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권리를 좀먹는 오세훈 서울시의 '권리중심 장애인 일자리' 폐지

[시민건강논평] 장애인의 노동 문제는 우리 모두의 노동 문제다

"고용을 한 적이 있어야 해고를 하지."

이건 또 무슨 밈인가 싶지만, 서울시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서울시는 2020년부터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권리중심일자리)' 사업을 시행했으나 2023년 이후 이를 폐지하면서, 400명의 중증장애인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이에 대해 원직 복직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에게 오세훈 시장이 해고를 한 적이 없다며 한 발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노동 시장에서 중증장애인은 늘 배제되어 왔다. 이런 중증장애인의 노동권과 사회참여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공공이 개입해 일자리를 구성한 것이 바로 권리중심일자리다. 중증장애를 가진 노동자들은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식 개선강사 활동 등을 통해 한국 정부도 비준한 UN장애인권리협약을 알리며, 협약이 실질적으로 이행되도록 뒷받침하는 노동을 수행했다. 이 노동은 당장 시장에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며 이윤을 창출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인식하지도 못했던 억압을 가시화하며,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낸다. 시장에서 가격을 매길 수는 없지만, 결코 무가치한 노동이 아니다.

이 일자리에 '권리중심'이라는 말이 붙은 까닭은 고용의 기준이 자본주의적 생산성이나 능력이 아니라 권리에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들의 노동 자체가 권리를 생산해 낸다는 점에서도 '권리중심'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이런 노동 경험을 통해 중증장애인들은 자신도 뭔가 할 수 있는 존재라는 확신을 얻었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다(☞관련논문 바로가기).

그러던 중 2023년 국민의힘은 이 사업에 지급된 서울시 보조금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집회에 전용됐다는 의혹을 여러 차례 제기했다. 그러자 서울시는 2024년 권리중심일자리 사업을 폐지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위 참여 장애인들에게 일당까지 지급하는 그런 비정상은 중단됐다"고 발언했다.

이 의혹이 거짓이란 것은 경찰 수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아마도 의혹 제기의 목적은 처음부터 진실 규명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하철 시위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고조되던 시기, 장애인 운동 전체를 '불법'과 '낭비'로 프레이밍 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어찌됐든 그들의 의혹 제기는 사업 폐지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됐고, 그 결과 400여 명의 중증장애인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어 3년째 복직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요즘 비장애인도 취업이 무척 어려운데 무슨 중증장애인까지 신경 쓰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독한 비장애중심주의 관점에서조차 중증장애인의 권리중심일자리는 중요하다.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과 억압의 역사, 그리고 그에 맞선 투쟁의 특수성도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노동에서 사람을 배제하는 공통적 힘과 원리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성, 효율성, 능력주의 패러다임은 장애인에게만 예외적으로 작동하고, 비장애인에게는 비껴가는 것이 아니다. 다만 비장애인은 지금까지 이 패러다임 안에서 '기준'에 더 가까이 있었기에 배제를 덜 경험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기준은 현재 빠르게 이동하고 있고, 그로 인해 밀려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이 배제 논리는 AI 등 기술의 발전과 자본의 비대칭적 권력 강화 속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생산성과 효율성의 압박은 더 커지고, 갈수록 많은 영역에서 인간의 노동은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 기계의 속도와 효율을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의 노동은 생산성 관점에서 쓸모없는 노동이 돼버리고 만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겠지만, 그 노동이 우리에게 적절한 소득, 사회적 인정, 스스로 긍정할 수 있는 감각을 보장해 줄지는 불확실하다. AI를 인간 노동을 보완하는 수단이 아니라, 비용 감소를 최우선으로 노동을 대체하고 감시하는 기술로 만들어가는 사회에서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임금도, 휴식 시간도 필요 없고, 권리도 주장하지 않는 기계를 원하는 자본과 세계적 경쟁 압력 속에서, 존엄한 인간의 노동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권리중심일자리는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묻게 만든다. 이는 중증장애인에게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하는 제도지만, 단지 중증장애인에게 한정된 이야기도 아니고, 일자리 제공의 의미만 가진 것도 아니다. 능력과 생산성을 극대화해 소득을 획득하는 수단에서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인간 존엄을 실현하는 행위로서 노동. 생산과 효율의 기준에서 벗어나 표준적 신체와 인지를 전제하지 않는 다양한 방식의 노동. 이윤 창출이 아닌 권리가 고용의 근거가 되는 노동. 이러한 노동의 존재 자체가 자본주의적 노동 규범에 균열을 내고, 다른 노동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노동에서 배제되고 억압받은 장애인의 역사는 우리 사회 노동의 역사이고, 현재이면서 미래다. 이들이 억압에 맞서 싸우며 쌓아온 것은, 노동 위기를 먼저 살아온 존재들이 몸으로 겪어낸 지식이다. 그 지식 위에서 우리 사회의 노동을 다시 상상할 수 있다면, 존재로서 저항하는 비표준적 몸들의 권리 생산 노동에 우리 사회가 또 한 번 빚을 진 셈이다.

전장연의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중증장애인이 노동하려면 사회 전체가 이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이동한 사회는 비단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보다 존엄하게 노동할 수 있는 사회에 가까울 것이다. 그 출발은 어떤 거창한 실천이 아닐 수 있다. 장애인의 노동 문제가 나의 노동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 연결을 외면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권리를 만들어온 그들의 노동과 존재에 비장애인이 또다시 무임승차하지 않으려면, 그 지점에서부터 출발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노동 문제 사이에 그어진 경계를 허물어야 할 것이다.

국가와 자본은 끊임없이 혁신을 말한다. 그러나 그 혁신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충분히 묻지 않는다. 기존의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더 빠르게 달려 나가는 것에 몰두한 나머지, 정작 사람들의 삶을 낫게 만드는 것은 뒤로 밀려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돼 온 익숙한 방향이 아니라, 중증장애인도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다.

"맨날 자본 중심으로 '혁신, 혁신' 거리는데, 자본이 이렇게 혁신하는 것보다야 우리가 이야기하는 혁신이 사실은 이 세상에 훨씬 더 나은 거 아닌가?" (박경석, 정창조 <출근길 지하철>위즈덤하우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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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민건강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비영리독립연구기관입니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연구소가 발표하는 '시민건강논평'과 '서리풀 연구通'을 동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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