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클린룸의 투명인간, 청소노동자 눈썹에 쌓이던 하얀 가루

[클린룸을 오가는 사람들] 청소노동자 손윤화 이야기 ② 방진복을 입고 청소하는 사람

청소보다 더 적응하기 어려운 클린룸 환경

반도체 공장에서의 청소 일은 일반적인 청소 일과 다르다. 우선 클린룸 내부의 환경 자체가 일을 하기에 편안한 신체 상태를 만들어 주지 못한다.

안에 들어가면 그 압(기압) 때문에 사람이 자꾸 깔려서(눌려서) 천천히 걸어갈 수밖에 없어요. 바깥에 이래 걷는 거랑은 다르다는 거지.

밥 얼마나 잘 나오는 줄 알아요? 한 달은 너무 잘 먹어. 근데 나중에 먹다 보면 라인 들어가면은 속이 답답한 것도 있고 잘못하면 설사도 하고 그런 게 있어요. 나 같은 경우는 설사를 많이 했어.

클린룸은 대기압을 바깥보다 높게 유지해서 바깥에서 먼지나 분진이 유입되지 못하게 한다. 윤화는 높은 대기압 때문에 몸이 아래로 깔리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진다고 했다. 클린룸에서는 온·습도 역시 세심하게 제어되기에 쾌적할 것이라 오해할 수 있지만, 온·습도 등 모든 지표가 제품 생산에 최적화된 수치로 맞춰져 있어 사람이 쾌적하게 느끼는 조건과는 큰 차이가 있다. 여기에 방진복이 주는 갑갑함도 더해진다.

일은 힘든 건 아니고 이거 자체에 들어가는 게 힘들거든요. 방진복 입고 들어가서 하는 거(가 힘들지.) 일은 그냥 할 만해. 자기 요령껏 하면 돼요. 방진복 입고 걸어다니고 안에 공기가 안 좋고 그런 거지. 평수가 워낙 넓으니까 걸어 다니는 그게 일인 거지 뭐 말하자면.

청소노동자들이 안에서 하는 일은 어느 구역에 배정받았는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화장실 구역에 있는 사람은 화장실을 청소하고, 설비가 드나드는 입구인 반입구에 있는 사람은 반입구를 통해서 바깥의 미화원에게 쓰레기를 반출한다.

먼지조차 허용하지 않는 클린룸에서는 어떤 쓰레기들이 나올까. 부직포, 약품 닦은 것, 약품 통, 비닐봉지, 설비 세척 후 나오는 쓰레기 등이 발생한다. 라인 안에서는 밀대를 밀고 다니며 바닥을 청소한다. 부직포나 면포로 닦을 때도 있고 칼이나 헤라(스크래퍼)도 종종 사용한다.

청소노동자를 감시하는 미스 클린

'미스 클린'한테 걸렸다 사진 찍히고 이러면요. 창살 없는 감옥이에요. 거기 안에 우리는 그렇게 말해. 근데 거기 안에 있는 사람들만 알지 이렇게 말하면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이해를 못해.

약물이 한 번 샜어. 그때 여름 8월달이었어. 휴가 때였어. 그걸 기억을 해. 한 언니가 휴가를 갔는데 그 자리가 비었던 거지. 빨간 약품이 그 언니 자리에 샌 거지. 그건 우리 잘못도 아닌데, 그 설비하는 사람들 잘못인데 미스 클린들이 얼마나 난리를 치는지 몰라.

미스 클린(Miss Clean)은 삼성 정직원으로 라인을 돌아다니며 청정수칙·안전수칙 위반 여부를 관리 및 감독하는 여성을 지칭한다. 정식 직책 이름이라기보다는 별칭에 가깝지만 삼성 안의 직원들은 모두 이들을 미스 클린이라고 부른다.

미스 클린이라고 검색했을 때 1983년에 나온 기사 하나가 유일하게 검색된다. 그 당시 미스 클린의 역할은 공장 안의 청정상태를 최선으로 유지·관리하기 위해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먼지 제거상태를 체크하고 방진복을 입힌 후 들여보내며, 심지어는 여사원들의 화장 상태까지 간섭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미스 클린은 손 씻기 등 위생이나 클린룸 안에서 누군가가 바닥에 그냥 앉지는 않는지 등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

미스 클린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첫째로 청소, 청정과 관련된 일을 여성의 성역할과 결부시켜 여성 전담으로 두었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남성 미스 클린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스(Miss)라는 호칭은 영미권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지칭해 결혼 여부로 여성을 범주화한다는 비판의 대상이 됐지만, 한국에서는 또 다른 맥락으로 여성비하와 차별적인 시선을 내포하여 사용됐다. 산업화 시기 여성 노동자들, 특히 공장의 '여공', 백화점 직원, 은행원, 비서, 안내원 등을 지칭할 때 '미스'가 사용되며 젊음·미혼·서비스성·순응적 여성성 같은 이미지를 함께 묶는 호칭 역할을 했다. 청정관리는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임은 틀림이 없지만, 그 자체로 시대착오적인 미스 클린이라는 호칭이 2026년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 반입구를 바라보는 현재의 손윤화 ⓒ박정원

눈썹, 안경, 얼굴에 남은 표시

방진복을 입으면 얼굴을 제외한 신체가 모두 가려진다. 유일하게 노출된 얼굴에는 곳곳에 일하면서 묻은 클린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나오면 여기가 이래 하얗다니까 눈썹이. 먼지 낀 거 느껴봤어요? 이거 끝에 이렇게 (붙어) 있다니까. 눈썹 짧은데도 눈썹에 다 내려앉아서.

분말 가루는 안경에 표시가 나지. 안경에 우리 이래 보면 삼겹살 구우면 연기 있잖아. 안 튀어도 연기 나면 우리 기름이 막 그러듯이(안경에 묻듯이) 우리는 나와 보면 먼지가 막 이렇게 끼는 거지. 안경 안 끼는 사람 모르지.

그리고 나오면 부직포로 얼굴 닦으면 진짜 그런 거 묻어, 가루. 노란 거, 형광색 그런 거 묻어 이렇게 (얼굴) 닦으면.

일하고 나오면 눈썹은 하얗게 변하고, 안경은 뿌옇게 흐려지고, 얼굴에는 가루가 묻어 있다. 이 물질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냄새도 있었다.

냄새가 나지. 냄새가 다르지. 일회용 부탄가스 냄새 날 때도 있고, 오징어 썩은 냄새도 날 때도 있고, 한약 냄새 날 때도 있고, 오줌 냄새 날 때도 있고. 그러니까 냄새가 막 이상해. 짬뽕 돼 가지고.

청소노동자가 클린룸에서만 일하는 것은 아니다. RP(Return Plenum) 층이라는 팹 아래에 위치한 층은 생산설비가 있는 팹층과 달리 가스관, 배기관 등이 있는 공간이다. 4월 연재에서 다루었던 임한결이 일했던 서브팹(Clean Sub Fab, Facility Sub Fab)과 같은 공간이고 다만 디스플레이 공장에서는 RP층이라 부른다. 청소노동자는 팹층과 RP층 모두를 오간다. RP층은 공기 순환 구조상 오염된 공기가 모이는 곳일 뿐만 아니라 팹층에서 구멍이 뚫린 그레이팅 바닥을 통과해 작은 덩어리, 물질들이 떨어지는 곳이기도 한다.

RP층은 안전모를 써야 되고 팹층은 캡 쓰는 거지. 안전모 쓰면 목 디스크 오고 목 힘들고 뒷골 당기고. RP층은 위에서 떨어지기도 하지. 말하자면 그 덩어리가 뚝 떨어지면 (안전모에서) 틱 소리가 나.

삼성 직원도 사람이고 우리도 사람이지

공장 내 청소노동자의 지위는 어떠할까. 윤화는 동료들이 삼성 직원들 눈치를 보고 필요 이상으로 저자세를 취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아무리 청소부라도, 청소하는 사람이라도 인격이 다 그런 건 아니잖아. 자기들이 그렇게 만드는 거지. "당당하게 내 일을 하고 잠깐 쉬었다." 그렇게 하면 되지 삼성 직원들한테 쩔쩔맬 필요가 뭐 있노. 스스로 치켜세우고 질을 높여야지만이 남들도 인정하고 떠받들어 주고 하는 건데 스스로를 낮추니까 다른 사람들도 쉽게 보는 거지 하찮게 보는 거지. 아니 삼성 직원도 사람이고 우리도 사람이지.

자기 구역은 자기 일을 할 만큼 하고 쉴 땐 쉬고 하면 되는데. 일은 능률은 안 오르면서 그렇게 내 일하는 거 보이려고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는 경우에는 그거는 너무 보여주기 위한 거야.

그러나 한편으로는 설비를 관리하는 남성 협력업체 직원들은 더 열악한 조건에 있다고 보기도 했다.

거기 들어와서 일하는 사람들은 협력업체인데 쓰레기봉투 하나도 그 사람들은 다 가지고 쓸 수가 없고 우리가 가서 보면 "이모님 이모님" 이래. 그럼 "가지고 가서 써라" 이러고 주기도 하고. 그래도 우리는 전실에 가서 쉽게 적어놓고 쉽게 타 올 수 있으니까 그런 건 없지. 그렇다고 해서 (쓰레기가) 내가 뭐 써서 버리는 게 아니라 거기서 나와 다 버리는 거잖아. 우리한테도 그럴 필요가 없는데 거기 일하는 동안만이라도 조금 쉽게 하려고, 우리한테 더 잘 보이려고 이러는데 왜 그래야 되는지 모르겠다. 필요하면 말씀하시라고, 갖다주겠다고 그랬죠.

윤화에게는 청소노동자든 협력업체 직원이든 모두가 각자 맡은 바 일을 하는 동등한 동료였다. 일터에서 누가 누구에게 굽신거리고 잘 보이려고 애쓰는 노력은 불필요하고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윤화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평가절하되는 청소 노동을 하나의 노동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된다. 윤화는 산재 인정 이후 청소 노동에 대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 청소노동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존재입니다. 임원이 온다고 하면 미리 청소해놓고 눈에 띄지 말게 숨으라고 합니다. 있는 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투명인간입니다. 사람이 있으니까 기계도 돌아가고 돈도 버는 것인데... 청소노동에 대해 존중을 해주고, 이번 산재인정을 계기로 안전한 환경이 제공되길 바랍니다. 사람중심으로 일하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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