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빈' 방문 맞아? '시한폭탄' 트럼프에 '엡스타인'도 신경써야 하는 英 찰스 국왕

영국 역사 전문가 "매우 까다롭고 전례 없는 난관"…NYT "英, 국왕은 긴장 완화 바라"

찰스3세 영국 국왕이 나흘 일정으로 미국에 국빈 방문한 가운데, 악화된 양국 관계 속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대해야 하는 점, 영국 왕실을 따라다니는 성범죄자 엡스타인 사안 등 적잖은 난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27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번 찰스3세의 방미에 대해 "생애 가장 중요한 연설을 앞두고 있으며 예민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라며 "게다가 서식스(해리 왕자) 부부와 제프리 엡스타인 스캔들의 그림자까지 드리워져 있다"라고 짚었다.

찰스3세는 오는 28일 의회 연설을 앞두고 있다. 영국의 군주가 미 의회에서 연설하는 것은 지난 1991년 엘리자베스 2세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영국 매체인 <인디펜던트>는 찰스3세가 의회 연설에서 양국이 모든 문제에 항상 일치된 의견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우리 두 나라는 언제나 함께할 방법을 찾아왔다"라고 말할 예정이라면서 이는 "이란 전쟁을 둘러싼 최근 양국 간 긴장 관계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디언>은 찰스3세가 "양국이 직면한 도전 과제들을 언급할 것"이라면서 이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불쾌감을 느끼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촉발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신문은 지난 1991년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총구에서 나오는 권력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라며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중요성, 유럽의 개방성 및 미국과 협력 방안 등에 이야기했는데 "지금 트럼프에게 그 연설은 직접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런던대학교 역사연구소 필립 머피 교수의 분석을 소개하기도 했다.

현대 정치 역사 전문가인 앤서니 셀던 웰링턴 칼리지 교육 총괄 디렉터는 신문에 찰스3세의 이번 방문이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지지를 호소했던 조지 6세 이후 "분명히 매우 까다롭고 전례 없는 정도의 난관"에 직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신문은 "찰스3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 총리를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영국군을 조롱했다는 사실을 알고 백악관에 들어서야 한다"라며 "게다가 찰스3세는 트럼프 대통령의 도발에 시달리는 캐나다의 국왕이기도 하다"라고 짚었다. 미국과 영국, 미국과 캐나다 간 갈등이 이번 방문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다만 신문은 과거에도 양국 관계가 불편한 적이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찰스3세는 "불쾌하게 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틀에 박힌 방식"대로 행동할 것이고, 이는 찰스3세에게 "더 많은 재량권"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도 했다.

성범죄자인 제프리 엡스타인 사안도 찰스3세에게 껄끄러운 문제다. 찰스3세의 동생 앤드루 마운트배튼-윈저 전 왕자는 지난 2월 19일 공직 중 위법행위 혐의로 영국 경찰에 체포됐는데, 공개된 엡스타인 파일 속에서 앤드류 왕자가 2001~2011년 영국 무역 대표로 활동했던 시기 공문서를 유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또 엡스타인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인 버지니아 주프레는 본인이 17세였던 2001년 엡스타인에 의해 강요당해 앤드류 왕자와 런던과 뉴욕, 엡스타인의 섬 등에서 세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고 폭로하면서 민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재판이 본격화되기 전 앤드류 왕자는 주프레와 합의한 이후 사실상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왔다.

<가디언>은 미국 하원의원 로 칸나(민주당)와 버지니아 주프레의 남동생인 스카이 로버츠가 찰스3세 부부, 특히 카밀라 왕비에게 엡스타인 피해자들을 만나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버킹엄궁 관계자는 신문에 이러한 만남이 경찰 수사 및 잠재적인 법적 조치를 저해할 수 있다며 "정의를 추구하는 피해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성사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필립 머피 교수는 엡스타인과 관련해 "언론의 논평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대중의 항의 시위도 있을 수 있다. 국왕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을 걸어 다니면 소리치는 것을 들을 수도 있다"며 찰스3세가 어떤 방식으로든 이 문제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왕실에서 스스로 떠난 해리 왕자와 부인 메건 마클을 만날 것인지도 관심이다. 이들은 미국 서부에 거주하고 있는데, 신문은 양측의 만남은 계획돼있지 않다고 전했다. 신문은 "영국 왕실이 바랄 수 있는 최선은 해리 왕자가 자신의 왕실 성장 배경에 대한 주제로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보도했다.

찰스3세의 방미가 악화된 양국관계를 다소 완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27일 "찰스3세는 트럼프 대통령과 스타머 총리 간의 긴장이 고조되기 몇 달 전부터 미국 방문 계획을 세워 왔다. 영국 정부 관계자와 버킹엄 궁전 측은 국왕이 일상적인 정치나 외교 정책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면서도 "하지만 비공개적으로 관계자들은 국왕 연설의 핵심 메시지가 대통령과 총리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영국 내 분위기를 전했다.

▲27일(현지시간) 영국 찰스3세 국왕(왼쪽에서 두 번째)과 카밀라 왕비(왼쪽)가 워싱턴 D.C. 백악관에 도착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및 멜라니아 트럼프 영부인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찰스3세는 나흘간의 미국 국빈 방문 일정으로 워싱턴 D.C.와 뉴욕 등을 방문해 미국 관리들을 만나고 의회에서 연설할 예정이다. ⓒUPI=연합뉴스

백악관에 도착한 찰스3세 부부는 트럼프 대통령과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를 만난 이후 백악관에 새로 설치된 양봉장을 둘러봤다. 신문은 2009년 미셸 오바마 당시 영부인이 최초로 설치한 양봉장을 찾은 일정에 대해 "환경 문제와 자연 보전에 대한 국왕의 오랜 관심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버킹엄 궁전 주변 정원에도 벌통이 있어 여기서 생산되는 꿀이 포트넘 앤 메이슨 백화점에서 판매돼 자선 기금 마련에 사용된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첫날인 27일 일정은 영국 대사관에서 주최한 국왕 부부를 위한 가든 파티로 마무리됐다. 이 자리에는 트럼프 정부의 실세로 불리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그의 부인 케이티 밀러가 자리했다. 또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등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포함됐다.

28일 연설을 앞두고 찰스3세는 트럼프 대통령과 비공개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찰스3세 부부를 위한 국빈 만찬을 주최한다.

29일 찰스3세는 뉴욕으로 이동해 9·11 테러 추모비에 헌화하고 할렘의 청소년 단체를 방문할 예정이다. 30일에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헌화한 뒤 버지니아주 지역을 방문할 계획이다.

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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