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 관련 방송을 보다 보면 자주 들리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회초리'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는 "진정한 보수를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나를 회초리로 써 달라"라는 표현을 연일 쓰고 있다. 12.3 내란 이후 국민의힘에 대한 심판을 많이 이야기하면서 주로 국민의힘에게 선거 패배의 충격을 줘야 한다는 맥락이다.
김 후보뿐만 아니다. 다른 정치인·평론가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회초리'를 언급하며 당을 막론하고 흔하게 쓰고 있다. 박성훈 국민의힘 대변인은 5월 4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남은 것은 국민의 매서운 회초리뿐"이라고 발언했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때에는 정의당 대표가 "기득권 양당 내로남불 정치에 회초리를 들어달라"고 하며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선거 패배 후 "국민의 회초리 겸허히 받겠습니다"와 같은 문구의 현수막이 내걸리는 모습도 익숙하다. 선거에서만이 아니라 견제와 개혁 요구 또한 너무 자연스럽게 '회초리'에 비유하곤 한다. 최근에는 지난해 12월, 한승우 전주시의원이 "전주시의회를 개혁하기 위해 회초리를 들어 주십시오"라고 공개 발언한 사례가 있다.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폭력'을 미화하는 정치
이렇듯 '회초리'라는 말은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특히 정치적 상황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저희는 회초리를 겸허히 맞을 준비가 돼 있다", "더 많은 회초리를 부탁드립니다" 같은 말들이 담고 있는 뜻은 무엇일까? '회초리'는 보통 누군가를 혼내서 잘못을 깨닫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게다가 '회초리'가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누군가(주로 어린이·청소년)를 때리는 것, 즉 체벌이다. 그리고 체벌은 명백한 폭력이며 학대다. 아동복지법에서 체벌을 금지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제5조 제2항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된다.") 학교 체벌도 금지됐고, 가정에서의 체벌 역시 아동학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회초리가 의미하는 것은 결국 불법 행위이자, 폭력이며, 아동학대인 것이다.
이런 표현들의 전제는 무엇인가? 누군가를 때려서 교정하고 훈육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인식이다. 만약 체벌이 정말로 폭력이며 학대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면, 시민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그런 행위에 비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민에게 학대를 당하겠다", "더 많은 폭력을 가해 달라"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회초리를 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 이미 시민들에게 '학대 행위를 해 달라'라고 말하는 셈이다.
비유일 뿐인데 지나친 해석을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성폭력이나 인종차별 등을 섣불리 긍정적인 비유로 썼다가는 이 문제들을 가볍게 대하는 것이고 부적절하다며 비판받게 될 것이다. 체벌도 마찬가지다. 자주, 쉽게, 긍정적 행위를 가리키는 것처럼 쓰인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회초리'가 약자에 대한 괴롭힘과 학대 행위라는 점을 의도하고 쓰이는 말이 아니기에 더 문제다.
아동학대가 교육행위라거나 정당한 처벌인 듯이 이야기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낮은 인권의식을 보여 준다. 체벌이 약자에 대한 명백한 인권 침해로, 부끄러운 과거로, 끔찍한 폭력으로 여겨지는 사회였다면 그런 비유가 쓰일 수가 없다. 시민들에게 반복해서 '회초리'를 권하는 정치인들은 그런 가치관이 문제라는 성찰도 없이, 체벌 미화의 프레임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회초리와 몽둥이는 다르지 않다
지방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지자체장은 아동학대 예방과 대처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이 반복적으로 "회초리를 들어 달라"고 말하는 것은, 체벌을 여전히 정당한 교육 방식처럼 여기는 사회적 인식을 강화할 위험이 있다. 회초리를 들어달라, 잘못하면 맞아야 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체벌을 가한 아동학대 행위자를 어떻게 생각할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아동학대를 줄이고 예방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고치면서도, 한편으로는 학대를 긍정적 비유로 소비하는 사회에서는 체벌은 학대가 아니라고 가볍게 넘어갈 위험이 오히려 크지 않을까.
실제로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는 5월 13일 인터뷰에서 "회초리는 기본적으로 선생님이나 부모가 자식들, 학생들한테 애정을 가지고 하는 게 회초리입니다. 민주당이 회초리라고 칭하지만 그것은 '몽둥이를 들겠다' 이런 형국입니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틀렸다. 애초에 회초리와 몽둥이는 다르지 않으며, 교육이나 훈육이라는 이유로 매를 드는 것은 애정으로 포장될 수 없는 폭력이고 학대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이런 언어 사용이 더욱 문제적인 이유는, 그것이 사회의 인권감수성을 다시 후퇴시키기 때문이다. '회초리'를 마치 긍정적인 것처럼 반복해서 사용하면 할수록, 그 폭력이 일상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인식된다. 학대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가볍게 만들어버리는 문제도 있다. 성차별적 표현이나 장애 비하 표현이 관용적 표현이라는 이유만으로 용인될 수 없듯이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폭력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이런 문제제기가 새로운 것도 아니다. 2017년 세이브더칠드런은 캠페인을 통해 정치권의 "회초리" 표현을 비판한 바 있다. 당시에도 대선 후보들과 정당 인사들의 "사랑의 회초리", "회초리를 들어 달라"는 발언들이 지적됐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이 함께 사는 세상에서 정치인의 한마디가 미치는 영향을 돌아봐야 한다"며, 체벌을 비유로 사용하는 것은 공직자로서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청소년인권운동 역시 오래전부터 체벌을 미화하거나 교육에서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말들을 비판해 왔고,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체벌은 국가폭력이다" 캠페인을 통해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폭력을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용인해온 우리 사회의 성찰과 개선을 요구했다. 그런데도 거의 변하지 않은 오늘날의 정치를 어떻게 봐야 할까. 체벌을 잘못된 폭력이 아니라 '필요한 교육 행위' 정도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회초리라는 표현을 쓰는 것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학생인권이 끊임없이 공격받고, 청소년인권 정책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 아닐까.
체벌이 어린 사람에 대한 폭력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면, 폭력을 긍정적 비유로 사용하는 일 역시 멈춰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정말로 아동학대를 근절하고 어린이·청소년의 인권을 존중하고자 한다면, 회초리든 몽둥이든 채찍질이든, 학대를 정당화하는 표현 역시 그만 써야 한다. 체벌을 심각한 잘못이라고 받아들이며 용인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폭력을 옹호하는 표현을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문화부터 바꿔 나가자. 이제는 정말 회초리를 들지 않는 정치를 보고 싶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