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고등교육은 단순한 정책 조정의 시기를 지나 체제 전체의 존재 방식을 결정해야 하는 역사적 분기점에 서 있다. 학령인구 급감은 먼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구조적 조건이다. 15년 후면 대학진학 가능 인구는 현재의 48만 명 수준에서 25만 명 대로 줄어든다. 현재의 대학 규모가 거의 반토막 난다는 뜻이다.
향후 10년 안에 대학 입학 가능 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지방대는 물론 지역경제, 청년 정주, 국가균형발전 전반에 큰 충격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이 거대한 인구구조 변화 앞에서 이재명 정부의 집권기는 사실상 한국 대학체제를 재설계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에 해당한다.
지금이야말로 수도권 과밀, 지방대 위기, 대학 서열체제, 지역소멸이라는 복합위기를 국가 차원의 공공적 대학체제 개편으로 풀어내야 할 시기다. 시간이 지나 지방대학들의 연쇄 붕괴가 현실화하고 지역 청년 기반이 무너진 뒤에는, 그 어떤 재정 투입도 무너진 지역생태계를 되살리기 어려울 수 있다.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만이 아니라 지역의 인구 유지, 산업 기반, 문화 생산, 시민사회 활성화의 핵심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부가 최근 발표하고 추진을 예고한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방안"은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이 방안은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대상인 거점국립대 9개 가운데 경쟁을 통해 3개 대학에 집중지원하겠다는 것으로,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공약으로 내세우고 집권 후 국정과제로 삼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기획의 원뜻을 거의 폐기한 것과 다름이 없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이 그 자체로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교육계가 이를 수용한 것은 그 같은 기획을 통해 각 지역에 대한 균등 발전을 지원하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 표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교육부 방안의 심각한 문제는 심지어 각 권역을 대표하는 거점국립대조차 상호 경쟁을 통한 각자도생을 요구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가 각 지역을 순회하며 내세웠던 지역균형 발전의 약속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방안이다.
선택과 집중, 오래된 관료주의 폐습의 되풀이
교육부는 제한된 재원을 전략적으로 집중해 일부 거점대학을 육성함으로써 지역혁신을 이루겠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이는 구조적 위기 앞에서 지나치게 협소하고 단기성과에 치중한 접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몇몇 대학의 경쟁력 강화가 아니라, 학령인구 감소 시대에 대처하는 국가 전체 고등교육 생태계의 질서 있는 재편이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국가적 차원의 구조개혁 대신 산업논리와 재정 효율성을 앞세운 '선택과 집중'이라는 익숙하고 고질화한 관료적 해법을 고수하고 있다
교육부가 지금까지 수십 년에 걸쳐 대학정책의 기본으로 삼아온 '선택과 집중'이란 무엇인가? 과거 BK21과 LINK 사업, 그리고 지금의 대학혁신지원사업과 글로컬대학30 등 정부의 대표적인 대학재정지원은 모두 이 원칙에 입각해 있다. 경쟁과 평가를 통해 일부 대학과 전공을 선별적으로 집중지원해온 이 정책기조가 서울대를 비롯한 일부 상위권대의 경쟁력을 높이고, 산학협력을 활성화하고, 대학 구조조정을 촉진해 온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대학 간 및 지역 간 불평등구조가 더 굳어지게 해 온 것이 바로 이 전략이기도 하다. 현재 국가적 위기로 닥쳐온 수도권과 지방 격차 심화, 대학 서열체제 강화, 지방대 대거 폐교전망, 대학의 공공성 약화 등을 초래한 주된 요인이기도 한 것이다.
더구나 이 '선택과 집중'은 대학의 자율성을 축소하고 고등교육을 관료체제에 종속시키는 고질적 부작용을 낳았다. 재정지원의 결정권이 교육관료들에게 맡겨짐으로써 대학들은 자신들의 특성을 추구하는 대신 '평가지표'를 챙기며 교육부 관료들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하고, 관료체제는 이같은 선별의 권한을 유지함으로써 대학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을 확립해 왔다. 이같은 관료체제의 관행이 인구절벽이 초래한 국가적 위기 국면을 타개할 길을 모색함에 있어 커다란 장애로 재부각되고 있다. 이번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왜곡도 오랜 관료주의 폐습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단기적으로 일부 성공 사례를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지방대 몰락과 지역소멸을 촉진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선정된 소수 거점국립대는 더 많은 재정과 우수학생 및 연구비를 흡수하겠지만 다수 비선정 거점국립대들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특히 대다수 지방 사립대와 중소규모 대학들은 더욱 빠르게 학생 감소와 재정 악화, 구조조정 압박과 폐교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넘어 권역 벌 지역별로도 상호 간의 다층적 서열화가 확대되는 꼴이다. 결국 지역 전체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일부 핵심도시만 살아남고 주변은 공동화되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인구절벽의 시기 교육부 장관의 책무
최교진 교육부 장관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것이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거듭된 국가적 과제 천명에 부합하는가? 지금처럼 몇몇 대학만을 성장거점으로 육성하는 방식으로 인구절벽 이후의 지역사회 붕괴를 막을 수 있는가? 대학 구조개혁의 마지막 기회를 활용해 국가균형발전형의 공공적 고등교육 체제를 설계해야 할 시기에, 왜 교육부는 또다시 승자독식형 상호경쟁 구도를 반복하려 하는가?
지금의 위기국면에서 상호경쟁을 통한 지원방식은 교육부로서는 손쉽고 익숙한 것이지만 본질적으로 구조적 위기를 회피하는 방편에 가깝다. 다시 말해 일부 거점에 자원을 집중해 가시적 성과를 내게 함으로써 위기를 표면적으로 관리하는 데 그칠 공산이 크다. 그러나 학령인구 급감이 초래할 충격은 그런 식의 관리로 해소될 성격의 것이 아니다. 지방대학의 붕괴는 청년 유출을 부르고, 청년 유출은 지역경제 쇠퇴를 심화시키며, 이는 다시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을 가속화한다. 이 악순환이 본격화되면 지방은 더 이상 회복 가능한 생활터전이 아니라 구조적 쇠퇴의 공간으로 고착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첫째, 수도권 대학 정원 감축을 포함한 전국 단위의 정원조정과 대학 재편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둘째, 거점국립대 몇 곳의 육성을 넘어 권역별로 지방 사립대와 중소대학을 포함한 공공적인 고등교육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대학정책을 산업 수요 중심이 아니라 지역 정주, 복지, 문화와도 통합된 지역 공동체 보존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넷째, 교육부는 단기 성과주의를 버리고 2030년 이후를 내다보는 장기 구조개혁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향후 4년 가까이 더 이어질 이재명 정부 집권기는 대학체제 재편의 골든타임이다. 이 시기를 놓친다면 지방대 연쇄 붕괴와 지역소멸은 훨씬 더 높은 사회적 비용과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되돌리기 어려운 현실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이 시기의 교육부 장관의 책무는 제한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행정관리자가 되는 데 있지 않다. 초저출산율이 초래한 인구절벽을 마주한 대전환기에 국가 고등교육 체제의 미래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구조개혁가가 되어야 한다.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는 결코 그 책임에 부응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는 마지막 개혁 기회를 협소한 성과주의에 소진시키며, 미래 세대에게 지방 붕괴와 사회 양극화라는 더 큰 비용을 떠넘길 위험만 증폭시킨다. 지금이라도 교육부 장관은 현재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기 위한 공론화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훗날 이재명 정부는 인구절벽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전환을 위한 가장 결정적 시기에 극히 소극적이고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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