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노동조합법상 노동쟁의의 범위를 시행령·시행규칙으로 좁히라고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두 차례 지시했다. 지난달 21일에 이어 이달 11일 국무회의에서 재차 이 문제를 꺼낸 그는 "법률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다"고 밀어붙였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이 모법에 위임 규정이 없다는 점을 직접 짚었지만 대통령은 밀어붙였고, 장관은 결국 검토를 약속했다. 국회가 여야 격돌 끝에 통과시킨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의 확대라는 노조법의 취지를, 이 대통령이 하위 법령으로 되돌리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법률유보원칙'의 훼손
법률유보원칙에서 말하는 유보(留保)는 어떤 사항에 대한 결정 권한을 특정 주체에게 남겨두고 다른 주체에게 넘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사항은 반드시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헌법 원리다.
이는 행정부가 시행령 등 하위 법령으로 국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을 새롭게 규정할 수 없다는 뜻이며, 특히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 같은 헌법상의 기본권을 제한하려는 행위처럼 본질적인 사항은 입법자인 국회가 스스로 정해야지 행정입법에 위임할 수 없다는 요구까지 포함한다.
이 원칙은 헌법 75조에 구체적으로 구현돼 있다. 헌법 75조는 대통령령을 두 갈래로 나눈다. 법률이 구체적 범위를 정해 위임한 사항(위임명령)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집행명령)이다. 집행명령은 모법의 명시적 위임 없이도 발할 수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그 한계를 분명히 그어왔다.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해체 시도
대법원도 같은 원칙을 노동 분야에서 직접 확인한 바 있다. 2020년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사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노동조합법 시행령이 법률의 위임 없이 법외노조 통보 제도를 규정함으로써 헌법상 노동3권을 본질적으로 제한한 것은 법률유보원칙에 반해 그 자체로 무효라고 판시했다.
적법하게 설립된 노동조합의 지위를 박탈하는 중대한 권리 침해 조치는 입법자가 스스로 법률로 정해야 할 사항이지, 명시적이고 구체적인 위임 없이 행정부가 만드는 시행령이 규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조법 개정으로 넓어진 노동쟁의 범위에서 자본의 입맛에 맞게 특정 사안을 배제하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시행령 개정 시도도 정확히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헌법 33조가 보장한 노동기본권을 확대하기 위해 국회가 입법한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의 적법한 행사 범위를 행정부가 축소 획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파업의 정당성 여부는 형사처벌과 손해배상 책임을 가르는 문제이므로, 이는 전형적으로 "국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에 해당해 집행명령의 한계를 넘어선다.
사법부를 대신하려는 이재명 식 '시행령 정치'
이 대통령은 "법에 반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법률의 취지에 맞게 행정을 절차적으로 구체화하는 것을 상정한 말이지, 입법 취지를 거스르면서 헌법에 보장된 단체교섭권의 행사 범위를 축소하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더 근본적으로는 법률의 모호함을 누가 해소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법률의 궁극적 해석 권한은 사법부에 있다. 노동쟁의 대상 여부가 불분명한 사안은 법원이 구체적 사실관계로 판단할 문제이지, 행정부가 시행령으로 범주를 미리 확정해 사법 판단의 기회 자체를 봉쇄할 사안이 아니다. 시행령이 만들어지면 노동위원회와 근로감독 행정이 이를 준거로 삼아, 법원까지 가기 전에 이미 위축 효과가 발생한다.
국제 기준에서도 후퇴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자유위원회(CFA)는 노동자가 파업권으로 방어할 수 있는 이익이 근로조건 개선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에게 이해관계가 있는 경제·사회정책 문제까지 포함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정부의 사회경제정책에 반대하는 파업도, 고용·사회보장·생활수준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한 보호 대상이라는 게 CFA의 오랜 입장이다.
기업의 투자·구조조정 결정도 마찬가지다. 그 자체는 경영권 영역으로 존중하되, 그것이 근로조건에 미치는 지점에서 노동자의 정당한 이해관계가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국제기준의 취지다.
노조법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이라는 문구는 이미 이러한 국제기준의 흐름과 내용적으로 일치한다. 단체교섭의 대상을 명확히 한다는 미명 하에 시행령으로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의 범위를 좁히려는 시도는, 이미 국제기준에 맞춰 설계된 규범을 후퇴시키는 셈이다.
낯익은 수법: 검찰청법에서 세월호까지
시행령으로 상위 법령이 보장한 국민적 권리를 억제하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시도는 낯설지 않다. 2022년 검찰청법 개정 국면에서 윤석열 정권은 국회가 축소한 검사의 직접수사 범위를 시행령으로 도로 확대했다. 이 시행령은 위법 소지가 계속 지적됐음에도 몇 년 동안 규범력을 행사하면서 '검찰공화국'의 폐해를 가중시켰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박근혜 정부의 2015년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이 있다. 국회가 특조위에 부여한 조사권을 정부는 시행령으로 업무 범위를 축소해 무력화했고, 활동 개시일까지 자의적으로 앞당겨 해석해 조사 기간을 단축시켰다. 법원이 뒤늦게 그 해석이 부당하다 판결했지만 특조위는 이미 강제 해산된 뒤였다.
같은 해 국회가 국회의 시행령 수정요구권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박근혜 대통령은 "삼권분립을 훼손한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2022년 윤석열 대통령도 거의 같은 법안에 "위헌 소지가 많다"며 동일한 논리를 폈다. 시행령을 통한 정책 추진을 선호하면서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권리를 축소하려 시도한다는 점에서 박근혜·윤석열 정권과 이재명 정권의 차이는 없어 보인다.
법률가의 지배, 이재명의 리스크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대타락<에서 대의정치·자유시장·법의 지배·시민사회라는 서구 문명의 네 기둥이 퇴락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그 한 축을 '법의 지배(the rule of law)'가 '법률가의 지배(the rule of lawyers)'로 변질되는 것이라 짚었다.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도구여야 할 법이, 법을 다루는 전문가 집단 스스로의 권력과 이익을 확장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리스크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변호사 출신이라는 그의 이력은 법의 문언과 해석의 경계를 정교하게 다루는 기술을 뜻하지만, 동시에 그 훈련된 기술을 삼권분립이라는 헌정 질서의 문제에까지 이용할 위험을 안고 있다.
"법률에 반하지 않으면 시행령으로 할 수 있다"는 그의 논리는 법률가의 언어로는 정교해 보일지 몰라도, 국민적 권리를 확대해야 하는 삼권분립의 정신에서는 위험한 논리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법의 문언을 자본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도록 행정부 재량을 넓히는려는 이재명 정권의 시도는 결과적으로 '법의 지배'를 '법률가의 지배'로 타락시킬 것이다.
기득권층의 이익을 수호할 목적을 갖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적 권리를 제한하려 했던 박근혜의 세월호 시행령과 윤석열의 검찰청법 시행령이 남긴 역사적 교훈은 분명하다. 두 정권 모두 국민적 저항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몰락했다. 이재명 정권이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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