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국가 전략사업으로 검토하는 가운데 국민의힘이 중앙당 지도부와 전북도당을 중심으로 잇따라 부정적 입장을 내놓으면서, 2023년 새만금 잼버리 파행 당시 전북을 향해 집중됐던 정치 공세가 이번에는 호남 반도체를 겨냥해 되풀이되고 있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23년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 당시 전북을 향해 거센 공세를 퍼부었던 국민의힘이 이번에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구상에 대해서도 중앙당 지도부부터 전북도당까지 일제히 비판 대열에 나서면서 "호남 현안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의 출발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충청권에 새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정부 차원에서도 남부권 반도체 투자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기업 자율성 침해" 프레임을 꺼내 들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산업을 호남에 보내겠다고 한다"며 "대통령이 직접 '니가 가라 호남'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동욱 수석최고위원도 "호남의 대규모 반도체 투자가 기업의 자율적 판단이 아니고 정부의 압박에 의한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라고 했고, 김재원 최고위원 역시 민주당 전당대회와 연결 지으며 "호남 민심을 얻기 위한 카드 아니냐"는 취지의 의혹을 제기하면서 "모든 산업현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반도체 하나 만이라도 나라의 미래를 위해 아끼고 가꿔야 할 산업임에도 정권의 목적에 의해 팔 비틀기식으로 결정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안철수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에게 공기업도 아닌 사기업에 수백 조 원의 투자를 특정 지역에 하라고 하명할 권한이 있느냐"고 비판대열에 가세했다.
안 의원은 "대통령과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서 멱살 잡고 끌고, 민주당이 뒤에서 부추기니 400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반도체 인프라가 한 지역에 뚝딱 떨어지는 형국"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전북특별자치도당도 중앙당 기조와 보조를 맞췄다.
전북도당은 25일 논평에서 "국가 전략산업의 투자 결정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닌 기업의 자율적 경영 판단과 산업 경쟁력의 기반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 "수백조 원 규모의 국가 전략산업 투자가 기업의 경영 판단보다 정치적 일정에 맞춰 추진되는 듯한 모습은 매우 우려스럽다"며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둔 선심성 발표로 비쳐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민의힘의 이같은 태도가 지난 2023년 새만금 잼버리 파행 당시에 '가짜뉴스'를 마구 생산하면서 일방적으로 전북을 공격했던 국민의힘의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공세와 겹쳐 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당시 국민의힘 일부 인사들은 잼버리 파행 책임을 전북에 집중시키며 새만금 SOC와 전북 예산을 겨냥한 공세를 이어갔다. 전북 입장에서는 국가적 행사 실패의 책임이 지역 전체에 전가되는 듯한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논의가 본격화되자 장동혁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앞장서 부정적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국민의힘은 "정부가 기업 투자를 정치적으로 압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지만, 지역에서는 "결국 호남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것 자체를 불편해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특히 반도체 클러스터와 같은 국가 전략산업은 기업 판단 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용수와 전력, 도로·항만·공항 등 기반시설, 인력 양성, 세제 혜택, 정부 지원, 지방정부의 인허가 협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평택 반도체단지 역시 기업 투자와 정부 산업정책, 지자체 지원이 결합된 결과라는 점에서 "기업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는 논리 만으로는 국가 전략산업 입지 논의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논의는 수도권 일극 집중을 완화하고 국가 산업지도를 재편하는 '국가균형발전 의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잼버리 파행 때처럼 전북과 호남을 향한 비판 공세에 먼저 나서는 모습은 지역민들에게 또 다른 정치적 소외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히 수도권 일부 언론에서 "반도체 인재가 호남까지 오겠느냐"는 취지의 보도를 내놓자, 광주·전남에서는 "지역을 폄훼하는 수도권 중심 시각"이라는 반발도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다.
민형배 광주·전남통합특별시장 당선인은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호남에는 인재가 없어서 공장이 와도 사람이 없다는 식의 논리는 사실과 정반대"라며 "현실을 전혀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모른 체하는 서울 중심 시선이자 호남을 한 번 더 깎아내리는 정치적 기사"라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민 당선인은 "전남·광주는 등록인구만 300만 명이 넘는 생활권이며, 전남대와 조선대, GIST, 한국에너지공과대(KENTECH) 등에서 꾸준히 이공계 인재를 길러내고 있다"며 "문제는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23년 새만금 잼버리 때 전북을 향했던 정치 공세가 이번에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겨냥하고 있다는 지역사회의 인식 속에서, 국민의힘이 과연 국가 전략산업의 균형발전을 바라보는 정당인지, 아니면 수도권 중심의 기득권 논리에 머물러 있는 정당인지에 대한 물음도 함께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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