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공작계획'으로 드러난 '전두환 킹메이킹'…80년 언론인 해직, 국가 책임 묻는다

[특별기고] '80년 언론인 해직의 역사 재판' 국민 대토론회 ①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80해언협)는 20일 언론인 강제해직에 대한 역사 재판으로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하고 “80년 내란집단의 언론인 강제해직은 해직 후에도 취업 제한과 감시 사찰 등의 이른바 사후 관리를 자행한 전방위적 국가폭력이었다”고 규탄했다.

이날 오전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국민대토론회에서 80해언협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언론인 강제해직에 대한 국가 사과와 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16일 역사적 재판이 시작됐다”면서 “법원의 실정법 재판과 병행해서 역사재판으로서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조정식 국회의장 토론회 참석 축사, “지금의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는 80년 해직언론인들의 희생 위에 서 있다”

80해언협 환영 성명, “조 의장의 역사관과 사회정의관이 사회 각계각층에 널리 공유되기를 소망”

토론회에 참석한 조정식 국회의장은 축사를 통해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는 80년 해직언론인들의 희생 위에 서 있다”면서 “더 늦기 전에 국회와 우리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고 언명했다.

조 국회의장은 이어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검열을 거부한 해직언론인의 싸움은 5·18정신의 표상이다”면서 “그 정신을 헌법 전문에 새기는 개헌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에 이어 국가 공직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의 해직언론인에 대한 공식 언급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축사라는 반응이 나온다.

80해언협은 토론회 후 국회 소통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 국회의장의 축사에 대한 환영 성명을 발표, “언론인 강제해직에 대한 진심어린 비판과 역사 평가에 깊은 경의와 함께 전폭적으로 환영한다”면서 “조 의장이 품고 있는 역사관과 사회정의관이 국가공동체 각계 각층에 널리 공유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이날 국민대토론회에서는 80년 내란집단의 언론탄압을 재조명하는 증거 자료 두가지가 공개됐다. 첫째로 김재홍 80해언협 공동대표(전 17대 국회의원, 서울디지털대학교 전 총장)는 기조발제에서 80년 언론인 강제해직과 사후 관리의 흉계인 ‘K공작계획’ 문서 사본과 전체 11쪽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 공개했다.

둘째, 주제발표 2에서 김주언 전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한국기자협회 전 회장)은 80년 내란집단이 K공작계획을 실행한 언론인 강제해직과 5.18광주항쟁 당시의 보도검열 지침들, 언론사 통폐합 등의 실증 자료들을 공개했다.

주제발표 1을 맡은 김서중 성공회대 명예교수 (언론정보학회 전 회장)는 군사독재정권의 언론탄압사에 대해 통사적으로 분석 정리했다.

▲20일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80년 언론인 강제해직의 역사재판 국민대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오른쪽 다섯째부터 왼쪽으로 조경태 의원, 조정식 국회의장, 김재홍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정근식 서울교육감, 전진숙 의원, 정진욱 의원 ⓒ80해언협

◇ 기조발제 (김재홍 80해언협 공동대표) 요약 :

“80년 언론인 해직의 국가폭력 실행자들과 헌정사적 의미”

민주헌정 체제에서 “언론 자유는 모든 자유를 자유케 한다”는 금언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으며, 언론 탄압은 헌법적 가치의 총체적 훼손으로 직결된다. 전두환은 1980년 보안사에 정보처를 신설하고 그 산하에 정치과, 경제과, 언론과, 종교과, 학원과를 설치해 민간 영역을 통할하기 시작하면서 정권찬탈 내란에 본격 착수했다. 내란집단은 보안사 언론조종반반장 이상재가 작성하고 사령관 전두환이 결재한 《K공작게획》을 실행에 옮기면서 정권찬탈을 본격화했다.

이 K공작계획 문건은 1989년 12월 국회 5공청산 청문회에서 복사본이 공개됐으며 1996년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에 대한 재판에서 검찰이 증거로 제시했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원본 자료와 운영계획 등을 확인해 전두환이 결재한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지금까지 공개된 문건은 표지에 보안사령관 결재란이 있으며 A4 용지 11쪽 분량의 한자가 많이 쓰인 필사본의 복사본으로 그 원본 전체는 공개되지 않았다. 원본 전체를 규명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K공작계획 11쪽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80년 내란집단의 언론인 강제해직을 음모한 K공작계획 사본]

▲80년 내란집단 보안사의 언론조종반장인 준위 이상재가 작성해 사령관 전두환의 결재를 받아 실행한 ‘K공작계획’ 사본.1쪽 표지에 전두환이 결재한‘사령관’란이 있고 그 아래 ‘작성자 언론반 이상재’가 표기돼 있다. ⓒ80해언협
▲K공작계획 2쪽으로 “단결된 군부의 기반을주축으로 지속적인 국력 신장을 위한 안정 세력을 구축한다. ⓒ80해언협
▲K공작계획 3쪽은 참고사항으로 첨부“언론반 개편 편성표”와 “회유 공작 대상자명단 (74명)”이라고 쓰여있다 ⓒ80해언협

《‘K공작계획’의 11쪽 별 주요 내용》

1쪽

• 「K공작계획」이라는 제목

• 보안사령관 결재란

• 작성자는 보안사 정보처 언론반(이상재)

2~3쪽

• 공작의 목적

• 언론을 통한 사회 분위기 조성과 군의 안정적 기반 확보

• 언론계 핵심 인사와의 협조체제 구축

4~6쪽

• 언론사별 관리 방안

• 언론사 간부 접촉

• 우호 인사 확보

• 비우호 인사 성향 파악

• 언론사별 담당자 지정

7~9쪽

• 단계별 실행계획

• 언론인 접촉

• 정보 수집

• 여론 조성

• 홍보활동 강화

10~11쪽

• 추진 일정

• 기대 효과

• 보안 유지

• 보고 체계

80년 내란의 수괴 전두환이 보안사령관 겸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상임위원장으로서 언론인 해직 명단을 결재한 장본인이며 노태우는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을 물려받아 해직 언론인의 취업 금지 제한과 감시 사찰을 감행한 책임자였다.

언론인 강제해직의 과정을 보면, ▽보안사 언론조종반이 K공작계획에 따라 수집한 언론인 동향 정보들을 취합 정리해 해직 대상자 933명 명단을 작성 ▽명단을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상임위원회(위원장 전두환) 문화공보분과위 위원 허문도에게 전달 ▽허문도는 명단을 내각 문화공보부 홍보조정실에 전달 ▽문화공보부가 해직 대상 언론인 명단을 각 해당 언론사에 하달한 것으로 정리된다.

해직 사후에도 취업 금지와 제한으로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박탈했으며 감시 사찰로 총제적 기본권을 말살한 전방위적 국가폭력이었다. 80년 언론인 강제해직과 사후 관리가 모두 전두환 KING 만들기 음모인 ‘K공작계획’에 따라 실행에 옮겨졌다.

전두환, 12.12 후 보안사 개편해 정보처 신설

-산하에 정치과 경제과 언론과 종교과 학원과 설치,

정권찬탈 본격화 ‘K공작계획’ 실행

80년 내란 과정에서 언론인 해직을 실행한 조직은 보안사의 정보처 언론과(課) 언론조종반이었음이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이들이 언론인 해직의 국가폭력을 자행할 수 있었던 힘의 배경을 찾은 뒤 구체적 실행자들을 파헤져야 한다. 세계정치사에 유례가 없는 933명에 이르는 언론인을 강제 해직시킨 국가폭력의 뿌리는 내란집단 하나회가 12.12 군사반란으로 군권을 탈취한 것에서 비롯된다. 전두환은 12.12 군권탈취 반란 후 보안사를 개편해 민간 영역을 통할하는 조직으로 정보처를 신설했다. 정보처 산하에 정치과, 경제과, 언론과, 종교과, 학원과를 설치한 것만 보아도 당시 보안사는 군 내부 정보수사기관을 떠나 정권을 찬탈하기 위한 내란 조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2.12 군사반란은 대부분 수도권 부대의 지휘관을 맡고 있던 정치군인 사조직 하나회 장교들이 육군본부, 수도경비사령부, 특전사령부에서 자신들의 직속 상관들을 총격으로 살상하고 불법 체포한 반인륜적인 범죄였다. 12월13일 아침 내란집단 하나회는 국방부 장관, 육참총장, 1군과 3군 사령관, 수경사령관, 특전사령관을 모두 자기 계열로 임명해 군권을 장악했다. 이것이 다음해인 1980년 신군부의 정권 찬탈과 광주시민항쟁 살상진압을 자행하게 한 물리적 힘의 배경이 됐다.

이같은 일련의 내란 과정에 대해 정당화하고 국민 지지기반을 공작하기 위한 것이 80년3월 보안사 정보처 언론과의 언론조종반장 이상재가 작성하고 사령관 전두환이 결재한 ‘K공작계획’이었다. 이 공작계획에 따라 언론 검열을 시행했으며 검열거부 투쟁에 나선 언론인들을 대량으로 강제해직 시킨 것이다.

80년 내란집단 신군부의 언론인 강제해직이 남긴 헌정사적 의미는 해직 언론인들의 헌법적 기본권을 총제적으로 파괴한 복합적 국가폭력이었다는 점이다. 내란집단 보안사가 K공작계획을 작성해 놓고 그들의 공작적 언론검열에 대항해 검열 및 제작 거부 투쟁을 벌인 언론인들을 강제로 축출한 반헌법적 국가폭력이었다. 당시 보안사가 언론인 해직 명단을 국보위 문공위원회를 거쳐 내각 문공부에 하달한 것 자체가 12.12 군사반란과 5.18광주민중항쟁을 살상진압한 국가폭력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당시 내란집단인 보안사와 국보위의 행위는 하나하나가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거스를 수 없는 위압적 폭력이었다.

80년 언론인 강제해직, 사후에도 취업금지-감시 사찰 등 헌법적 기본권 박탈한 전방위적 국가폭력 당해

“5.18정신 헌법전문 명기로 3.1독립혁명-4.19시민혁명과 함께 민주헌정사의 기둥 삼아야”

보안사는 언론인 강제해직 자체 뿐만 아니라 해직언론인에 대한 사후관리도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인권탄압이었다. 보안사는 K공작계획에 작성돼 있듯이 해직 언론인들을 국시부정, 반정부, 검열거부 등으로 평가한 뒤 A,B,C,급으로 분류해 사후관리를 시행했다.

보안사의 해직언론인 사후관리는 첫째, 취업의 금지와 제한이었다. 국시부정인 경우 영구 취업금지, 반정부는 1년 취업금지, 검열거부는 6개월 취업금지로 묶었다. 여기다 모든 해직언론인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언론사 취업을 금지시켰다. 보안사는 또 취업 금지 기간이 끝난 해직언론인들에게 언론사 취업을 금지하는 대신 일반 기업의 광고홍보 분야에 취직을 알선하기도 했다. 이는 국가폭력을 자행한 내란집단이 해직언론인들에게 헌법 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농단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기본권 박탈이었다.

둘째, 보안사는 해직언론인에게 해외여행과 외국 유학도 허용하지 않았다. 해직 1년이 지난 뒤 박권상 전 동아일보 논설주간이 미국 우드로윌슨국제학자센터의 연구원으로 초청받아 출국했다. 이것으로 해외 여행이 가능해졌는지 나는 주기적으로 전화해 오는 감시자에게 물었다. 감시자는 “상부에 알아봐야 한다”고 말하고는 그뒤 아무 답변이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박권상 전 주간의 경우 우드로윌슨센터의 초청을 가지 못하게 막았다간 전두환 정권이 미국 국무성의 인권정책 위반으로 압박을 받게 돼 있었다. 80년 해직언론인의 해외유학은 해직 2년후부터 개별 신원조회 심사를 거쳐야 했다.

셋째, 보안사는 해직언론인에 대해 철저히 동향 감시와 사찰을 감행했다. 주기적으로 전화를 걸어 근황을 물었으며 직업과 생계에 대해 파악했다. 해직 후 2,3년 간 신원을 모르는 감시자가 걸어 오는 전화 취재는 이루 형언하기 어려운 정신적 스트레스와 굴욕감을 던저 주었다.

80년 해직언론인들은 1987년 6월 시민항쟁에 대해 전두환 노태우 내란집단이 5.18광주민중항쟁 때와 같은 무력 진압을 포기하고 6.29 유화전략을 발표한데 힘입어 정식으로 복직할 수 있게 됐다. 언론인이 8년여만에 복직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해직언론인은 복직과정에서 해직 기간의 절반 호봉을 삭감당하는 등 인사상 불이익을 겪었다. 1988년 말 국회 5공청산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사주가 평민당 의원들의 질책을 받고 복직 1년만인 89년에야 호봉을 정상화했다.

이는 헌법적 가치와 관계가 없는 일로 보일지 모르나 그것을 지키기 위해 내란집단의 언론탄압에 거부투쟁을 벌이다 피해 입은 해직언론인들에게는 역사정의와 사회정의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토론회 축사에서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해직언론인들의 싸움은 5.18정신의 표상”이라고 강조했다. 80년해직언론인들은 그런 5.18정신의 헌법전문 명기를 결의하고 추진해 왔다. 아직도 5.18민중항쟁에 대한 폄훼가 간헐적으로 고개를 드는 현실이다. 5.18정신을 기업 임직원과 학교 교육현장에 공유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헌법전문 명기다. 3.1독립혁명과 4.19시민혁명에 내재한 불굴의 저항과 공동체적 연대 의식은 5.18광주민중힝쟁의 정신사적 연장선상에 있다. 이같은 우리의 자랑스런 민주헌정사를 헌법전문에 담아 지속가능한 미래 국가공동체의 밑돌로 굳건히 다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80년 언론인 강제해직의 헌정사적 의미를 돼새기는 최선의 길이다.

▲20일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80년 언론인 강제해직의 역사재판 국민대론회'에서 김재홍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전 17대 국회의원)가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80해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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