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윤의 식탁 위 이야기] ⑤김치가 과학인 이유

발효가 만드는 맛과 건강

지난 글에서 나는 '가공'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며, 발효야말로 인류가 오래도록 이어 온 '이로운 가공'이라고 말했다. 그 대표 선수가 바로 우리의 김치다. 그런데 김치를 '몸에 좋은 전통 음식' 정도로만 여기기엔 그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너무 많다. 배추 한 포기가 김치가 되는 과정은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이 벌이는 정교한 과학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우리가 매일 먹는 김치 속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 '몸에 좋다'는 말은 어디까지 사실인지를 식품학의 눈으로 들여다본다.

김치는 살아 있는 '미생물의 작품'이다

먼저 분명히 해 두자. 김치는 '담가서 익히는' 음식, 곧 발효식품이다. 발효란 미생물이 당 같은 성분을 분해하며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말한다. 우리가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버무려 두면 채소에 원래 붙어 있던 젖산균(유산균)이 서서히 깨어나 활동을 시작한다. 이들이 채소의 당분을 먹고 젖산을 비롯한 여러 물질을 만들어내면서 밋밋한 절인 배추가 시고 깊고 감칠맛 나는 김치로 탈바꿈한다.

핵심은 이 일을 사람이 아니라 '미생물'이 한다는 데 있다. 김치는 담근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미생물이 살아 움직이며 매일 조금씩 익어 가는 '살아 있는 음식'이다. 냉장고 속 김치의 맛이 날마다 달라지는 것도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일꾼들이 쉼 없이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맛의 비밀, 미생물들의 릴레이 경주

더 흥미로운 것은 김치를 익히는 미생물이 한 종류가 아니라는 점이다. 발효가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 균이 릴레이 경주하듯 차례로 바뀐다.

발효 초기에는 '류코노스톡'이라는 균이 앞장선다. 이 균은 젖산과 함께 시원한 단맛을 내는 '만니톨'과 톡 쏘는 청량감을 주는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낸다. 갓 익은 김치의 그 상쾌하고 시원한 맛이 바로 이 시기의 작품이다. 시간이 지나면 '락토바실러스', '웨이셀라' 같은 균이 뒤를 이어 우세해지는데 이들은 주로 신맛을 내는 젖산을 부지런히 만든다. 김치가 점점 시어지는 것은 이 후발 주자들이 활약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다.

그렇다면 이 릴레이의 순서와 속도는 무엇이 정할까. 바로 소금 농도와 온도다. 짜기와 온도에 따라 어떤 균이 우세해질지가 달라지고 그것이 곧 김치의 맛을 좌우한다. 특히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익힐수록 시원한 맛을 내는 균이 오래 활약해 깊고 개운한 맛이 난다. 우리가 김치냉장고를 쓰고 땅에 김칫독을 묻던 것은 과학이라는 말을 몰랐어도 이미 '저온 숙성의 과학'을 몸으로 터득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김장독을 묻은 조상의 지혜가 알고 보면 미생물 생태를 다루는 정교한 발효 관리였던 셈이다.

몸에 좋은 가공, 발효의 선물

김치가 건강식으로 주목받는 이유도 이 발효에 있다. 발효 과정에서 늘어난 젖산균 가운데는 우리 장에 이로운 이른바 '프로바이오틱스' 역할을 하는 것들이 있다. 이들이 장에 들어가면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과 균형을 돕는데 장내 미생물의 상태는 소화뿐 아니라 대사와 면역, 염증 조절과도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를 살핀 국내 임상연구들이 있다. 비만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Han 등, 2015)에서는 잘 익힌(발효) 김치가 갓 담근 김치와 다른 방식으로 장내 미생물 구성과 대사 관련 지표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나 같은 김치라도 '발효의 정도'가 몸에 다르게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보다 최근인 2024년에는 과체중 성인 55명을 대상으로 위약(가짜약)과 비교한 무작위·이중맹검 임상시험(Lee 등, 2024)이 김치 섭취가 체지방과 장내 미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살폈고 김치를 섭취한 쪽에서 체지방과 장내 미생물 지표가 개선되는 방향의 결과가 보고됐다.

발효가 채소를 그저 오래 보관하는 수단을 넘어 없던 이로움을 새로 '더해 주는' 가공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도 나는 균형을 잃고 싶지 않다. 김치가 몸에 이롭다는 것과 김치가 무슨 병이든 낫게 하는 만능 식품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김치의 건강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유망하지만 아직 '쌓이는 중'이다. 세포와 동물 실험은 많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역학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어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김치를 먹으면 면역력이 올라간다'는 식의 단정적인 광고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나트륨이다. 김치는 소금으로 절여 만드는 만큼 많이 먹으면 나트륨 섭취가 늘 수밖에 없다. 짜게 먹는 식습관은 혈압 등에 부담이 되므로 '몸에 좋다니 많이'는 곤란하다.

다행히 김치에는 나트륨의 나쁜 영향을 어느 정도 덜어 주는 칼륨과 식이섬유도 함께 들어 있지만 그렇다고 짠 김치를 무제한으로 먹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요컨대 특정 음식을 맹목적으로 떠받들거나 반대로 악마화하는 '푸드 패디즘'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김치도 '적당히, 너무 짜지 않게, 골고루'라는 원칙 안에 있을 때 가장 이롭다.

발효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김치 한 접시는 결국 우리에게 이런 것을 일러 준다. '가공했으니 나쁘다'도 '천연이니 무조건 좋다'도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발효는 인류가 미생물의 힘을 빌려 음식을 더 맛있고, 더 오래가고, 더 이롭게 만들어 온 지혜로운 가공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가공되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다.

우리 조상들은 미생물이라는 말을 몰랐어도 온도와 소금과 시간을 다루며 이 정교한 과학을 실천해 왔다. 그러니 김치를 먹을 때 한 번쯤 떠올려 볼 만하다. 지금 이 한 젓가락 안에서도 수많은 미생물이 부지런히 일하며 맛과 건강을 빚고 있다는 사실을. 그 놀라운 과정을 이해하고 즐기되 과장 광고에 휘둘리지 않고 짜지 않게 즐기는 것. 그것이 우리 발효음식을 가장 슬기롭게 대하는 길이다.

다음 편에서는 오늘 이야기 끝에 등장한 '나트륨'을 이어받아 외식 음식은 왜 그토록 짜고 단지, 그 맛의 설계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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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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