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선거는 공천에서 끝난다." 전북 정치권에서 오랫동안 회자된 말이다.
실제로 22대 총선에서 전북 10개 선거구는 모두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차지했다. 전국 어느 지역보다 강한 민주당 텃밭이다. 그러나 전북 정치가 처음부터 특정 정당 일색이었던 것은 아니다.
제헌국회부터 현재까지 76년간의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분석해 보면 전북 정치 역시 치열한 경쟁과 극적인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48년 제헌국회 선거 당시 전북은 특정 정당이 지배하는 지역이 아니었다. 전주부·군산부·이리부를 비롯해 다수 지역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고, 한국민주당·대한독립촉성국민회·조선민족청년단 등 다양한 정치세력이 의석을 나눠 가졌다.
정당보다는 지역 명망가와 독립운동 경력, 개인적 영향력이 당락을 좌우했다.
1950년대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유당이 전국적으로 세력을 확장했지만 전북에서는 무소속 후보들이 강세를 유지했다. 당시 전북 정치의 중심에는 유진산, 이철승 등 전국적 정치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정당을 옮겨 다니면서도 지역 기반을 유지하며 당선됐다. 정당보다 인물이 우위에 있었던 시기다.
전북 정치가 본격적으로 전국 정치구도 속으로 편입된 것은 박정희 정권 출범 이후다. 1963년 제6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은 전북 대부분 지역을 장악했고, 1967년 제7대 총선에서는 사실상 전석을 석권했다. 산업화와 경제개발이 국가적 화두였던 시기, 여당 조직력이 지역 정치에도 강하게 작동한 결과였다.
하지만 전북은 일찍부터 야당 성향을 드러냈다. 1970년대 들어 신민당이 전주·남원·정읍 등지에서 당선자를 배출하며 민주공화당 독주에 균열을 냈다. 전국적으로 유신체제가 강화되던 시기에도 전북 유권자들은 야당에 꾸준히 표를 던졌다.
결정적 전환점은 1988년 제13대 총선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끈 평화민주당이 전북 전 지역을 석권한 것이다. 당시 14개 선거구에서 모두 평민당 후보가 당선됐다. 이는 단순한 선거 결과를 넘어 전북 정치의 정체성을 규정한 사건이었다.
이후 전북은 민주계 정당의 핵심 기반으로 자리 잡게 된다. 1990년대 들어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으로 당명이 바뀌었지만 전북의 선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민주계 정당의 지배력은 더욱 강화됐다. 1996년 총선에서는 14석 중 13석을 새정치국민회의가 차지했고, 2000년 총선에서도 새천년민주당이 대부분 의석을 확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불었던 2004년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이 전북 전 의석을 석권했다. 민주개혁 세력에 대한 지지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이후 통합민주당, 민주통합당 등 당명이 바뀌어도 민주당 계열 정당의 우위는 이어졌다.
그러나 전북 정치에도 예외는 있었다. 2016년 제20대 총선이다. 당시 안철수 의원이 주도한 국민의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전북 10석 가운데 7석을 가져갔다. 민주당은 단 2석에 그쳤고, 전주을에서는 새누리당 정운천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까지 연출됐다.
전북 정치권에서는 이를 "민주당에 대한 경고 투표"로 해석하고 있다. 특정 정당 독점에 대한 피로감이 국민의당 돌풍으로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당시 정동영, 김관영, 유성엽, 이용호 등 지역 중진들이 국민의당으로 이동하며 민주당에 맞섰다.
하지만 실험은 오래가지 못했다. 국민의당 분열과 정계 개편 이후 전북 민심은 다시 민주당으로 회귀했다. 2020년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10석 중 9석을 차지했고, 2024년 22대 총선에서는 10석 전석을 석권했다.
전북 정치사를 관통하는 가장 큰 특징은 민주화 이후 민주계 정당의 압도적 우위다. 1988년 이후 치러진 10차례 총선 가운데 보수정당이 차지한 지역구 의석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현재 전북에서 총선의 최대 변수는 여야 경쟁이 아니라 민주당 경선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정치학계에서는 이를 지역주의 정치의 전형적 사례로 분석한다. 반면 지역 정치권 안팎에서는 경쟁 약화가 정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민주당 공천이 사실상 당선을 의미하는 구조가 굳어지면서 정치인들이 유권자보다 공천권에 더 민감해졌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76년 전 전북 정치가 무소속과 다양한 정당이 경쟁하던 다원적 구조였다면, 오늘날 전북은 민주당 일극 체제로 수렴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6·3 지방선거는 전북 정치사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남겼다.
민주당 후보와 무소속 후보 간 경쟁이 예상보다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오랫동안 굳어져 있던 정치 지형에 균열이 나타났다. 최종적으로 민주당 후보인 이원택이 승리했지만, 선거 과정 자체가 전북 정치에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건강한 지방자치는 특정 정당의 승리가 아니라 경쟁을 통해 완성된다. 정치인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공천권자가 아니라 유권자여야 한다. 앞으로 전북 정치가 다시 경쟁 체제를 회복할지, 아니면 현재의 구조를 유지할지는 지역 정치가 풀어야 할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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