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성스러운 곳"…임진왜란 당시 왜적조차 스스로 물러난 곳은?

전북 장수군 장수향교 '충복' 정경손의 충절

전북자치도 장수군에 있는 '장수향교'는 조선 태종 7년(1407년)에 덕행이 훌륭한 사람들을 모셔 제사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나라에서 세운 지방교육기관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에도 잘 보존되어 조선 전기 향교의 형태를 잘 알 수 있다.

수백여 년의 세월과 굴곡의 역사 속에서 향교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1597년 정유재란 당시 향교 내의 문묘(文廟)를 지킨 충복 정경손의 애국충절 기개가 숨어있다.

▲장수군은 장수향교 정충복 비각 앞에서 각급 기관 및 단체장, 장수향교 유림회원, 지역주민 40여명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충복 정경손 제례봉행을 최근 거행했다고 6일 밝혔다. ⓒ장수군

충복 정경손은 임진왜란 당시 향교 내 문묘지킴이였다. 그는 장수에 침입한 왜적이 문묘까지 이르자 문을 굳게 닫고 "만약 문에 들려거든 나의 목을 베고 들라"고 호통을 쳤다고 전해진다.

그의 태도가 어찌나 당당하던지 왜적들은 본성역물범(本聖域勿犯)이라는 쪽지를 남기고 스스로 물러나 장수향교가 불에 소실되지 않고 현재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본성역물범'의 뜻은 '이곳은 성스러운 곳이니 침범하지 말라'를 것이다.

대부분 불에 타버린 다른 지역의 향교들에 비해 장수향교가 불에 소실되지 않고 현재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연유이다.

이후 헌종 12년인 1846년 정주석 장수현감이 정경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호성충복 정경손명비(護聖忠僕 丁敬孫 名碑)'를 세웠다.

장수군은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제례봉행을 이어오고 있다.

장수군은 장수향교 정충복 비각 앞에서 각급 기관 및 단체장, 장수향교 유림회원, 지역주민 40여명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충복 정경손 제례봉행을 최근 거행했다고 6일 밝혔다.

이날 행사는 장수향교(전교 이경술) 주관으로 마련됐으며 충복 정경손의 애국충절 정신을 기리고 지역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진행됐다.

제례에는 류지봉 장수군청 행정복지국장이 초헌관을, 한병태 장수문화원장이 아헌관을, 이성송 유림이 종헌관을 맡아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제례의식을 봉행했다.

장수군은 "신분을 떠나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향교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정경손의 정신을 본받고 이어갈 필요가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장수향교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홍

전북취재본부 박기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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