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권의 '빛'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을 방문한 2026년 6월 7일(미국 시간) 미국의 유력 매체들은 북한 경제의 호황에 주목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경제적 성공담의 주인공은 바로 북한"이라고 평가했으며, <뉴욕타임스>(NYT)도 북한이 '기적적인 변화'를 이루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다뤘다.
2025년 8월 한국은행이 추정한 2024년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36조 9,654억 원으로 전년(35조 6,454억 원) 대비 3.7% 증가했다. 지난 8년 만에 가장 큰 폭의 북한 경제 성장세다. 2023년의 경우도 3.1% 성장했으니 2년 연속 3%대 성장세를 유지한 셈이다.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들도 북한의 변화를 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을 100번 이상 방문한 북한 전문 여행사 영파이오니어 대표 로완 비어드의 놀라운 최근 방북 경험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과거에는 택시를 타기 위해 오랜 시간 대기했지만, 이번에는 북한인 통역사가 차량 호출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택시를 불렀고 몇 분 만에 차량이 도착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최근에 방북한 외국인들은 평양 시내의 경제 상황이 빈곤국으로 평가받던 과거와 많이 다르다는 경험담을 전했다.
WSJ에 따르면 북한 경제 발전의 주요 원인은 러시아와 중국에 있다. 2022년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러 간 군사적 밀착과 더불어 북한에 경제 상황의 반전 기회까지 선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은 2023년 여름부터 2025년 여름까지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한 대가로 100억 달러(약 15조 3,150억 원) 이상을 확보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또한 유엔의 대북 제재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중 교역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최근 월간 교역량이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김정은 정권은 대외관계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과시하고 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소위 '노딜'이라는 외교적 쓴맛을 본 김정은 정권은, 이후 신냉전 외교를 표방하며 전통적으로 북한에 우호적인 국가와 관계 강화를 도모했다. 때마침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은 일방적으로 러시아를 지지했으며, 2024년 6월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북·러 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동 조약은 양측이 침략을 당해 전쟁상태에 놓이게 될 경우 군사적 지원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맹조약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된다.
동 조약을 기반으로 북한은 2024년 10월경부터 우크라이나에 점령당한 러시아 쿠르스크에 인민군을 파병했으며, 아직 일부 인민군이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러시아는 2025년 북한 주민 3만 6천 명에게 비자를 발급했으며, 이는 전년도 9,239건에 비해 4배나 증가한 수치다. 북·러 밀착을 배경으로 러시아는 대북 제재를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으며, 북한 핵문제에서도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다.
북·러 밀착으로 소원해졌던 북·중 관계도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기념 김정은 위원장의 베이징 방문과 올해 6월 시진핑 주석의 평양 답방으로 관계 복원이 가속화되고 있다. 2026년 7월 베이징을 방문한 박태성 북한 내각 총리는 시진핑 주석을 비롯해 중국 최고위층과 연쇄 회동을 가졌다. 박 총리는 공산당 서열 5위 차이치 중앙서기처 서기와 함께 북한과 중국이 맺은 우호 협력 및 상호원조조약(북·중 우호조약) 체결 6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했으며, 리창 총리와는 각 분야에서 양측 간 교류와 협력을 확대 발전시키기 위한 문제들을 토의했다.
2017년 9월의 6차 핵실험과 11월의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직후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 정권은, 이후에도 핵무기 개발을 가속화해 화성-20형까지 선보였으며 최근에는 핵탄두 탑재 전략순항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신형 5,000톤급 구축함 두 척을 선보였다. 지난해 12월에는 8,700톤급 핵추진 잠수함 건조 현장까지 공개했다. 사실상의 핵능력을 확보한 북한이 수상 및 수중에서의 핵투발 수단을 확보해 2차 보복능력까지 가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위원장의 급사로 김정은 위원장이 20대 후반의 나이로 권력을 승계했을 때 일각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신생 정권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은 올해 집권 15년 차에 접어들었으며, 경제, 국방력, 대외관계 부문에서 외형상 일정한 성과를 과시하는 모양새다.
김정은 정권의 '그림자'
WSJ이 집중 조명한 북한 경제 '성공'의 실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최근 2년간 연속 3%대의 성장을 기록한 북한 경제 성장의 동력은 평양시 5만 세대 살림집과 지방발전 20×10정책 등 건설 분야라고 할 수 있다. 2023년과 2024년 북한 경제에서 건설 분야는 각각 8.2%와 12.3%씩 성장했다. 그러나 건설 분야의 성장에 당연히 동반되어야 할 전기·가스·수도사업 분야의 성장률은 각각 –4.7%와 0.9%에 그쳤다. 북한의 경제 성장이 내실 없는 보여주기식 건설에 의존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북한은 2026년 6월 20일부터 사흘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2차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중요 결론을 내렸으며, 경제 분야 핵심과제로 석탄공업 활성화를 강조했다. 석탄은 북한 경제의 핵심 동력으로 전기·가스·수도사업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중 교역 증가세에 힘입어 2025년 양국 교역은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의 2018~19년 수준을 회복했다. 그러나 북·중 교역은 유엔 대북 제재가 본격화하기 이전 전성기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더 중요한 것은 교역의 내용이다. 대북 제재로 수출은 구조적으로 제약된 반면, 수입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무역적자는 2025년 18억 달러로, 2014년 6억 5천만 달러의 약 3배에 달했다. 수입 중심의 북·중 교역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품목은 소비재다. 건설 분야 중심의 성장과 대북 제재로 인한 제약으로 기계류와 설비류가 거의 수입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북한 경제 성장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북·러 밀착의 효과도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북한이 러시아에 지원한 무기와 병력의 대가는 최대 98억 달러에 달하지만 대가로 받은 것은 4.5억~12억 달러에 그친다는 평가다.
지난해 대폭 증가한 러시아 방문 북한인의 98%(3만 5,839건)가 교육 비자였다. 그러나 북한 경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상당수가 대북 제재를 우회한 노동자 파견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2017년 9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안 2375호는 북한 노동자의 해외 소득 창출 및 취업 허가 발급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유엔 대북 제재를 위반한 북·러 간 경제협력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북한 민생경제다. 북한 주민의 실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곡물 가격과 환율은 지속적으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2024년 7월 초 1달러당 북한 원화는 14,000원, 백미 1kg은 6,800원, 옥수수 1kg은 3,100원이었다. 2026년 7월 초 현재 달러당 북한 원화는 58,500원, 백미 1kg은 34,000원, 옥수수 1kg은 9,600원이다. 달러는 한때 70,000원대까지 치솟은 바 있다. 북한의 임금이 일부 상승하기는 했지만 주민들이 이와 같은 물가 급등세를 쫓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5년 9월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했지만 북·중·러 정상회담은 개최되지 못했다. 올해 5월 베이징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두만강을 활용한 중국의 동해 출해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를 러시아에 할양해 동해 출해권을 상실한 중국이 동해로 나아가는 수로를 확보하는 것은 숙원이며,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협력이 필수다.
그러나 올해 6월 시진핑 주석의 평양 방문에도 불구하고 북·중 양측이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는 징후는 찾을 수 없다. 중국의 동해 출해는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자랑하는 국방력 강화도 의문의 소지가 있다. 최근 북한은 연이어 5,000톤급 신형 구축함을 선보이고 있지만 열악한 경제력과 조선산업 역량을 감안할 때 실제 전투력은 미지수다. 세계적으로 5,000톤급 최신 구축함을 건조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국가는 10여 개국에 불과하다.
이에 더해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 러시아, 중국 정도만 보유하고 있는 1만 톤급 순양함 건조까지 지시했다. 원자로 제조 경험이 없는 북한이 8,700톤급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을지 여부도 미지수다. 세계 최고 조선 기술력을 지닌 한국도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10여 년이 소요된다.
집권 15년 차를 자랑하는 김정은 정권이지만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청년교양보장법 등으로 한류와 외부 정보의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21세기 SNS와 AI 시대의 사조를 거스르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김정은 정권은 선대의 핵심 정책 기조인 통일까지 부정하는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을 공표하고 나선 상황이다.
최근 김정은 정권은 출범 후 최초로 당·정·군 연합회의를 개최해 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박희철과 추종자들의 '특대형 부패'를 질타하고 부정부패와의 전쟁 강화를 예고했다. 지난 2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던 조용원이 3개월 만에 다시 조직지도부장으로 복귀했다.
북한은 노동당이 지배하는 당국가체제이며, 그 핵심이 조직지도부다. 그 조직지도부의 인민군 담당 책임자가 특대형 범죄에 연루되었다면 그 영향은 일파만파일 것이다. 외형상 건재한 것으로 보이는 집권 15년 차 김정은 정권의 현실이다.
북한이 가야 할 길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 정권은 미국과의 장기전에 돌입했으며, 경제적 자력갱생, 국방력 강화, 신냉전외교, 그리고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길'을 전략으로 선택했다. 이 같은 전략은 외형상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한계를 내재하고 있다.
막대한 석유 자원을 보유한 베네수엘라와 이란 경제가 위기에 처한 것은 미국과의 대립으로 인한 제재 때문이다. 쿠바 역시 미국의 제재로 국가적인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질서와 규범에 연연하지 않는 힘의 논리에 기반을 둔 대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북한 역시 미국과의 관계 개선 없는 체제 안정과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 정권이 이를 명심할 일이다.
김정은 정권은 올해 3월 개헌을 통해 통일 개념을 삭제하고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는 영토조항을 신설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개헌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하며, 북한 당국은 통일과 민족 개념을 삭제한 내용을 주민들에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적대적 한반도 2국가론은 선대인 김일성과 김정일 정권의 기조와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1991년 9월 유엔에 개별 국가로 동시 가입한 남북은 남북관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그해 12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해 쌍방 사이의 관계가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점에 동의하고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통일시점까지 사실상 국가관계로 지내겠다는 것이며, 상호 체제 존중과 내정불간섭, 무력침략·상호비방 금지도 합의사항이다. 이를 기반으로 남북은 6.15공동선언을 도출하고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으로 대표되는 남북관계의 일상화 시대를 개막했다. 이로 인해 1990년대 소위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경제는 상대적 안정을 구가할 수 있었으며, 기아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이재명 정부는 대통령까지 나서 윤석열 정부 시기 평양 무인기 침투 등 일부 모험주의적 대북정책에 유감을 표명하고 남북관계 재개 및 평화적 공존 의사를 지속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북핵 문제도 북핵 개발 중단 또는 동결을 입구로 하는 단계적 현실론을 제시하고 트럼프 정부의 북·미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자력갱생과 신냉전 외교, 열악한 상황에서의 국방력 강화는 북한 경제의 왜곡을 심화시킬 뿐이다. 숙청을 통한 공포정치도 결국 한계에 봉착한다는 것은 역사의 자명한 교훈이다.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은 남북관계의 고비용 구조를 형성해 결국 북한의 부담만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북한이 당면한 문제의 근본적 해법은 북·미관계 개선과 남북 평화적 관계의 회복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북한 문제를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이재명 정부도 한반도 평화 정착과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도 한국과 미국은 현실적 인식을 공유하는 모양새다. 집권 15년 차 김정은 정권이 적대적 2국가론과 인민대중제일주의는 결코 함께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실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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