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토늄을 먹고 살 수는 없다." 과거에 미국 등 국제사회가 조선(북한)을 향해 즐겨 사용했던 표현이다. 조선이 핵무기 개발에 몰두할수록, 안 그래도 부족한 자원이 낭비되고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는 강해질 것이기에 경제난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조선 정권을 향해 "주민들은 굶주리는데 핵과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이 유행했었다.
조선도 과거에는 이 문제를 놓고 씨름했었다. 김정일 정권은 비핵화의 대가 가운데 하나로 경제적 보상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이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그 후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3년에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선포했다.
국방력 건설은 핵무기와 미사일 중심으로 하고 재래식 군사력의 부담을 줄여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투입하자는 취지였다. 이전까지 '양자택일'의 성격이 강했던 경제건설과 핵무장을 병진키로 한 것이다. 이러한 접근이 일부 성과를 거뒀지만, 핵개발을 가속화할수록 제재도 강해져 경제건설 노선에 차질이 빚어졌다.
이 와중에 한국과 미국의 새로운 정부가 평양의 문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둔 2017년 12월에 3개월 후에 예정되었던 한미연합훈련 연기 방침을 밝혔다.
공개적으로는 김정은 위원장과 건곤일척의 말폭탄과 무력시위를 주고받았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연말에 유엔 사무차장을 통해 김 위원장과 만나고 싶다는 비밀 메시지를 보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18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시작됐다.
김정은 정권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2018년 4월에 노동당 전원회의을 열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의 종결을 선언하고 경제발전에 몰두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이러한 선언에는 단계적 비핵화 추진이 남북·북미관계 개선과 군사적 대결의 종식, 그리고 경제제재 해결과 맞물리면서 경제발전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었다. 특히 제재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러시아 특수? 러시아의 평가는?
이랬던 조선은 2019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허망하게 끝난 직후부터 돌변하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제재를 정면돌파하겠다고 공언했었고,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선 제재를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병진노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건설과 핵무력 현대화를 골자로 하는 '병진노선 2.0'을 국가전략으로 삼은 셈이다. 이 노선의 경제적 성과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기로 하고, 먼저 국내외에서 유행하는 '러시아 특수' 주장의 문제점부터 짚어보자.
'러시아 특수'는 조선이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무기와 병력을 보내면서 재래식 군사력의 현대화뿐만 아니라 러시아로부터 지원받은 자원과 자본을 통해 일부 경제성장도 이루고 있다는 주장을 두고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러한 진단은 러-우 전쟁이 종결되면 북러관계도 재조정될 것이고 조선의 '러시아 특수'도 수그러질 것이라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조선이 러시아라는 뒷배를 잃게 되면 남북관계 회복에도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통념은 오판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우선 러시아의 평가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 북러관계 전문가인 니카 파스코가 2025년 러시아 언론의 조선 보도 내용을 분석해 38노스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러시아 언론은 조선을 강력한 경제제재와 적대적인 국제 환경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룬 "가장 자주적인 국가"로 묘사했다.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2026년 2월 2일자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은 더욱 주목을 끈다. 그는 "조선은 자원 제약과 포괄적인 봉쇄 하에서도 신속하고도 효율적으로 경제적 잠재력을 조직할 수 있는 역량을 입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러시아는 조선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러한 러시아의 평가를 자신의 전쟁 수행을 도와온 조선에 대한 '립 서비스'라고 보기도 어렵다. 일반적인 인식과 다른 양상은 이전부터 나왔었기 때문이다. 2023년 들어 윤석열 정부는 조선에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식의 정보를 언론에 흘렸고 언론도 이를 받아쓰기에 바빴다. 러시아에 무기를 보내기 시작한 조선이 그 대가로 식량을 받으려 한다는 추측도 있었다. 그런데 조선은 2023년 9월 북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식량 지원 제의를 거절했다. 왜 그랬을까?
그 배경과 관련해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 조선 러시아 대사는 "올해 정말로 그들은 큰 풍작을 거뒀다"고 밝혔다. 이는 조선이 2023년에 연말에 당해 연도에 목표로 삼았던 알곡 생산에서 3% 초과 달성했다고 발표한 것과 일치한다.
또 2024년 여름에 압록강 지역에서 대홍수가 발생하자 러시아는 지원을 제안했지만, 조선은 이 역시 거절했다. 아울러 조선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부상한 러시아 군인 수백명을 조선의 병원과 요양원에서 무료로 치료해줬다. 이를 두고 마체고라 대사는 2025년 2월 10일에 "우리가 (조선) 친구들에게 비용의 일부라도 보상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그들은 진심으로 기분이 상했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조선이 얻은 전략적 이익을 주목해야
물론 2024년 6월 북러 동맹의 재결성과 조선의 대러 무기 지원 및 파병이 이어지면서 러시아의 대북 제재 이탈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양측의 교류와 교역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것이 조선의 경제 사정 개선에 일부 기여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김정은 정권이 젊은이들의 피의 대가로 돈을 벌고 있다'는 식의 추측성 비난은 정작 조선이 얻은 전략적 이익에 대해 둔감하게 만든다. 조선이 러시아로부터 얻는 가장 큰 이익은 핵보유국 인정을 받았다는 데에 있다. 또 조선은 대러 관계 밀착이 "국제질서의 다극화"라는 자신의 목표를 돕고 있다고도 여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북러 관계 밀착 이전부터 조선 경제가 바닥을 치고 매섭게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그 비결을 '핵무력'에서 찾는다. "플루토늄을 먹고 살 수 없다"는 외부의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핵무력 덕분에 먹고 살게 됐다'고 결론짓는다. 선뜻 이해할 수도, 동의하기도 힘든 이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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