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빛이 감도는 옷을 걸치고 고통받는 자를 치유하는 형상. 그 성화(聖畵) 속 예수의 얼굴을 대신한 것은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였다. 믿기 힘든 광경이지만, 이는 그가 직접 자신의 플랫폼인 '트루스소셜'에 게시한 엄연한 현실이다. 이 기괴한 이미지는 단순한 정치적 선전을 넘어, 우리 시대가 직면한 일그러진 성상(聖像) 숭배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화면 위로 겹쳐지는 신천지 이만희와 JMS 정명석의 얼굴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는 '자아라는 감옥'에 갇힌 권력자들이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파멸의 경로다. 정치와 종교, 분야는 다르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신격화된 자아'다. 스스로를 절대적 구원자로 설정하는 순간, 타인은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거대 서사를 완성하기 위한 소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최초의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 사이의 충돌은 이 나르시시즘의 극치를 보여준다. "하느님은 어떤 전쟁도 축복하지 않으신다"며 전쟁의 광기를 멈추라고 촉구한 교황의 보편적 인류애를 향해, 트럼프는 "외교 정책이 형편없고 나약하다"는 조롱으로 응수했다. 심지어 교황의 선출조차 "나를 상대하기 위해 급조된 인사"라며 격하시키고, "내가 없었다면 교황은 바티칸에 있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오만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국가의 문제를 오직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을 넘어, 이제 그는 신의 대리인인 교황을 훈계하며 영혼의 생사여탈권까지 쥐려는 탐욕을 드러낸다. 이 지독한 나르시시즘은 비판을 박해로, 독선을 정의로 둔갑시키며 추종자들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급진 좌파에 영합하지 말라"는 그의 일갈은 종교적 가치마저 자신의 정치적 득실 아래 종속시키려는 폭력적 사유의 결과물이다.
스스로를 신의 반열에 올린 자들이 탐닉하는 것은 결국 타인의 정신과 육체를 완벽히 굴복시키는 일이다. 정명석과 같은 사이비 교주들이 보여준 성적 가학성과 지배욕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인간의 법과 도덕 위에 존재한다"는 전능감을 확인받으려는 가장 저급하고도 폭력적인 증명 방식이다. 트럼프에게 엡스타인 성추문과 같은 권력 주변의 추잡한 얼룩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오늘날 우리는 '사실'보다 '믿고 싶은 환상'이 승리하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세련된 그래픽과 선동적인 언어로 포장된 이 가짜 메시아들은 대중의 불안을 먹고 자란다. 양극화와 불평등이라는 시대적 병증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대중은 눈앞의 자극적인 '구원자 서사'에 열광하며 이 괴물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할 것이다.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은 반드시 괴물이 된다." 성스러운 광휘를 흉내 내는 그들의 손에는 치유의 힘이 아니라, 타인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피비린내 나는 권위만이 들려 있을 뿐이다. 중간 선거를 앞두고 가톨릭 표심을 운운하는 정략적 계산보다 더 두려운 것은, 한 인간의 자아 팽창이 어디까지 인류의 보편적 상식을 파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칭 구원자가 아니라, 저 가짜 빛을 걷어낼 서늘하고도 맑은 이성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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