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가자지구에 도착도 안 했는데…구호품 전달, '시도'도 하지 말라는 외교부

이스라엘에 체포됐던 활동가 해초, 올해 다시 가자지구 진입 시도…외교부 "안전과 생명 위험"

지난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구호 물품을 전달하는 구호선단 '천개의 마들린호'에 탑승했다가 이스라엘에 체포됐던 활동가 해초(본명 김아현) 씨가 올해도 가자지구 구호품 전달을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시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해초가 가자지구에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행정처분을 실시하는 것을 두고 향후 법적 다툼 및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31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해 10월 가자 지구 방문을 시도했던 우리 국민 1명이 가자지구 방문을 재차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중동 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현지 가자지구 등 여행 금지 지역이나 국가에 갈 경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외교부는 지난해 10월 가자지구에 방문하려다가 이스라엘군에 나포된 해초의 석방을 위해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이 주한이스라엘 대사대리를 면담하고 주이스라엘대사관도 영사를 수용소에 급파하는 등의 영사조력을 제공해 이틀 만에 자진추방 형태로 해초의 석방을 이끌어낸 바 있다.

당시 외교부는 해초에게 가자지구 방문을 재시도할 경우 안전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고, 국내법상으로도 제재 조치가 취해질 수 있음을 충분히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해초가 올해 다시 가자지구 구호선단에 가담할 것을 인지한 이후 외교부는 여권 행정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과 실제 방문시 형사처벌 될 수 있음을 재차 안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해초가 현재 제3국에 체류중이며 현재로서는 4월 초에 현지 체류중인 곳에서 출발해 또 다른 제3국에서 전체 선단과 합류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주이스라엘 대사관에서 해초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받지 않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가자지구의 경우 여권법 제17조에 따른 여권 사용 제한 대상 지역으로, 국민이 허가 없이 방문 및 체류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이를 알면서도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없이 해당 지역을 방문·체류하는 경우 현행법상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이와 별도로 여권법에 따라 여권을 반납토록 명령하고, 명령에 응하지 않을 경우 여권을 무효화하는 행정 제재 조치도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외교부는 "대한민국 국민은 여행금지 국가·지역에 방문·체류가 금지되며, 이를 위반하는 경우 여권법 제26조에 따른 형사 처벌(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 및 동법 제12조 등에 따른 여권 행정제재 조치가 부과될 수 있으니 유의 바란다"라는 내용을 여행 경보 단계와 관련된 내용을 공지할 때마다 명시해 왔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는 지난 2023년 8월 1일부로 여행경보 4단계에 해당하는 여행금지 조치가 발령돼 있어, 외교부가 가자지구로 향하는 해초에게 공지에 명시된 행정처분을 실시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런데 아직 해초가 가자지구에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조치를 하는 것이 정당한 법 집행이 될 수 있냐는 논란도 있다. 징역형이나 벌금이 부과되는 벌칙 조항인 여권법 제26조를 보면 그 조건을 "해당 국가나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한 사람"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 여권 반납의 근거 조항인 제11조, 제12조 등에는 여행금지 국가에 들어가는 것이 여권 발급 제한의 이유가 된다고 적시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특정 처분을 할 경우 이를 해초에게 고지하는 절차가 필요한데, 대사관의 연락도 받지 않는 해초가 실질적으로 처분을 인지할 수 있을지도 문제다.

행정기본법에 따르면 당사자는 처분을 받은 날로부터 30일 내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고, 행정심판법과 행정소송법에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긴급한 필요"가 있는 경우 정부의 조치를 '집행정지'하는 신청을 할 수도 있는데, 이러한 구제 조치 모두 당사자가 이를 인지해야 가능하다.

한편 해초는 지난해 10월 8일 이스라엘군에 나포된 이후 이틀만인 10일 자진추방 형식으로 석방됐다. 해초는 구호 선단 출발에 앞서 "제 이름은 김아현이고 대한민국 출신입니다. 이 영상을 보고 계신다면 우리는 바다에서 가로막혔고, 저는 이스라엘 점령군이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가담한 국가의 군대에 의해 납치된 것입니다. 저는 모든 동지들, 친구들, 가족들에게 대한민국 정부에 압력을 가하여 제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해 주시기를 호소합니다"라는 영상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 김아현(활동명 해초) 씨가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구호품을 전달하러 떠나기 전에 영상 메시지를 남겼다. ⓒ개척자들 페이스북 갈무리

해초가 이같은 영상을 미리 찍어둔 이유는 가자지구로 향하는 구호 선박이 번번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1일에도 구호 물품을 실은 글로벌 수무드 함대(GSF)가 이스라엘 해군에 의해 나포됐는데, 당시 이 선박에는 스웨덴의 기후 활동가인 그레타 툰베리도 포함돼 있었다.

해초가 탑승한 구호 선박은 '천 개의 매들린 호' 가자 구호 선단 11척 중 한 척이었으며, 30개국 출신 150명 활동가가 구호 물품 전달을 시도했다. 이 선단에 탑승했던 활동가 중 한국 국적자는 해초가 유일했다.

세계 곳곳의 활동가들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나포가 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선박에 몸을 실은 이유는 가자지구의 기아 상태가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육로를 이용한 구호 물품 반입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23일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전쟁 지역인 가자지구에 갇힌 210만 명의 사람들은 총알과 폭탄 외에도 또 다른 살인자, 기아에 직면해 있다"며 "이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매우 명백하다. 봉쇄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미국 방송 CNN이 보도하기도 했다.

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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