동차 9조 투자와 관련해서는 현재까지 아무런 안내가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달 현대차와 전북대학교간에 맺어진 협약과 관련해서도 "대학 외에도 전북도교육청과 도내 직업계고가 함께 MOU를 맺었다면 우리 학생들도 거기에 맞는 교육과정을 편성해 제대로 적시에 필요인력이 투입될 수 있도록 맞춤형 교육을 실시할 수 있고 전북의 인적자원이 취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말하자면 현대차의 새만금 투자 전에 전북의 마이스터고를 비롯한 직업계고가 필요인력 수급을 위한 사전 MOU가 맺어지게 되면 직업계고에서는 거기에 맞는 교육과정을 편성하게 되고 그에 따른 학생지도가 가능해 지기 대문에 필요인력 수급이 원활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전북 직업계고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군산기계공업고등학교는 지난 5월, 기존 조선·기계 분야 마이스터고에서 현대자동차 투자 계획에 맞도록 'AI·로봇 분야 마이스터고'로 변경 지정됐다. 기존 기계·전기 기반에 'AI와 로봇'을 결합한 융합교육과정을 만들고 로봇 하드웨어 설계실과 첨단 실습공간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로봇 제조·부품 클러스터가 들어설 새만금과 가깝고 조선·기계·전기 분야의 기술교육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차 새만금 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학교다.
앞서 이리공업고등학교도 'AI·이차전지 분야 마이스터고'로 신규 지정됐다. 학과와 교육과정, 실습시설을 개편해 2028학년도부터 관련 분야 신입생을 받을 예정이다. 현대차의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에너지저장장치, 스마트팩토리 분야와 연계할 가능성이 있다.
국립 마이스터고인 전북기계공업고등학교도 로봇자동화와 메카트로닉스, 폴리메카닉스, 금형설계제작 분야에서 상당한 교육 기반을 갖추고 있다. 산업용 로봇과 자동화설비, PLC, 센서, CNC, CAD 등의 교육은 현대차 로봇공장과 협력기업이 필요로 할 직무와 접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전북인공지능고등학교는 AI소프트웨어 인재를 양성하고 있고, 전북자동차고등학교도 자동차 정비와 도장 분야의 실무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학교의 변화가 아직 현대차의 새만금 투자계획과 하나의 인재양성 체계로 아직 묶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지난달 전북도와 전북대,현대차 간의 '지역 성장엔진 연계 인재양성 및 공동연구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에서 빠진 전북도교육청 공용선 장학관은 "인력양성 분야가 대학교와 고등학교는 차이가 있어 지난달 협약에 참여하지 않았다"면서 "향후 현대차와 협의를 진행하며 교육청 차원에서 인력 양성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 장학관은 또 "현재 교육부와 협의해 준비 중"에 있다면서 "이미 'AI로봇' 분야로 교육부 승인을 받은 마이스터 학교인 군산기계공업고는 1차적으로 내년부터 현대차 관련 인력 양성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군산기계공고 만의 인력 양성으로는 너무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도내 특성화고를 대상으로 관련 학과 개설과 확대 등 조금 더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그 같은 계획이 수립되면 현대 측 하고도 협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북 직업계고 관계자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학교 별로 '생존과 학생취업'을 위해 첨단산업에 대비한 학과를 개설하는 등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새만금에 들어설 현대차가 언제, 어떤 직무에서, 어느 정도의 인력을 채용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교육과정을 설계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자칫 기업의 수요와 학교 교육이 각자 따로 움직이는 인력 불일치가 발생할 수도 있다.
전북의 대응이 더딜 경우 새만금에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도 필요한 인재는 다른 지역에 의존해야 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다른 지역은 이미 교육부의 협약형 특성화고와 직업계고 재구조화 사업을 활용해 피지컬 AI와 로봇·스마트제조 인재양성 체계를 선점하고 있다.
2026년 협약형 특성화고 공모에서는 인천 재능고가 ‘피지컬 AI 제조’, 광주공고가 스마트엔지니어링, 동일미래과학고가 AI·AX, 울산지역 학교가 AI 스마트제조 분야를 중심으로 선정됐다.
협약형 특성화고는 지자체와 교육청, 기업, 대학, 학교가 협약을 맺고 지역 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교육에서 취업·정주까지 연결하는 제도다. 선정 학교에는 5년 동안 최대 45억 원이 지원되고 산업계가 교육과정과 현장실습에 참여한다.
반면 2026년 전북에서 협약형 특성화고로 선정된 남원용성고는 스마트팜 등 농생명 분야가 중심이다. 현대차의 새만금 로봇·AI·수소 투자와 직접 연결된 협약형 특성화고는 없다.
전북이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피지컬 AI·로봇 투자를 확보하고도 정작 피지컬 AI 제조 분야의 협약형 특성화고를 다른 지역이 먼저 가져간 셈이다.
그래서 전북이 관련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기업 투자액 뿐 아니라 인재 양성의 속도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로봇공장이 양산을 시작한 뒤 필요한 인력을 찾기 시작하면 그때는 이미 늦은 시점이 될 것이다.
전북교육청과 전북지역인적자원개발위원회, 캠틱종합기술원은 지난 5월 ‘전북형 채용연계 직무교육 운영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직업계고 학생을 대상으로 미래차 분야 교육과 채용 연계를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20명 규모의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계획으로 기업 수요에 맞춘 직무교육과 채용을 연결한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출발이기는 하다.
그러나 현대차 새만금 9조 원 투자 규모와 향후 조성될 로봇·AI·수소 산업생태계를 고려하면 20명 규모의 미래차 교육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공개된 협약에는 현대차 새만금 사업과 직접 연결된 참여기업과 채용 직무, 참여학교, 채용 예정 인원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직업계고 현장에서는 "그동안 전북에는 대기업이나 공장이 많지 않아서 취업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새만금에 현대차가 들어오게 돼 기대가 크다"고 희망을 내비친다.
전북직업계고협의회 대표인 전주공업고등학교 오홍학 교장은 이같이 말하면서 "현대차 역시 대학교 졸업 인력도 필요하겠지만 고등학교에서 관련 기능을 충분히 습득하고 졸업하는 인력도 필요할 것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오 교장은 "그런 방면에 현대차와 전북의 특성화고등학교들이 상생,발전할 수 있는 길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새만금에 현대차가 들어오는 게 단순히 차만 들어오는 게 아니고 반도체를 비롯해 로봇,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가 들어오는데 도내 특성화고등학교 역시 다양한 분야가 있다"면서 "현대차가 필요한 인력 양성 유형을 구체화해서 도내 특성화고가 그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도내 특성화고에 재직하고 있는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오 교장은 "새만금이 전북에 있고, 전북에 있는 인적 자원이 새만금 현대자동차에 취업 되는 것을 희망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힘줘 말했다.
필요하다면 전북도와 전북교육청이 현대차와 1·2차 협력기업, 로봇·AI·수소 분야 새만금 입주 예정기업을 대상으로 향후 필요한 고졸 인력의 직종과 규모, 요구 기술, 채용 시기를 사전에 조사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현지에 있는 직업계고 단계부터 '맞춤형'으로 키우자는 제안이다.
전북교육청은 이를 토대로 2027년부터 2035년까지 적용할 '새만금 피지컬 AI 직업교육 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학과 개편과 교원 확보, 실습장비, 기업 현장실습, 학생 모집, 채용 목표를 연도별로 담아야 한다.
현대차의 9조 원 새만금 투자는 전북에 주어진 전례 없는 기회다. 하지만 기업의 투자 자체가 지역 청년의 일자리와 정착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대학에는 현대차가 참여하는 계약학과가 만들어지는데 직업계고에는 아직 공식 연계학교조차 없다는 현실은 지금 '전북 인재정책의 허술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전북은 이미 피지컬 AI와 로봇산업의 거대한 생산기지를 확보했고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산업을 움직일 사람을 전북에서 길러내는 일이다.
현대차의 새만금 9조 원 투자를 '새만금에 1000조 담기'로 연결시켜 키워내려면 공장만 지어져서는 안 된다. 장차 전북의 학생들이 '새만금 로봇공장'을 견학하는 관람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로봇을 설계하고 조립하고 운용하는 기술자와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차의 새만금 공장은 오는 2029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불과 3년 남짓, 공장이 완성된 뒤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공장이 가동되는 날 곧바로 현장에 투입될 전북의 인재를 지금부터 키워야 한다.
새만금의 미래는 결국 공장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려 있다. 9조 원의 투자를 1000조 원의 산업생태계로 증폭시키는 출발점도 바로 '사람을 준비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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