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 근로기준법 적용 포기한다면"

[오민규의 인사이드경제] '일하는 사람' 보호한다며 '2등 노동자' 만들려는 이재명 정부

"노무제공자분들! 일했는데 돈 못 받으셨나요? 소송비용 걱정 없이, 무료로 찾아드립니다."

오,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드디어 정부가 발 벗고 나섰구나. 그동안 임금 떼여도 하소연할 곳 없던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허울 좋은 프리랜서 이름으로 권리를 빼앗겨온 노동자들, 이제 발 뻗고 자도 되는 걸까?

▲노무제공자 임금체불 관련 고용노동부 홍보물.

오랜만에 정부 홍보물을 보고 박수를 칠 뻔했다. 고용노동부와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진행하는 법률구조 지원사업을 안내하는 포스터였다. 소송비용 걱정 없이, 무료로? 정말로? 두 눈을 의심하며 포스터를 다시 들여다봤다.

임금 체불이 아니라 미수금 회수?

역시 악마는 디테일에 있었다. 눈에 걸리는 단어가 나온 것이다. "돈 못 받으셨나요?" 다음에 이어지는 건 '임금 체불'이 아니라 '미수금 회수'였다. 임금이 아니라 미수금이라니? 사소한 표현 차이처럼 보이지만 법적으로는 태양계와 안드로메다만큼 동떨어진 개념이다.

'임금'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노동자(근로자)와 사용자라는 관계가 들어 있다. 임금을 체불하면 국가가 사용자에게 책임을 묻지만, 미수금이라면 돈을 떼인 개인이 자기 비용과 증거로 채권을 추심해야 한다. '임금'을 '미수금'으로 바꾸는 순간 노동법 위반은 민사상 거래분쟁으로, 사용자는 채무자로, 노동자는 영세사업자로 둔갑해 버린다.

근로기준법은 임금을 정해진 날에 전액 지급하도록 명령하고, 체불임금 확인과 대지급금 같은 공적 구제절차도 이용할 수 있다. 임금에는 최저임금이라는 하한선이 있으며,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과 퇴직금처럼 노동자(근로자)라는 지위에서 파생되는 권리도 따라붙는다.

반면 미수금은 일단 임금이 아니라는 것부터 출발한다. 물건값일 수도 있고 공사대금이나 용역대금일 수도 있다. 채권자인 개인이 계약과 업무수행, 지급약속을 입증해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판결을 받아도 상대방 재산을 찾아 강제집행해야 한다.

받지 못한 돈을 '임금'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은 근로자(노동자)가 되고, 근로기준법상 각종 의무와 책임이 사용자에게 발생하며 국가가 바로잡아야 할 의무도 생긴다. 반면 '미수금'이라고 부르면, 국가와 사용자에게 아무 의무도 발생하지 않는 그냥 민사 채권-채무 관계로 남는다.

근로기준법 포기해야만 열리는 문

만일 배달 라이더, 대리기사, 학습지 교사가 떼인 돈을 받기 위해 정부가 홍보하는 무료 소송지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근로자(노동자)'라는 주장을 내려놓아야 한다. 떼인 돈이 '임금'이라는 주장도 포기해야 한다. 정부의 무료소송 지원, 내가 받지 못한 돈을 '미수금'이라 인정한 이들에게만 이뤄진다.

만일 근로기준법 적용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직접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싸워야 한다. 가난하고, 고용이 불안하고, 떼인 돈 액수가 엄청나고,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했더라도 그런 소송은 정부의 지원대상이 아니다.

물론 정부는 '미수금 회수' 지원이 법원의 근로자성(노동자성) 판단을 구속하지 않는다고 항변할 것이다. 노무제공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근로기준법 적용을 요구하는 길이 열려 있다고 말이다. 당연히 무료소송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법원이 노동자성을 부정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판결문의 결론이 아니라 판결에 이르는 길이다.

한쪽 문에는 무료 변호사를 세워준다 하고, 다른 문에는 증거와 소송비용을 스스로 마련하라고 한다. 그래 놓고 "어느 문으로 들어갈지는 당사자의 자유"라고 말한다. 정부가 '근로자 지위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받진 않겠지만, 당장의 돈을 되찾으려는 사람에게 사실상 근로기준법 적용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는 구조다.

사각지대 없앤다더니 '사각지대 신분' 만드나

미수금 회수 지원사업은, 이재명 정부가 연내 입법을 공언하고 있는 '일하는사람 권리 기본법(일하는사람법)'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예고편에 다름 아니다. 말로는 "노동법 밖의 노동자 보호"를 내세우지만, 노동법 안으로 들어오겠다는 주장을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문이 열리는 똑같은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을 비판하고 나서면 "아무런 보호도 못 받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권리를 주자는 것마저 반대하냐"며 핏대를 올린다. 듣기에는 그럴 듯 하지만 이 논리에는 중요한 허점이 있다. 일하는사람법이 보호대상으로 삼는 이들은 정말로 '근로기준법 밖의 노동자'들인가?

최근 배달 라이더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있었고, 사용자측이 상고를 포기해 판결이 확정된 바 있다. 보험모집인, 택배기사, 학원강사, 헤어디자이너, 화물트럭기사 등 수많은 직종에서도 동일한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오래 전부터 줄을 잇고 있다. 라이더라고 해서, 플랫폼·특수고용이라 해서 모두 근로기준법 밖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이런 법원의 판결이 이어지는 것은 시대의 변화 그리고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낡은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을 적극 확장해서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순리인데, 엉뚱하게도 정부는 일하는사람법이라는 괴상한 법체계를 들고 와서 '사각지대 신분'을 새로 만들려 한다.

근로기준법 문 밖의 의자, K-노동복지회의소

지난 8월 4일 이재명 대통령 앞에서 김영훈 노동부 장관이 설명한 업무보고에서, 노동부는 일하는사람법 추진과 함께 '사각지대 신분'을 만들어낼 첨병으로 "K-노동복지회의소"를 신설한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문제의 '미수금 회수 지원' 사업을 비롯해 성희롱·괴롭힘 구제, 노무제공자 휴가 활성화, 퇴직연금 사각지대 해소 등의 사업이 모두 이 기구의 과제로 열거되어 있다.

▲지난 4일, 대통령 업무보고 관련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중 K-노동회의소 과제 부분.

이제 문구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임금체불'이 아니라 '미수금 회수'란 단어가 쓰인 것처럼, '직장내괴롭힘 적용'이 아니라 '성희롱·괴롭힘 구제'로, '연차유급휴가 확대'가 아니라 '노무제공자 휴가 활성화'로, '퇴직금·국민연금 적용 확대'가 아니라 '퇴직연금 사각지대 해소'로, '직업훈련 혜택 보장'이 아니라 '특화훈련 운영·지원'이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다.

이런 단어가 선택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에게 단순히 '혜택'을 주는 게 아니다. 사용자에게 법적인 의무를 발생시킨다. 임금을 제때 지급해야 하고, 최저임금을 지켜야 하며, 근로시간을 기록하고 연장·야간·휴일근로에 가산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노동자는 권리를 청구할 수 있고 국가는 감독과 제재에 나서야 한다.

'권리'를 '지원'으로 바꿔치기

그러나 '지원'은 개념이 완전히 달라진다. 지원사업에는 그런 상대방이 없다. 노동자의 휴가를 보장해야 할 사용자가 아니라, 정부가 '휴가 활성화'를 돕는다. 직업훈련을 제공해야 할 기업의 책임 대신 정부가 '특화훈련'을 지원한다. 사용자의 의무가 사라진 자리에 정부의 친절한 서비스가 들어선다.

하지만 정부의 '친절함'에는 한도가 정해져 있다. 미수금 회수 지원, 특화훈련 지원, 퇴직연금 지원, 휴가활성화 지원…. 이런 것들은 모두 정부 예산사업이다. 이런 사업의 근거는 법률의 강행규정이 아니라 매년 배정되는 예산이고, 수급 자격은 담당 공무원의 재량적 심사를 거쳐야 하며, 사업이 종료되거나 예산이 삭감되어도 위법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런 지원을 못 받았다고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하거나 법원에 이행을 청구할 방법이 없다. 권리는 침해당하면 국가를 상대로 싸울 수 있고 사용자를 형사처벌 무대 위로 올릴 수도 있지만, 지원을 못 받을 경우 "올해는 예산이 부족했다"는 변명 앞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다.

이런 종류의 정책은 훨씬 나쁜 길을 열어준다.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국가가 대신 보조하고, 기업이 져야 할 법적 책임을 노동자의 '지원 필요'로 바꿔버린다. 기업 입장에선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노동자를 고용할 때보다 노무제공자를 사용하는 편이 훨씬 싸고 편해진다. 노동법 적용을 회피할 경제적 유인을 정부가 앞장서서 만들어주는 꼴이다.

예비적 청구만 밀어주는 '미수금 회수'

다른 길은 없을까? 민사소송에는 원래 '주위적 청구'와 '예비적 청구'라는 게 있다. 일한 대가를 못 받았을 경우 근로기준법 적용과 체불임금을 주위적으로 주장하고, 혹시 근로자성(노동자성)이 부정될 경우를 대비해 미수금 반환을 예비적으로 청구하는 소송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미수금 회수 지원'에서 국가가 무료로 밀어주는 길은 오직 하나, 예비적 주장 뿐이다.

발상을 바꿔보자. 만약 정부가 정말로 노무제공자를 돕고 싶었다면 어떤 설계가 가능했을까. 주위적 청구로는 임금체불을, 예비적 청구로는 미수금 반환을 함께 담은 소송을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절차적으로 특별히 어려운 일도 아니다. 소장 한 장에 청구원인을 두 개 병렬로 적으면 될 뿐, 별도의 재판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소송비용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법원이 노동자성(근로자성)을 인정하면 임금체불로, 인정하지 않으면 미수금으로 결론이 나는 구조이니 노무제공자 입장에서는 잃을 게 없다. 정부 입장에서도 이쪽이 훨씬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 설계 아닐까? 일하는사람법과 함께 패키지로 도입한다는 '근로자 추정제' 취지에 비춰보더라도 말이다.

판례가 만들어질 길까지 막는다

주위적-예비적 청구를 함께 지원한다면 그 소송들 중 일부는 법원에서 노동자성(근로자성)을 인정받아 판례로 쌓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 판례들은 다음 노무제공자가 소송할 때 근거가 되고, 다양한 사회적 토론의 소재가 되어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입법 논의를 촉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미수금이라는 단일 청구만 지원하기로 한 순간, 이런 판례 축적의 가능성은 원천 봉쇄된다. 무료 소송지원이라는 선의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근로자성(노동자성)이 법정에서 다퉈질 기회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된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일하는사람법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시점부터 총론은 정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머지 않아 '최저보수제'는 '적정 보수 가이드라인'으로, '부당해고 구제'는 '계정정지 이의제기 지원'으로, '건강보험 적용 확대'는 '노무제공자 의료비 지원'으로, '직장내괴롭힘 구제'는 '일터 고충상담 지원'으로 둔갑해 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법률의 강행규정은 모두 사라지고 '선의의 지원 서비스'만 남게 된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근로기준법의 무력화, 사용자 책임·의무 폐지를 향하고 있다. 이것이 일하는사람법과 K-노동복지회의소가 진짜로 하는 일이다. 근로기준법 담장을 낮추는 게 아니라, 그 담장 밖에 '사각지대 신분'으로만 구성된 별도의 마을을 지으려 한다.

그 마을에는 상담센터도 있고, 소송 지원도 있고, 휴가비·훈련비 지원도 있다. 하지만 그 마을 어디에도 '권리'라는 이름의 집은 없다. 노동자는 그 담장을 넘을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국가는 그 증명 과정을 도와주지도 않고, 담장 밖에 머물기를 선택하는 길만 깔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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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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