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문을 닫는 날은 어느 창업자에게나 쓰라린 날입니다. 그런데 어떤 창업자에게는 그날, 청구서가 한 장 더 날아듭니다. 부모에게 창업자금을 받을 때 아꼈던 증여세를 이자까지 얹어 돌려 달라는 고지서입니다. 창업자금 증여세 과세특례 이야기입니다.구조는 이렇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창업 밑천을 대 주면 5억 원을 공제하고 나머지에 10%의 낮은 세율만 매기는 대신, 증여받고 2년 안에 창업하고, 4년 안에 그 돈을 창업에 다 쓰고, 그 뒤로도 10년 동안 사업을 지켜야 합니다. 문제는 이 10년이라는 시간이, 창업이라는 일의 실제 수명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느냐입니다.
통계대로라면, 열에 아홉은 추징 대상이다
통계청 기업생멸행정통계로 보면 새로 생긴 기업 가운데 5년을 넘기는 곳은 열에 셋 정도이고, 10년까지 살아남는 곳은 열에 하나가 채 되지 않습니다. 이 평균 생존율을 그대로 대입하면, 특례를 받은 창업자가 10년 안에 무너져 감면받은 세금을 토해낼 확률은 90%를 넘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물론 특례를 신청하는 이들은 수억 원의 자본을 갖추고 위험을 알고도 선택한 사람들이라 평균보다는 오래 버티겠지만, 그 차이가 자릿수를 뒤집기는 어렵습니다. 창업을 밀어 주겠다는 제도가, 통계대로라면 적용자 대부분을 추징 대상으로 이끄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 이용도 2021년 81건, 2022년 102건에 그쳤습니다. 해마다 수십만이 새로 창업하는 나라에서, 사실상 외면받는 제도인 셈입니다.
아낀 세금은 7억 7천, 실패의 청구서는 12억 6천
숫자로 계산해 보면 창업자가 왜 이 제도를 망설이는지 금세 드러납니다. 부모에게 30억 원을 받으면 특례 덕에 증여세는 2억 5000만 원에 그칩니다. 일반 증여보다 7억 7000만 원 적은 부담입니다. 그런데 8년 차에 사업이 무너져 폐업하면 계산이 뒤집힙니다. 아꼈던 7억 7000만 원이 고스란히 추징 원금이 되고, 여기에 연 8% 수준인 이자상당액이 8년치, 약 5억 원 더해져 청구서는 12억 6000만 원을 넘어섭니다. 밑천을 소진한 실패의 자리에 세금이 겹쳐 떨어지는 이중의 짐입니다. 세법도 부득이한 사유는 추징에서 빼 주지만 그 인정 폭은 좁아서, 나란히 설계된 인접 특례에서는 법원의 파산선고 절차에 따른 폐업조차 인정받지 못해 세금이 추징된 판례가 있을 정도입니다(조심2018서2171). 시장에서 밀려난 평범한 실패는 이 예외에 들기 어렵습니다.
저울이 거꾸로 놓여 있다
인접 제도와 견주면 무게는 더 기울어 보입니다. 세법은 부모가 일군 사업을 물려받는 가업 승계에도 특례를 두는데, 정부는 승계의 사후관리 기간을 7년에서 5년으로 줄이고 업종 변경의 폭도 표준산업분류 대분류 안으로 넓혀 주었습니다. 반면 맨손으로 시작하는 창업자금 특례는 10년 그대로이고, 처음 고른 업종에 묶여 있습니다. 도입 당시에는 편법 증여를 막으려면 긴 사후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업 환경도, 나란히 있던 인접 제도도 크게 달라진 지금까지 이 기준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시장이 바뀌면 재빨리 업종을 트는 것이 창업의 생존 기술인데, 그 방향 전환마저 추징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위험이 큰 도전일수록 짐을 덜어 주는 것이 상식일 텐데, 지금은 오히려 위험이 작은 승계보다 위험이 큰 창업이 더 긴 의무를 집니다. 혜택과 조건을 다는 저울이 거꾸로 놓인 셈입니다.
실패를 세금으로 벌하지 않는 나라들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이 설계가 낯설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일본은 증여세를 상속 때까지 미뤄 주면서도, 그 돈으로 벌인 사업이 도중에 실패했다고 세금을 소급해 추징하는 장치를 두지 않았고, 승계 기업이 파산에 이르면 유예된 세금을 대부분 면제해 줍니다. 영국은 업종·고용 유지 같은 사후관리 요건 자체를 두지 않습니다. 사후관리를 두는 독일도 고용 유지 같은 조건을 걸지만, 기간은 5년으로 짧고 요건을 어겨도 전액을 소급해 물리는 대신 버틴 기간에 비례해 일부만 환수합니다. 실패와 동시에 세금이 빚으로 돌변하는 방식은, 견줄 나라를 찾기 어렵습니다.고칠 방향은 하나로 모입니다. 실패를 벌하지 않는 설계입니다. 사후관리 기간을 승계와 같은 5년 수준으로 줄이고, 버틴 연차에 비례해 추징을 덜어 내며, 파산·회생처럼 성실한 경영이 확인되는 폐업에는 유예를 이어 가거나 면제하는 출구를 여는 것입니다. 위장 창업을 가려내는 장치는 촘촘할수록 좋지만, 그 장치가 성실하게 하다 밀려난 실패까지 함께 붙잡는다면 균형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가려야 할 것은 실패의 여부가 아니라 실패의 정직함입니다. 세법은 실패를 처벌하는 법이 아니라, 도전을 뒷받침하는 법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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