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빠르게 늙어가는 사회다. 하지만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돌봄의 책임을 누가, 어떻게 떠안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여전히 많은 돌봄은 공공이 아니라 가족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가족 안에서 돌봄은 대개 여성이나, 때로는 아직 자기만의 삶을 시작하기도 전인 청년에게로 향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영케어러(Young Carer)'라는 이름이 공론장에 등장했다. 가족의 질병이나 장애로 인해 청소년기나 청년기에 돌봄 책임을 떠안은 이들이다. 정부는 2022년 처음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했고, '가족돌봄청년'이라는 공식 명칭을 만들었다. 자기돌봄비, 일상돌봄서비스, 청년미래센터 같은 지원사업이 도입되고 관련 법률도 제정되었다. 청년들의 돌봄이 비로소 공적 호칭을 얻고 제도적 보호를 받게 된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이른 시기에 시작된 돌봄은 그들의 삶과 건강에 어떤 장기적인 영향을 남길까? 오늘 소개할 논문은 바로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돌봄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생애 초반 가족돌봄과 노년기 건강 결과). 이 연구는 미국의 대표적인 노년층 패널조사인 건강·은퇴조사(Health and Retirement Study) 자료를 활용해 1만 2000명이 넘는 중·노년층의 생애 돌봄 경험을 분석했다. 단순히 '돌봄을 한 적이 있는가'를 묻는 데 그치지 않았다. 연구진은 돌봄을 몇 살에 처음 시작했는지, 돌봄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 누구를 돌보았는지를 함께 질문했다. 그리고 이러한 생애 돌봄 경험이 노년기의 신체 기능, 우울 증상, 인지 기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비교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돌봄을 경험한 사람들은 비돌봄자에 비해 신체 기능이 나쁘고 우울 증상이 높았다. 흥미롭게도 인지 기능은 평균적으로 더 높은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인지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돌봄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건강한 돌봄자 가설'로 설명될 수 있다. 돌봄은 고된 노동이지만, 동시에 복잡한 의사결정과 일상적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활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연구진이 돌봄의 지속 기간, 돌봄 대상과의 관계, 반복 여부 등 여러 특성을 동시에 통제한 뒤에도, 돌봄을 '언제' 시작했는지가 세 가지 건강 지표 모두에서 가장 강력한 예측 요인으로 남았다는 점이다. 특히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돌봄을 시작한 사람들은 노년기에 신체 기능이 더 낮았고, 우울 수준이 더 높았으며, 인지 기능 역시 더 낮은 경향을 보였다. 반대로 노년기에 돌봄을 시작한 경우에는 건강 상태가 비교적 양호했다. 다시 말해 돌봄은 단지 경험의 유무보다 그 시작 시점이 건강 궤적을 가르는 분기점이 되었다.
연구진은 이를 생애과정 관점에서 해석한다. 청소년기는 교육을 마치고, 직업을 시작하며,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중요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 돌봄에 개입하면 학업 중단, 노동시장 진입 지연, 고용 불안정, 사회적 고립과 같은 경로가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기회의 구조가 바뀌고 그 불이익은 수십 년에 걸쳐 누적된다. 그 결과가 바로 노년기의 건강 격차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케어러에게 돌봄은 한 시점의 부담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사건인 셈이다.
돌봄을 사회가 책임지기 위해서는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봄 제공자 각각의 삶의 질과 건강을 보호하도록 매우 정교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올해 3월 27일부터 돌봄통합지원법이 전면 시행된다. 통합지원의 의미가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돌봄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되길 바란다.
*서지정보
Chioun Lee, Dana A Glei, Soojin Park, Casey K Brown, Maxine Weinstein, When Family Caregiving Happens: Life-Course Timing and Health Outcomes in Later Life,The Journals of Gerontology: Series B, 2026;, gbag024,https://doi.org/10.1093/geronb/gbag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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