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이 아니라 '정사노'여야 한다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이재명 정부 사회적 대화, 왜 불안한가

이재명 정부의 노사정 사회적 대화 1차 회의를 생방송 유튜브로 시청했다.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논의들이 나왔지만, 어떻게 보면 그 내용들은 이미 오랜 기간 노사 당사자들이 주장해 온 바다. 반복된 것들을 빼면, 이번 회의에서 특별히 새로 나온 내용은 없었다.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말이다.

나는 한국형 노사정 대화가 투입되는 엄청난 정치적 비용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의 하나를, '노사정이냐' 아니면 '정사노냐'의 선후 문제에서 찾는다. 이번 회의에서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노사가 먼저 논의를 하여 합의를 하면 정부가 고려해 보고, 필요하면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논조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내 생각은 정반대다. 사회적 대화의 순서 자체를 다시 짜야 한다.

양극화 해소, 노사가 아니라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양극화 해소'가 이번 회의의 대주제였다. 대통령도 그렇고 노사 모두 양극화 해소가 기업 내외부의 노사관계와 자원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인정했다. 결국 기업 내부의 임금과 복지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임금, 즉 사회안전망의 확대와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모두가 인식을 같이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한 문제가 나온다. 기업 밖의 문제인 사회적 임금, 즉 사회복지를 확대하고 개선할 주체는 누구인가. 나는 그 주체를 노사가 아니라 정부라고 생각한다. 사회복지는 세금 확대와 인상의 문제이자, 국가재정의 효율화와 투명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금을 만들거나 기존 세금을 늘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미 거두게 되어 있는 세금이 제대로 걷히고 있는지, 걷힌 세금이 낭비와 비효율 없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강자에게 유리하게 짜여진 재정 지출 구조를 약자에게 유리하게 바꿀 여지는 없는지 따져보는 일은 정부가 실천 의지와 실천 계획만 있다면 충분히 착수할 수 있는 과제다. 이러한 세수와 재정의 효율화와 합리화를 통해 아끼고 모은 돈을 사회복지의 개선과 확대에 쓸 수 있다면,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양극화 해소를 사회적 대화의 핵심 의제로 삼는 순간, 그 논의는 기업 안팎의 임금교섭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조세·재정·복지의 문제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핵심 권한은 노사가 아니라 정부가 쥐고 있다. 그렇다면 회의의 첫 순서부터 달라져야 한다.

왜 '노사정'이 아니라 '정사노'인가

이런 점에서 이번 회의는, 대통령도 참석한 새 정부의 첫 노사정 회의였던 만큼, 노사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듣기에 앞서 정부가 먼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의지와 실천계획을 밝히고, 이에 대해 노사의 의견을 묻는 자리였어야 했다. 그렇게 했더라면 훨씬 더 효과적인 회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형 사회적 대화가 잘 되려면,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하는 순서가 '노사정'이 아니라 '정사노'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모두발언 다음 순서는 사회적 대화 관련 법률상 정부를 대표하는 위원인 경제부처 장관과 노동부 장관이 맡아야 한다. 두 장관이 사회적 대화의 의제와 관련된 구체적인 정책 방향과 실행 계획을 밝히고, 그에 대하여 노사대표에게 협의와 교섭을 요청하는 순서가 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은 정부가 결정 권한과 정책 수단을 쥐고 있으면서도, 마치 노사가 먼저 합의해 오면 그 결과를 검토해 주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사회적 대화가 성과를 내기 어렵다. 정부가 먼저 책임 있게 제안하지 않으면, 노사는 정작 자신들이 결정할 수 없는 문제를 두고 반복적으로 입장만 확인하게 된다. 그 결과 회의는 상징적 수사만 남기고 공회전하기 쉽다.

▲이재명 대통령이 3월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제1기 출범을 맞이해 청와대에서 열린 노동정책 토론회에서 전문가 발제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놓친 것

지난 2017년 9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이 서울시가 주최한 '괜찮은 일자리 도시 국제포럼'에 참석하면서 청와대를 예방했다. 가이 라이더 총장은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그리고 강제노동 금지 등 자유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ILO 협약 비준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안타깝게도 문재인 대통령은 행정부가 책임질 비준 문제를 국회 입법 과제로 돌렸고, 국회는 자신이 책임질 입법 과제를 다시 노사 간 합의로 돌렸다. 결국 노사 간 합의는 불발되었고, 국회는 어정쩡한 입법을 했다. 그리고 개혁 동력이 다 떨어진 문재인 정부 말기에야 협약 비준이 이뤄졌다.

이 사례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정부가 자기 책임으로 추진해야 할 사안을 노사 합의의 문제로 돌리면, 사회적 대화는 개혁의 촉진 장치가 아니라 개혁의 지연 장치가 된다는 점이다. 사회경제 개혁을 위한 강력한 디딤돌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국제기준의 비준은, 결국 '촛불혁명' 정부의 개혁을 추동하는 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귀에 피가 나도록 들은 이야기만 반복하는 회의

이번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는 대통령이나 장관, 특히 정부 관료들이 귀에 피가 나도록 들어온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시대 변화와 기술 발전에 따라 새롭게 나온 이야기도 있었겠지만, 노동시장 양극화로 인한 문제점은 1999년 1월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한 이래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논의해 온 것이다. 그런데도 회의는 여전히 정부의 구체적 정책 제안보다 노사의 요구를 다시 듣는 방식으로 흘러갔다.

이미 알고 있는 문제를 또다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사회적 대화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정부가 정말 사회적 대화를 통해 성과를 내고 싶다면, 먼저 자신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부터 밝혀야 한다. 특히 노동정책, 사회정책, 조세정책, 재정정책에서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사회적 대화는 그 이후에야 비로소 정보에 기초한 협의와 교섭의 장이 될 수 있다.

노동정책 외주화하는 정부

정부의 노동행정과 노동정책 과정을 살펴보면, 노동부가 노동정책을 직접 만든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대신 혈세를 들여 대학교수나 외부기관에 용역을 맡긴다. 정책 생산 역량을 행정 내부에 축적하기보다, 노동정책의 생산 자체를 외주화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외주화되어 생산된 노동정책이 웬만해서는 국민들에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공개로 분류되어 관료들의 캐비넷에 들어가 세월을 보내기 일쑤다. 그러다 때때로 대통령이나 장관의 입맛에 맞는 것들이 선택적으로 꺼내져 마치 새로운 것인 양 포장된다.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기본법'이 대표적이다. 그 골간은 이미 십여 년 전 노동부의 외부 용역사업을 통해 주된 내용이 마련된 바 있다. 지금 국회에서 논의 중인 법안이 당시 노동부 용역 결과와 얼마나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축적해 온 정책 자료와 정보가 충실히 공개되고, 그것이 사회적 논의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정책은 외주화되고, 결과는 비공개되며, 사회적 대화는 정부의 뒷짐 속에 빈손으로 시작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협의도, 교섭도 깊어질 수 없다.

정보가 없으면 협의는 형식이 된다

노사단체는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토론회를 열면서 해당 정책을 맡고 있는 관료들을 발표자나 토론자로 부른다. 하지만 관료들이 토론회 참가를 거부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참가하더라도 하급자를 보내거나, 무엇보다 발표자료나 토론자료를 보내지 않아 자료집에 정부 발표문이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국민주권' 정부 하에서도 사회적 대화의 당사자인 노사단체에 대한 이런 무성의한 대응 관행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ILO는 단체교섭이 사회적 대화의 중심이라고 본다. 또 사회적 대화를 정보-협의-교섭의 삼각형으로 본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단체교섭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회적 대화가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구나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진 정부와 사용자가 관련 정보 공개에 인색하니, 노동은 제대로 된 협의를 하기 어렵다. 정보가 없으면 협의는 형식이 된다. 협의가 형식이 되면, 교섭, 즉 의미 있는 타협과 합의는 성립하기 어렵다.

이번 회의에서도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말은 몇 차례 나왔지만, 의미 있는 정보의 공개와 내실 있는 협의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사실상 부재했다. 대타협은 구호만으로 오지 않는다. 정보 공개와 실질적 협의라는 토대가 먼저 있어야 한다.

대통령 혼자 북 치고 장구 쳐서는 안 된다

솔직히 나는 이재명 정부 하에서 사회적 대화가 잘 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대통령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친다'고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권 1년을 향해 가고 있지만, 아직 관료들이 실제로 움직인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한국 노동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다수 대기업들이 포진한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는 것도 분명 하나의 제약 요인이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사회적 대화에 대한 관료들의 태도와 정부의 정보 공개 수준이 달라지지 않는 한, 회의가 몇 번 반복된다고 해서 성과가 생기기는 어렵다.

사회적 대화의 성패는 결국 정부가 무엇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정부 대표인 경제부처 장관과 노동부 장관이 어떤 제안을 하고, 어떤 정보를 공개하고, 어떤 실행 계획을 책임 있게 제시하느냐가 한국형 사회적 대화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2차 회의가 있다면, 정부가 먼저 말해야 한다

앞으로 사회적 대화 2차 회의가 열린다면, 첫 발표자는 정부 대표가 되어야 한다.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노동정책, 사회정책, 조세정책, 재정정책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정부는 정보 공개를 충실히 하고, 관련 정책의 발표를 선행해야 한다. 그래야 노사도 자기 입장만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정책을 놓고 협의하고 교섭할 수 있다.

사회적 대화는 말의 순서가 아니라 권한과 책임의 순서에 따라 다시 짜여야 한다. 한국형 사회적 대화가 정말 성과를 내려면, 더 이상 노사정의 익숙한 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제는 노사정이 아니라 정사노여야 한다. 정부가 먼저 책임 있게 말하고, 정보를 내놓고,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그 위에서야 비로소 협의가 가능하고, 교섭도 가능하다. 한국형 사회적 대화의 성패는 바로 그 전환에 달려 있다.

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의원실 보좌관, 국제화학에너지광산노련(ICEM)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IndustriALL 글로벌노조 프로젝트 컨설턴트로 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