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은 결국 인간의 일상이고 본질이다

[최재천의 책갈피] <단절(들)> 클레르 마랭 글, 류재화 번역

"탄생이라는 '행복한 사건'을 단절이라는 개념이 전달하는 부정적 의미와 바로 연결 짓는 게 쉽지는 않다. 그러나 출생은 최초의 단절이기도 하다. 출생이 전제하는, 그리고 파생시키는 근본적 변화를 생각하면 말이다."

탄생은 대체로 '이어짐'일진대, '단절'과 연결시키기에는 당혹스러웠던 모양이다. 다음 서술을 보자.

"탄생은 흔히 시작으로 여겨지지만, 어머니, 아이, 그리고 커플에게는 깊고 불안한 단절이기도 하다. 다른 가족 간 관계가 정서적 관계를 변화시키고, 재정의하게 한다...따라서 한 출생으로 인한 파괴적 힘을 진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단절'로 사유하기는 퍽이나 쉬워보인다. 루 안드레아스-살로메는 릴케에게 보낸 이별의 편지에 이렇게 썼다. '당신의 실루엣이 풍경 속의 작은 디테일처럼 희미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표현을 말로 했거나 글로 썼다면, 이런 단어에 무감한 채로 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런 이별의 말에는 어떤 진실이 담겨 있을까" 다른 형식의 단절이다.

단절은 두부모 자르듯 깔끔한 분리일 수 있을까.

"'두 삶이 그토록 오랫동안 얽혀 있어 떼려야 뗄 수 없게 된 상태에서, 한쪽의 새로운 삶이 예고될 때 다른 한쪽의 삶은 지워져야 할까?' J.-B. 퐁탈리스는 묻는다. 서로 한 몸으로 녹아들어 무엇이 자신의 것이고 무엇이 다른 사람의 것인지 더는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몸과 마음을 어떻게 분리하는가?"

이렇게 해서 '단절'은 엄연한 철학적 용어로 자신의 위상을 뽐내게 된다. 끊어 버리기, 가족을 떠나기, 가정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기, 고향을 떠나기, 직장을 그만두기, 헤어지기, 알츠하이머 병에 걸렸다는 것. 저자가 다루지는 않았지만 궁극적으로 죽음이라는 영원한 '단절'에 이르기까지.

제목부터가, 표지디자인부터가 마치 프랑스 치즈처럼 프랑스 내음을 풍겨낸다.

철학자 클레르 마랭은 수많은 철학적 명구를 검토하고, 문학작품 속에서 여러 사례를 찾아내며 '단절'이라는 일상어를 철학의 사유체계로 끌고 간다. 모든 철학이론이 그러하듯 결론은 인간적이다. '단절'은 결국 인간의 일상이고 본질이다. 시련을 통해 인간은 좀 더 인간적이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을 살펴보다 놀랬다. 책이 인용한 참고문헌 중 거의 대부분이 이미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다시 한번 번역자들의 노고에 대해 깊은 감사를 적어야 한다.

▲ <단절(들)> 클레르 마랭 글, 류재화 번역 ⓒ사람in

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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