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팀이 올 것 같아요?'
2025~2026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대회 준결승과 결승이 한국의 수원에서 열리고 조선(북한)의 내고향여자축구단이 4강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러 사람들이 던진 질문이다. "안 온다고 하네요." 나는 4월 중하순에 평양을 방문하고 서울로 돌아온 한 호주 동포로부터 들은 이 얘기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 동포는 조선축구협회 관계자로부터 '불참' 의사를 확인했다고 했다.
"정 선생, 올 것 같으니 공동응원을 준비하면 좋겠어요."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윗선에선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며 나에게 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그 징후로 4월 말에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회를 주목하라고 주문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자축구의 선전은 아시아 대륙 전체를 환하게 밝히는 등불입니다."
살만 빈 이브라힘 알칼리파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이 밴쿠버에서 김일국 조선축구협회 회장에게 한 말이다. 인도의 시인인 타고르가 식민지 조선을 가리켜 '동방의 등불이 될 것'이라는 취지로 쓴 시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살만은 "조선 여자축구는 세계적인 모델이며, AFC는 앞으로도 조선축구협회의 포부를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FC가 내고향팀의 방한을 성사시키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엇갈린 소식을 접하면서 반신반의하던 5월 4일에 뉴스 속보를 접했다. 내고향팀이 온다는 것이었다. 그 전에 나는 정부와 민간단체 관계자들에게 내고향팀이 오면 공동응원단을 구성하자고 제안했던 터였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겨레통일문화재단과 평화네트워크는 지난 3월 호주에서 열린 아시안컵 여자축구 대회에 시민 응원단을 조직해 호주 동포들과 한국팀과 조선팀을 열띠게 응원한 바도 있었다. 민간단체들과 다양한 경로로 대화를 이어가면서 5월 11일과 5월 13일 두 차례의 회의를 갖고 '2026 AFC-AWCL 여자축구 공동응원단'을 결성하기로 했다.
이 공동응원단에는 시민사회단체 연대기구들인 남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시민평화포럼, 자주평화통일연대 등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등 200여 개 단체들이 함께하기로 했다. 회의에 모인 관계자들은 빗발치는 언론의 취재 요청에 효과적으로 임해 달라며 필자를 단장으로 선출했다. 아울러 내고향팀만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수원FC도 응원한다는 취지로 준결승의 공식 응원 명칭도 '수원FC 위민과 내고향여자축구단 공동 응원'으로 정했다. 어느 팀이 올라가도 결승전 응원에도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 국민 혈세 3억 원으로 북한 축구팀 응원'이라는 취지의 보도가 계속 쏟아졌다. 일부 언론은 '관제 응원'이라는 프레임까지 씌웠다. 그런데 이번 공동응원은 '선민후관'이었다. 민간이 먼저 공동응원단을 조직하겠다는 의사를 정부에 전하자 정부도 남북교류협력기금 등을 통해 협력하겠다고 응답하면서 이뤄진 것이었다.
물론 '민간단체의 공동응원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문제제기는 뼈아프게 다가왔다. 남북교류협력을 지원하는 데에 주목적이 있는 교류협력기금 사용이 공동응원에 부합한다고 판단했지만, 대의를 앞세운 나머지 여론의 반응을 미리 살펴보지 못한 점은 불찰이었다.
'하늘도 야속하지.' 전날까지 쾌청했던 하늘은 수원FC와 내고향팀의 준결승이 열린 20일 저녁에는 거센 비바람에 자리를 내주었다. 경기 직전 나의 시선은 '이번에도 조선 선수들이 하이파이브를 거부할까'에 맞춰졌다. 열흘 전 중국 쑤저우에서 열린 17세 이하 여자대표팀 경기에서 조선대표팀은 한국 선수들의 악수도, 하이파이브도 받지 않았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 선수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하이파이브도 했고 경기 중 넘어진 수원FC 선수의 팔을 두드리기도 했으며 경기 후에는 가벼운 손 인사도 나눴다. 공동응원단의 목표가 '평화'와 더불어 '페어플레이'였는데, 조금이나마 이 정신이 구현된 셈이다.
'어느 팀을 응원하세요?' 많이 받은 질문이었다. 단장으로서 양 팀의 선전을 기원한다면서 '무승부'라고 말하다가 말끝을 흐리곤 했다. 이번 경기는 반드시 승부를 가려야 했고, 본 경기가 연장전을 거쳐 승부차기까지 가면, 어느 팀이 결승에 올라도 경기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공동응원단을 향한 후폭풍이 걱정된 탓인지, 수원FC가 올라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고향팀의 2 대 1 역전승으로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에는 기쁨에 겨워 껑충껑충 뛰는 내고향 선수들과 얼굴을 감싸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수원FC 선수들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내 눈가에도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이슬이 맺혔다.
악천후 속에서도 약 2200명이 함께한 공동응원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인색했다. 일부 언론에선 '내고향팀 응원 소리가 더 컸다'거나 '지소연 선수가 페널티킥 실축을 했을 때 환호성이 나왔다'는 식의 보도를 내놨다. 하지만 수원FC가 우세할 때에는 내고향의 분발을, 내고향이 앞서갈 때엔 수원FC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더 높았다. 지소연의 실축에도 환호했다기보다는 '아〜'하는 탄식 소리가 더 컸다.
사흘 후 뙤약볕이 내리쬔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결승에선 내고향이 일본의 도쿄 베르디 벨레자를 1대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내고향 선수들은 기쁨에 겨워 인공기를 들고 손을 흔들면서 경기장을 돌았다. 선수들이 공동응원단 앞에 이르자 2천 명에 육박한 공동응원단은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내고향'에서 왔다고 여겼는지 조선이 고향인 이산가족과 북향민의 환호가 더 컸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선 선수들이 '적대국'이라고 배운 한국에 와서 일본팀을 꺾고 우승하고, 한국 시민들은 인공기를 펼쳐 들고 자축하는 조선 선수들을 열렬히 축하해주는 장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저 선수들은 우리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들을 수 없는 질문을 떠올리던 사이에 옆에 있던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가 소감을 물었다. "정치가 아직 하지 못한 일을 스포츠가 먼저 보여줬고, 응원단이 동포애로 이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답했다.
이번 대회 나의 또 다른 관심은 '내고향 선수단이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의 질문에 어떻게 응할까'에 있었다. 내고향 감독인 리유일은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2023년 9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한국과의 8강전 이후 진행된 기자회견과 2024년 2월 '파리 올림픽' 여자축구 아시아 최종예선 일본과의 경기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가 '북측'이나 '북한'이라고 표현하면서 질문하자 공식 국호를 사용하지 않으면 답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었다. 두 달 전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하고 가장 명백한 언사와 행동으로 철저히 배척하고 무시하면서 다루어 나가겠다"고 밝혔던 터였다.
그런데 결승에 앞서 여러 차례 있었던 공식 기자회견에서 내고향 선수단은 한국 기자들과도 일문일답에 응했다. '어? 배척하지도 무시하지도 않네.' 기자회견장에 들어갈 수 없었던 나는 동영상을 살펴보고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에게 물어본 결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국 기자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조선'과 같은 공식 국호도 사용하지 않고 조선이 질색하는 '북한'이나 '북측'이라는 표현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질문하자, 리유일 감독과 김경영 선수도 하나하나 답을 이어갔던 것이다. 국가대항전이 아니라 클럽 간 경기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우승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기자회견 막바지에 한 기자가 "북쪽, 북측 여자 축구가 과거부터 굉장히 수준이 높다"고 말하면서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리 감독은 "호칭을 좀 바로 해달라"고 했는데, 해당 기자는 "어떻게 해드릴까"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조선 축구단 통역사는 "국호를 바로 해달라"고 했고, 옆자리에 있던 최우수선수(MVP) 수상자이자 주장인 김경영 선수는 "우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질문을 던진 기자 입에선 끝내 공식 국호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날 기자회견은 내고향 선수단이 항의의 뜻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기자회견장을 떠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를 두고 여러 언론은 조선 선수단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과연 이렇게만 해석할 수 있을까? 만약 해당 기자가 호칭을 '무음'으로 처리했다면 어땠을까? 더 나아가 공식 국호를 사용했으면 어땠을까? 한 단어의 차이가 빚어낸 결과가 너무나도 컸기에 던지는 탄식어린 질문이다.
아마도 내고향 선수단은 한국 기자가 '북한'이나 '북측'이라고 부르면서 던지는 질문에는 일절 답하지 말고 항의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2023년 7월부터 조선은 '남조선' 대신에 대한민국, 한국으로 표현하기 시작했고 '두 국가'를 선언한 이후에는 이러한 기조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 언론은 공식 국호 사용을 여전히 꺼린다. 흔히 스포츠는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적대적인 남북관계에서 스포츠마저도 정치에 종속되어 있는 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호칭 문제를 둘러싸고 '차집합'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기자가 이 부분을 무음으로 처리해 질문하면 내고향 선수단은 답변을 했다. 한국의 '특수관계론'과 조선의 '두 국가론' 사이에 '기묘한 교집합'이 확인된 셈이다. 이는 조선이 두 국가론에 대한 입장은 확고한 반면에 적대성에 있어서는 가변적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성찰이 필요하다. 조선이 적대적이고 모욕적이라고 간주하는 표현을 고수하면서 적대성의 책임을 저쪽으로만 전가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를.
기실 내고향팀의 방한 자체가 적대성이 완화되었다는 증표라고 할 수 있다. 불과 2년 전처럼 양측이 풍선을 날리고 확성기 방송을 틀어대면서 일촉즉발의 상태가 계속되었다면, 내고향팀의 방한은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내고향 선수들이 수원FC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페어플레이와 '국호 무음' 질문에 답변을 한 기자회견을 떠올려 보면, 적대성을 조금씩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희망을 담아 묻게 된다. 다음 국제경기에서 조선 선수단에게 공식 국호를 사용해 질문해 볼 기자, 누구 없소?
끝으로 이번 공동응원과 관련해 색다른 소회를 밝히고자 한다. 우리 응원단을 격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일부 한국 언론 및 축구팬과 내고향 선수단은 우리에게 공히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국내에선 '왜 우리팀이 아니라 공동응원을 했냐'는 핀잔이 나왔고, 내고향 선수단은 경기장에 모인 공동응원단을 없는 존재처럼 대했다. 나는 전자의 반응에는 동포애를 이해해달라고, 후자의 반응에는 동포애를 잊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다.
동포애? 국내에선 분단이 장기화되고 남북 교류협력마저 끊기면서 동포애를 느끼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번 공동응원을 통해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동포애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에선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을 동족에서 영원히 배제하겠다"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족 개념 지우기에 바쁘다. 이러한 조선의 기조에는 같은 민족이라는 한국에 대한 배신감과 좌절감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을 게다. 그런데 이해와 존중과 사랑의 정신이 담긴 동포애는 다르다. 나는 우리의 이런 마음을 조선에 전하는 것이 '적대적 두 국가론'에 가장 우호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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