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2일 오후 7시.
창신동 골목 안, 예쁘게 리모델링된 작은 구옥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오늘은 고 노회찬 의원의 8주기 추모의 밤이다. 노회찬재단은 7월 한 달 동안 다양한 추모행사를 준비했고, 그 중에 하나가 오늘의 '시와 노래가 있는 추모의 밤'이었다.
노회찬 의원이 살아계실 때 내게 그분은 "모기가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 "좌파 좌파 좀 하지 마세요. 진짜 좌파정당은 가만히 있는데.... 짝퉁을 명품이라고 하시면 허위사실 유포에요"와 같이 속시원하하고 유머러스한 촌철살인의 발언으로 깊은 인상을 준 분이다. 그렇다고 하여 정치인으로서 그분의 지지자거나 당원도 아니었기에, 돌아가셨을 때 동시대인으로서 안타까움과 애도의 마음을 품었던 정도여서 사실 8주기가 된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권운동을 하는 친한 동네 언니를 따라 언니의 옆지기가 그린 벽화를 볼 겸 노회찬의집 6411을 찾았다. 우연한 방문은 내게 뜻밖의 인상을 남겼다. 그의 삶을 기리는 공간은 예상보다 훨씬 따뜻했고, 마치 노 의원 자신의 사람을 향한 마음이 구석구석 스며 있는 듯했다. 그 진심에 어느덧 이끌려 나는 그날 바로 재단의 벽돌기금후원자가 되었다.
사실, 오늘 '시와 노래가 있는 추모의 밤'에 오게 된 것은 그럼에도 여전히 사심이 컸다. 재단 후원인에게 오는 추모행사 안내 문자를 받았을 때 내가 평소 좋아하던 재즈보컬리스트 말로의 공연이 있다는 사실에 두말없이 신청을 했다. 그리고 행사 신청이 받아들여졌다는 알림을 받자, 마치고 노회찬 의원께서 주시는 선물은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추모의 밤은 단아한 연주자 아리의 오카리나 연주로 시작되었다. 소박하면서도 진심어린 목소리의 싱어송라이터 이란의 노래가 이어졌고, 김해자 시인의 <6411 버스> 시낭송은 객석을 조용히 적셨다. 마지막은 드디어 내가 고대하면 재즈보컬리스트 말로와 너무도 잘 맞는 호흡의 피아니스트의 깊은 연주가 채웠다. 장마가 계속되던 저녁, 6411홀 지붕에는 우박 같은 비가 내리쳤지만 그 소리마저 음악에 어우려져서 하나의 앙상블을 이뤘다. 공연의 뒤로 갈수록 '누구나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꾸던 노회찬 의원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그가 들었으면 너무도 흠뻑 젖어 들었을 음악으로 6411홀이 가득 피어올랐다.
6411버스에 대한 노회찬 의원의 발언은 정치에 문외한이라도 한 번은 얼핏이라도 들었을 유명한 연설이지만, 추모의 밤에 김해자 시인의 시로써 만난 <6411 버스>로 오래된 기억 하나가 환하게 되살아났다.
6411번, 내겐 62-1번으로 기억되는 버스.
62-1번 버스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 살았던 곳에서부터 외할머니가 혼자 사시던 곳을 이어주던 유일한 버스였다.
녹내장과 백내장으로 외할머니는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셨다. 빛과 어둠, 희미한 형체만 겨우 구분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일주일에 몇 번씩 경동시장과 중부시장을 다녀오셨다. 커다란 배낭 가득 장을 본 뒤 딸네 집에 이고지고 오시려면 늘 62-1번을 타고 오가시곤 했다. 오시면 사 오신 나물을 다듬고 생선을 손질하고, 딸과 그녀의 손주들이 맛나게 먹을 반찬을 만들어주시곤 했다. 이것이 할머니의 중요한 일상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시는 때에는 어김없이 내가 정류장에 모시고 가서 앞을 보기 어려운 할머니는 대신해서 버스 번호를 읽어드렸다. 솔직히 귀찮았다. 하지만 할머니가 쥐여주시던 용돈의 대가치고는 너무도 쉬운 일이었기 때문에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손에 쥐어진 용돈이 당시엔 너무 달콤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 시절 내 손에 용돈을 꼭 쥐어주던 할머니의 손길이 더 달달한 사랑이었음을.... 늦게나마 떠올리게 된다.
노회찬 의원이 이야기한 6411번 버스는 구로에서 출발해 강남의 빌딩숲으로 향하는 동트기 전부터 길을 나서던 새벽 노동자들의 버스다. 새벽 청소노동자들의 삶과 애환을 품은 버스다. 내 기억 속의 6411 버스엔 삶의 노곤함을 품은 기억도 애환도 없다. 단지 어린 시절 할머니와의 추억이 서렸을 뿐.
나는 발, 당신에게 가는 발바닥이다
나는 새벽 4시, 구로 가로수공원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이다
정류장이다 푸르스름하게 번져가는 어슴프레한 빛이다
공기다 함께 나눠마신 숨이다
… (중략)…
설익은 잠들을 싣고 신새벽을 건너가는
나는 헤드라이트다 길 위에 남겨진 발들을 잠시 비추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나는
차창에 비친 당신 얼굴이다
…(중락) …
우산을 씌어주는 대신, 빛의 마음을 입고 함께 비를 맞으라
빈자리를 메우는 대신 형제 곁에 서 있으라
대지처럼 서로 발밑이 되어주라
그날 말로 공연에 꽂혔던 내게 <6411 버스>가 큰 울림으로 다가와 시 전문을 받아 곱씹어 읽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나는 차장에 비친 당신 얼굴", "함께 비를 맞으라.... 대지처럼 서로 발밑이 되어주라"..... 유난히 다가온 구절들이다. 노회찬 의원이 6411 버스 이야기로서 투명인간처럼 여겨지는 사람들을 우리에게 생생한 존재로서 부활시켰던 것의 의미를 다시금 깊은 울림으로 마음에 담아본다. 마치 천장을 퉁퉁 내리꽂는 빗물처럼.
이제는 돌봄과 연대의 가치를 조금씩 더 알아가기 시작한 내게 할머니를 버스정류장까지 모시고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제는 용돈 맛이 아니라 어둠침침한 눈으로 오가시던 할머니에 대한 우정과 연대의 마음으로 할머니의 활동지원사 소임을 해내지 않을까.
한 사람을 추모한다는 것은, 그가 치열하게 살았던 삶의 궤적을 기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품었던 열정과 세상을 향한 희망을 이어서 일궈가는 것이 아닐까. 그게 남겨진 이들의 책무라는 생각이 스치는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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