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들이 강제노동과 인신매매 소지가 있는 각서를 자국 정부와 체결하고 한국에 송출된 사실이 알려지자, 노동계가 정부와 기업을 향해 진상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금속노조는 지난 29일 성명을 내고 "이주노동자 인신매매성 각서가 웬 말이냐"며 "울산시와 고용노동부는 울산형 고용허가제 설계자로서 책임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며, 현대중공업은 강제노동 실태를 조사하고 방지 대책을 내놓아라"고 촉구했다.
논란의 각서는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대외노동청이 자국 노동자들을 해외로 송출하며 작성하게 한 문서다. 대외노동청의 서면 동의 없는 이직에 대해 매달 2000달러 벌금을 매기는 내용이다. 휴업, 폐업, 심각한 부상 등 일부 예외가 있지만, 고용주와 정부의 승인을 동시에 받아야 이직할 수 있어 사실상 강제노동 강요에 해당한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경제적 약점과 벌금을 이용해 직장 이동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인신매매 논란도 불거졌다.
이번 일은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의 문제제기로 알려졌다. 지난해부터 울산시와 노동부가 조선업 인력난을 해소하겠다며 추진한 '조선업 맞춤형 외국인력 양성 시범사업'인 '울산형 고용허가제(E-9)'로 입국한 이들이다. 울산시와 HD현대중공업은 우즈베키스탄 현지에 '울산 글로벌 인력양성센터'를 세우고 교육 기자재와 강사 등을 지원했다. 지난 6월까지 380여 명이 입국해 울산 HD현대중공업 조선소에 투입됐다.
금속노조는 이에 "'너희는 조선소를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는 각서는 계약이 아니다. 강제노동이자 인신매매"라며 "국가인권위원회는 채무나 담보로 이직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를 인신매매 수단으로 인정한 바 있다. 이 사업에 관여한 모든 기관은 이직의 자유를 봉쇄하는 벌금 각서를 즉각 폐기하라"고 주장했다.
또 "자본은 각서 체결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지방정부는 권한이 없다고 발뺌하지만, 이 노동자들은 바로 현대중공업과 지방자치단체, 노동부가 구축한 인력 수급 시스템을 통해 들어왔다"며 "시스템에 기본적인 인권 침해가 발생했다면 시스템을 만든 자들이 책임지는 게 상식이다. 자본과 지방정부는 아전인수식 주장을 그만둬라"고도 밝혔다.
"노동부, 진상조사하고 '강제노동 유발 약정 금지' 지침 만들어야"
고용허가제 비자를 담당하는 노동부가 정확한 실태 조사와 피해자 보호, 재발 방지 대책 수립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주노동팀장인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지난 29일 노동부에 민원을 제기하며 "해당 사업에 참여한 국내 기업, 협력업체 및 관계기관을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 또는 이에 준하는 조사를 실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피해 노동자를 사용자와 송출기관으로부터 분리된 장소에서 개별 면담하고, 통역을 제공해 각서 작성 과정과 벌금이 부과되고 납부된 실태를 조사해 달라"고 촉구했다.
최 변호사는 해당 각서가 법에 반한다고도 지적했다. 외국인고용법 제25조는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는 자의 이직을 방해한 자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한다. 근로기준법 제7조는 사용자가 폭행, 협박, 감금 또는 정신적·신체적 자유를 구속하는 수단으로 노동자의 의사에 반해 노동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최 변호사는 "이 사건은 단순히 외국 정부와 그 국민 사이의 국외 법률관계에 따른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며 "노동자들은 대한민국 사업장에서 근무하기 위해 입국했고, 문제 각서는 국내 특정 회사 또는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하도록 강제하는 기능을 한다. 더욱이 이 사업은 울산시와 국내 기업이 우즈베키스탄 정부와 협력해 추진한 인력 도입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최 변호사는 또 "대한민국의 외국인력 정책은 노동자를 특정 사업장에 붙잡아 두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며 "그 벌금을 외국 정부가 부과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부가 관여할 수 없다고 한다면, 국내 사용자는 외국 정부나 송출기관을 통해 사업장 변경을 얼마든지 우회적으로 봉쇄할 수 있게 된다"고도 지적했다. 이어 "이러면 사업장 변경 방해를 처벌하는 외국인고용법과 강제근로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이 사실상 무력화된다"고 경고했다.
최 변호사는 해당 사업에 연관된 원청 기업인 현대중공업과 울산시와 관련해서도 "국내 사용자, 원청·협력업체, 울산시가 각서의 존재와 내용을 알고 있었는지, 국내 관계자가 각서의 작성, 설명, 제출 또는 벌금 징수에 관여했는지"를 노동부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향후 정부, 지방자치단체, 기업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외국인력 도입사업에서 이직 제한, 위약금, 보증금, 가족에 대한 제재 등 강제노동을 유발하는 약정이 포함되지 않도록 전수점검과 표준지침을 마련해 달라"며 "이미 납부된 벌금 규모와 귀속 주체를 확인하고, 피해 노동자가 이를 돌려받을 수 있도록 우즈베키스탄 정부를 포함한 관계기관과 협의해 달라"고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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