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시상식의 '케데헌' 인종차별, 한국은 무결한가

[시민건강논평] 한국 안의 이주민 차별·배제 타개해야

지난 16일 제98회 아카데믹 시상식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팀이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거머쥐며 2관왕에 올랐다. 서구 중심 구조로 비판받아온 오스카에서 이룬 이번 수상은 불리한 구조를 극복하고 이뤄낸 값진 성과였다. 하지만 '케데헌'팀에게 수상의 기쁨을 누릴 충분한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주제가상을 받은 뒤, 작곡가 이유한의 수상소감 발표가 강제로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오스카 시상식에 참여한 다른 팀들과는 다른 명백한 차별의 순간이었다. 한국 언론과 각종 외신은 적나라한 인종차별이 드러난 이 순간을 오스카 시상식 최악의 순간으로 기록했다.

UN은 인권선언문에서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고 천명한다. 인종차별을 해서 안되는 이유, 인종차별이 그 자체로 부정의한 이유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이에 차별의 순간을 목도한 우리는 로스엔젤레스 한복판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케데헌팀이 겪었던 고통에 연대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우리는 과연 인종차별로부터 자유로운가. 안타깝게도 '명백한 부정의'인 인종차별을 한국사회에서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도처에 널려있고, 인종차별은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고 있다. 생물학적 차이에 따라 인종이 구분된다는 사회적 통념과 달리 인종은 고정된 자연적 범주가 아니라 특정한 권력관계를 유지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구성된 산물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사회에 들어온 이주민은 '사람'이 아니라 '노동력'으로 우선 규정되며 그 과정에서 특정한 집단으로 구획되고 위계화된다. 따라서 이주민에 대한 차별은 단순한 문화적 차이나 외국인 배제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위계가 작동하는 인종차별의 문제로 해석되어야 한다.

지난 10일 이주노동자 고(故) 뚜안 씨가 이천의 한 자갈 가공업체에서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다 이에 끼어 숨졌다. 업체는 기본적인 안전장치도 없는 환경에서, 가동을 중지하지 않은 채 점검을 지시했고, 뚜안 씨는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뚜안 씨는 어째서 이러한 비극을 겪어야 했을까? 비단 뚜안 씨 뿐만 아니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희생된 이주노동자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사고의 근본 원인을 일부 비윤리적인 고용주 개인의 행태로 환원시킬 수 없음을 드러낸다.

이주노동자 뚜안 씨는 위험한 노동환경과 강압적인 노동지시에 저항할 수 없었다. 한국인이라면 이와 같은 조건에 놓일 가능성은 이주노동자에 비해 극히 낮았을 것이며, 즉시 고용주에게 반박하기 어렵더라도 최소한 '근무지 변경'은 고려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를 고용주에게 종속시키는 한국의 이민정책 하에서 뚜안씨는 최소한의 안전을 요구할 수 없었다. 실제로 전체 노동자 중 이주노동자의 비율은 5%지만, 전체 산재 신청건수 대비 이주노동자의 산재 신청 비율은 7%, 산재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비율은 11%에 달한다(☞관련영상 바로가기).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험의 이주화'라는 말이 등장한 배경이다.

한국의 이민정책은 이민자를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정책이라기보다 노동력 도입을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농업, 건설업, 제조업 등의 분야는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으로 표상되며, 열악한 처우로 인해 한국인 노동공급에 공백이 발생해 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노동환경과 임금을 개선하는 대신 노동력을 수입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인 후에도 정부 기조는 변함없었다.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노동권을 보장해주는 방법이 아닌, 이주노동자를 착취하고 고용주에게 종속시키는 구조를 만들었다.

비전문인력 이주노동자 도입제도인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이주민은 원칙 상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이주민은 사업주에게 정당한 권리를 요구할 수도, 본인을 착취하는 사업장을 떠날 수도 없다. 농어업 분야에서 단기적으로 필요한 계절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외국인 계절 근로자 제도' 또한 초단기 계약으로 인해 구조적 취약성을 동반하며, 이는 이주노동자를 고용주에게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미등록 이주민은 차별적이고 배제적인 사회구조의 결과로 창출된다. 언론에서는 마치 '미등록'이 한국사회의 혜택에 편승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선택한 결과인 양 호도하며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폭력적인 단속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실상은 인권을 유린하는 노동환경, 단기간으로 제한된 고용기간이 이주민을 한국사회의 제도 밖으로 밀어낸 결과이다. 심지어 미등록 상태로 밀려난 이주민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는다. 한국사회 안에서는 제도의 안과 밖, 어디에서도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찾을 수 없다.

지난 3월 3일 법무부에서 발표한 '2030 이민정책 미래전략'에서는 이주민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 전략은 이주민을 선주민의 이익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프레이밍하며, 노동권과 인권에 대한 언급은 없이 또 다시 이주민을 노동력으로 도구화했다.

한편, 이러한 구조적 착취는 아시아계 이주민에게 집중된다. 한국의 이민정책은 서구 출신으로 표상되는 전문인력 이주노동자에게는 상대적으로 정주의 기회를 열어두고 있다. 이는 한국사회에 내재된 인종에 대한 위계를 드러내며, 동시에 제도를 통해 이주노동자 내부의 위계를 재생산한다.

한국사회는 인종주의에 양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편으로는 서구 중심의 인종주의를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고 싶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에서 인종주의적 질서를 이용하여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인종주의는 파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배와 착취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전세계의 인종주의는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손인서, <다민족 사회 대한민국>, 2024).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인종주의적 질서에 편승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근본적으로 타개할 것인가.

현 정부는 지난 해 발생한 나주 이주노동자 지게차 사건을 계기로 고용허가제에 대한 제도 개선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주민을 '노동력'으로 바라보는 한, 실질적인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 근본 원인에 대한 개입이 필요하다. 인종주의 하에서 이주노동자의 인권은 보장될 수 없다. 노동력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이주노동자를 우리 사회의 평등한 구성원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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