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호주의 진영화' 시대 생존 전략은? '대체 불가능성'에 달렸다

국민경제자문회의, 'K-경제안보, 전략과 핵심과제' 공개포럼

"과거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는 상호의존이 협력과 평화를 촉진하는 기반이었지만, 현재는 경쟁과 압박의 수단으로 변질됐습니다. 이번 중동전쟁에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문제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란은 세계 에너지 수송의 병목 지점을 활용해 글로벌 경제를 흔들며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병목과 대체 불가능성이 곧 힘이 되는 시대입니다." (조병제 경남대 초빙석좌교수)

"현재 국제 환경은 '보호주의 진영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단독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어려워지면서 동맹국을 묶는 블록 전략을 강화하고 있고, 이는 한국에 부담이지만 동시에 전략적 기회이기도 합니다."(김양희 대구대 교수)

"경제 안보는 최근 납사 공급 차질 문제를 통해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납사가 부족하면 에틸렌 생산이 중단되고, 이는 의료용품과 생활 필수품 생산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경제 안보는 반도체뿐 아니라 이런 기초 소재에서 시작됩니다." (이준 산업연구원 전략산업연구센터장)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가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에서 'K-경제안보, 전략과 핵심과제' 공개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이달 초 공식 출범한 이재명 정부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첫 공개행사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 중동 전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한국은 그 한가운데에서 가장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한 국가로 지목된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기존의 수동적 대응을 넘어, 산업·공급망·외교를 통합한 전략적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대체 불가능성'을 핵심으로 하는 전략국가

이날 첫 발제자인 조병제 석좌교수는 "현재 정책은 여전히 경제 중심에 머물러 있고 안보적 관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공급망 취약 품목이 1900개를 넘고, 전략 산업 범위도 지나치게 넓어 자원이 분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대체 불가능성'이다. 이는 단순한 경쟁력과는 다른 개념으로, 특정 국가나 산업이 글로벌 시스템에서 빠지면 전체가 작동하지 않을 정도의 필수성을 의미한다.

현재 글로벌 산업 구조는 각 국가가 특정 병목을 장악하는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첨단 반도체는 한국과 대만, 반도체 장비는 네덜란드와 일본, AI 인프라는 미국, 핵심 광물은 중국이 지배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특히 HBM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성에 근접한 위치에 도달했다. 조 교수는 "이러한 영역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싱가포르 사례를 통해 대체 불가능성 구축의 조건도 제시됐다. 장기 전략, 제도적 신뢰, 대규모 투자, 그리고 산업 생태계 구축이 결합될 때 비로소 글로벌 허브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동시에 전쟁을 벌이는 비평화 시대, 경제책략의 필요성

두번째 발제자인 김양희 교수는 경제 안보를 한 단계 더 확장해 '경제 책략(economic statecraft)'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경제를 수단으로 지정학적 목표를 달성하는 전략으로, 기존의 방어 중심 경제 안보를 넘어선 적극적 접근이다. 김 교수는 특히 지금이 미국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이 동시에 전쟁을 벌이고 있는 놀라운 "비평화의 시대"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 더 이상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국가가 아니라, 경제적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체급에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다만 미국처럼 제재나 관세 같은 '부정적 수단'을 활용하기보다는, 기술·시장·투자 등 '긍정적 수단'을 중심으로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의 관세 전쟁을 단순한 무역 갈등이 아니라 경제 책략의 일환으로 해석했다. 특히 미국이 한국, 일본, EU 등을 15% 관세로 묶은 것에 대해 '15 클럽'이라고 의미 부여하면서 한국이 미국에 의해 전략적으로 필요한 국가로 재평가됐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외교 전문가인 바이든은 당근과 채찍을 썼지만, 트럼프는 당근은 없이 채찍만 휘두르고 있지만 트럼프도 여전히 한국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 전략적 함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보호주의 진영화 속에서 한국이 과도하게 특정 진영에 종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선명성은 필요하지만, 이는 선택이 아니라 관계 설계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GDP 대비 제조업 28%' 한국의 구조적 딜레마

마지막 발제자인 이준 센터장은 중국 문제를 경제 안보의 핵심 변수로 꼽았다. 중국은 시장, 기술, 자원, 인력을 모두 갖춘 국가로, 기존 경쟁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이 이미 큰 영향을 받고 있으며, 반도체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과거에는 중국이 한국 성장의 기회였지만, 이제는 가장 큰 위협으로 전환됐다.

여기에 미국의 산업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글로벌 공급망과 생산 구조는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반도체 생산 비중이 미국으로 이동하는 흐름은 한국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 센터장은 공급망 문제를 핵심 리스크로 지목했다. 특히 한국은 중국과 깊게 연결된 산업 구조 때문에 공급망 재편이 쉽지 않다.

요소수 사태에서 보듯 특정 품목 의존도는 쉽게 낮아지지 않으며, 공급망 안정화는 구조적 한계를 가진다. 동시에 탄소 전환, 에너지 전환 등 새로운 비용 부담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제조업은 다시 전략적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28%에 달하는 세계적 제조 강국으로, 이는 경제 안보 시대에 중요한 경쟁력이다. 이 센터장은 "한국은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바이오 등 4대 전략산업 최선단 생산기반을 모두 갖고 있는 유일한 국가"라며 1세대 앞선 경쟁력 유지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GDI 3위 한국의 가능성

이어진 지정토론에선 박종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글로벌경제안보연구센터장, 권석준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부 교수가 참여했다.

박종희 교수는 최근 중동사태로 미국의 리더십이 후퇴한 가운데 새 경제안보 환경에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한국과 UAE(아랍에미리트)의 원유 우선 공급 협력을 언급하며 "다양한 층위에서 신뢰를 쌓아야하며, 정부 뿐만 아니라 기업의 투자, 민간의 신뢰 등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지만수 센터장은 한국이 제조·수출 강국으로서 경제안보적 위기에 대한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할 위상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장기적·전략적으로 한국이 원하는 위치·역할·질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석준 교수는 GDP(국내총생산)보다 GDI(국내지능총량) 기반 경제안보를 채택할 때라면서 AI, 에너지 역량 등을 기반으로 하는 GDI 지표로 보면 한국은 미국, 중국에 이은 3위라는 통계를 제시했다.

김성식 국가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개회사에서 "방어적인 경제 안보 전략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킬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대체불가능한 경쟁력을 갖춘 전략국가로 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축사에서 "중동 상황은 보급로의 안전성과 에너지 공급이 더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경제안보는 국가의 지속 가능과 직결되는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에서 열린 K-경제안보 전략과 핵심과제 공개포럼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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