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헌법 개정, 적대 표현 빠졌다고 적대적 노선 사라진 것 아니다

[김동엽의 '이게 안보여'] '희망회로'를 걷어내야 보이는 것들

조선(북한)의 헌법 개정을 두고 성급한 해석이 나온다. "가장 적대적인 국가"라는 표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선의 대남 노선이 완화된 것 아니냐는 평가다. 그러나 헌법은 단어 하나로만 읽는 문서가 아니다. 어떤 표현이 들어갔는가만큼 어떤 표현이 빠졌는가, 권력이 어디로 이동했는가, 국가가 무엇을 더 이상 약속하지 않게 되었는가를 함께 봐야 한다.

이번 개정의 본질은 유화가 아니다. 조선은 한국을 향해 적대 표현을 크게 외친 것이 아니라, 남북의 민족적 연결고리를 헌법에서 조용히 지웠다. 서문에서 "북반부", "조국통일",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흔적을 지우고, 영토 조항을 새로 두어 대한민국을 남쪽에 접한 외국처럼 객관화했다. 한국은 더 이상 통일의 상대도, 민족 내부의 다른 한쪽도 아닌, 중국·러시아와 함께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접경국으로 서술됐다.

"적대"라는 단어가 덜 보인다는 사실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적대를 굳이 헌법에 크게 새길 필요조차 없을 만큼 분리가 헌법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철회한 것이 아니라, 더 오래 지속 가능한 형태로 정리하고 있다. 적대의 목소리는 낮췄지만, 분리의 구조는 더 깊게 박았다. 소리를 낮춘 변화가 때로는 더 근본적이다.

이번 개정은 남북관계를 다시 민족공동체의 틀로 되돌린 사건이 아니다. 조선은 자신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완결된 주권국가로 다시 세우고 있다. 과거의 조선이 한반도 전체를 향해 혁명과 통일의 언어를 사용했다면, 지금의 조선은 주권과 영토를 앞세워 자신을 규정하고 있다. 통일 지향 국가에서 분리된 주권국가로 이동하고 있다.

권력구조 변화는 더 냉정하게 봐야 한다. 이번 개정은 김정은 국가를 헌법적으로 재구성한 문서에 가깝다. 정상국가를 흉내 낸 것이 아니라, 김정은의 국가를 정상국가의 문법으로 다시 고쳐 썼다. 국가수반, 최고사령관, 핵무력 지휘권, 핵사용 관련 권한이 하나의 직위에 집중된다. 단순한 권한 정비가 아니라 법치의 외형을 띤 1인 권력 구조에 가깝다.

서문의 변화도 가볍지 않다. 김일성·김정일의 고유명사를 전면에 세우던 방식은 뒤로 물러났고, 그 자리를 일반 명사로서의 "수령"이 채웠다. 정통성은 더 이상 선대로부터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수령으로부터 출발하는 구조로 재설계되었다.

견제 장치도 약화됐다. 최고인민회의의 국무위원장 소환권, 국무위원장의 사업 책임 규정, 상임위원장의 일부 대외적 권한이 줄어든 변화는 단순한 행정 조정으로 보기 어렵다. 권한은 집중되고 책임은 흐려지는 구조가 헌법 안에 들어갔다. 특히 신설된 제90조는 국무위원장에게 최고인민회의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거부권, 휴회 중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내각총리 등 중요 간부의 임면권까지 부여했다. 견제의 약화를 넘어, 입법기관에 대한 역방향 통제 권한이 헌법 안에 들어왔다. 국가기구 편제에서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보다 앞에 놓인 점도 상징적이다. 인민주권의 외형보다 1인 권력의 외형이 더 앞세워졌다.

"사회주의헌법"에서 "헌법"으로 명칭이 바뀐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는 사회주의의 단순한 후퇴라기보다, 사회주의가 굳이 앞세울 필요 없는 잔여 범주로 밀려난 변화에 가깝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정상국가의 외형으로 포장된 김정은 1인 체제다. 조선은 사회주의 이상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김정은 국가를 헌법적으로 재구성했다.

사회주의 복지국가의 약속이 줄어든 점도 가볍지 않다. "세금이 없는 나라", "실업을 모르는 사회", "착취와 압박에서 해방",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조건", 무상치료와 예방의학의 강한 약속이 약화되거나 삭제됐다. 이는 시장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인민에 대한 국가의 헌법적 의무가 줄어든 변화다. 권력은 더 집중되지만, 국가가 인민에게 약속하는 책임은 줄어들고 있다.

적대 표현이 빠진 자리를 빈칸으로 남겨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는 영토조항, 핵보유국 조항, 군사중시 기풍, 국무위원장의 핵무력 지휘권이 채우고 있다. 새로 들어간 국방과학, 국방공업, 전민항전 준비 관련 조항은 유화 해석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군사주의가 헌법 본문 안에서 더 분명한 위치를 갖게 된 상황에서 이를 평화 공존의 인프라로 읽는 것은 텍스트의 무게중심을 거꾸로 잡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번 개정을 단순 강경화로만 읽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조선은 NLL을 직접 명문화하지 않았고, 대한민국을 헌법 조문 속에서 노골적 적국으로 고정하지도 않았다. 분리는 완성되었으되, 그 분리의 경계선은 의도적으로 비워두었다. 한국이 외국이 된 이상 해상경계 문제는 헌법이 아니라 하위 법령이나 군사 지침으로 처리해도 충분하다. 침묵은 분쟁 회피의 신호일 수도 있지만, 추후 행동의 제약을 남기지 않으려는 선택일 수도 있다.

결국 이번 조선 헌법 개정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적대 표현의 부재는 화해가 아니라 분리의 완성이고, 정상국가 문법은 정상화가 아니라 1인 체제의 헌법적 재구성"이다.

한국 사회가 경계해야 할 것은 자기희망적 해석이다. 조선이 표현을 덜 거칠게 썼다고 남북관계 복원의 신호로 읽는 순간, 우리는 다시 조선을 우리가 보고 싶은 방식으로 보게 된다. 희망적 오독은 학문적 실수에 그치지 않는다. 정책 담론으로 흘러들면 존재하지 않는 화해 신호에 응답하느라 실제 진행 중인 구조적 분리에 대응하고 해법을 만들어 낼 시간을 놓치게 된다.

헌법 텍스트의 침묵을 화해의 신호로 읽는 인지 습관은 같은 시점의 다른 사안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이번 조선 여자축구단의 방한도 차분하게 맞이해야 할 것이다. 선수단을 정중하고 따뜻하게 맞이하는 일은 당연히 중요하다. 스포츠 교류의 작은 공간도 소중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곧바로 남북관계 복원의 신호처럼 확대 해석하거나 과도한 기대와 호들갑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조선은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할 경우 제한적 접촉과 국제행사 참여를 활용할 수 있다. 작은 접촉을 크게 부풀리면 조선에는 부담이 되고, 한국 사회에는 실망과 냉소만 남을 수 있다.

평화의 가능성은 환호로 커지지 않는다. 절제와 관리로 지켜진다. 조선 헌법 개정과 여자축구단 방한은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우리에게 같은 태도를 요구한다. 현실은 냉정하게 읽고, 접촉의 공간은 정성껏 관리해야 한다.

남북관계는 더 이상 과거의 민족공동체 언어만으로 관리되지 않는다. 조선을 따라 두 국가론을 받아들이자는 말이 아니다. 조선의 변화에 눈을 감은 채 낡은 통일 언어만 반복해서도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와 원칙은 지켜야 한다. 동시에 전쟁을 막고, 충돌을 통제하고,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제도적 능력도 갖춰야 한다. 특히 접경지역 주민이 두 국가 체제의 일상적 비용을 떠안지 않도록 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냉정함은 냉소가 아니다. 평화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현실을 정확히 보는 태도다. 조선 헌법 개정은 희망의 신호가 아니다. 통일의 부재, 수령권력의 집중, 핵무력의 제도화, 사회주의 약속의 축소를 담은 경고의 문서다. 그 텍스트를 제대로 읽어야 우리의 대응도 구호가 아니라 전략이 될 수 있다.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2월 26일 "김정은 동지께서 20~21일 역사적인 제8기 당 중앙위원회 사업 총화 보고를 했다"라고 보도했다. ⓒ로동신문=뉴스1

김동엽

김동엽 교수는 해군과 국방부에서 근무하다 지난 2011년 중령으로 예편했습니다. 국방부에서 북핵과 군사회담을 담당했고, 예편 이후에는 북한대학원대학교 민족공동체지도자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지금은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저술 및 연구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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