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스물하나였는데… "클린룸에서, 마비로 픽픽 쓰러져도 몰랐어"

[클린룸 안의 사람들] 오퍼레이터 최유선 이야기 ② 알 수 없는 마비의 원인은 다발신경병증이었다

반올림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입니다.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재를 신청하면서 기록의 필요성을 절감해 생애사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아픔과 고통뿐 아니라 개인의 꿈과 행복에 대해 묻는 인터뷰를 했고, 재해경위서, 진술서가 아닌 삶을 담은 글을 적었습니다. 올 한 해 2월부터 한 명씩 총 11명의 삶을 구술기록으로 전해드립니다.

점점 굳어 가는 몸

일을 그만두게 된 건 예상치 못한 상황 탓이었다.

몸이 굳어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허리가 너무 아팠고, 다리도 이상하고 굳어 가는 걸 언제 느끼냐면 걸을 때 이상한 거예요. 내 마음대로 걸어지지가 않고 뭔가가 막 더딘 거예요. 걸음도 이상하고 자꾸 넘어지고 그러니까 그 느낌이 있잖아요.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왜 그러지?'

거의 마비가 팔까지 왔는데도 (회사를) 다녔어요. 어떻게 다녔냐면 계단을 오르내리기를, 오르는 건 해요. 내려가지 못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 계단에서 굴렀을 수도 있었어요. 몇 번을 그러려다가 살아남았거든요. 우리 그 6라인 가는 데 계단이 있어요. 그러면 친구를 항상 불러요. "나 좀 데려다 줘." 왜냐하면 내려가는 게 불안하니까 막 떨어질 것 같으니까. 그러면 친구를 붙잡고 가면 괜찮아요. 지탱하는 게 있잖아요. 그러니까 마비가 그렇게 진행되는데도 다닌 거 보면 저도 참 미련했던 것 같아요.

상태가 악화되었음에도 겉으로 봤을 때는 크게 티가 나지 않았고, 혹여나 잘릴까 봐 유선은 아픈 걸 회사에 알리지 못했다. 건강한 몸을 기준으로 조성된 업무 환경에서 개인은 아픈 몸이 배려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쉽사리 갖기 어렵다. 이는 아파도 자신의 몸 상태를 숨기고 혼자 감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고 나서 결국에는 도로에서 걷는데 두 번인가를 쓰러진 거예요. 다시 일어나면 그 할아버지들이 거동 불편하실 때 일어날 때처럼 막 이렇게 흔들흔들해서 또 팍 쓰러지는 거예요. 그때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나 집에 가야겠다.' 그래가지고 친구가 역까지 데려다 주고 그러고 그냥 내려간 거야. 그러면서 긴장이 다 풀려 버린 거예요. 온몸에 긴장이 다 풀리니까 집에서 전체적인 마비가 와 버린 거예요.

1998년 12월 회사에 통보도 하지 않고 다급하게 집으로 내려갔다. 회사에서는 무단결근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3개월 만에 퇴사 처리가 되었다. 병가를 낸다는 생각도 못 했고 주변에서 조언을 해 주지도 않았다. 일을 그만두는 것은 유선이 고대하던 일이었지만 이렇게 몸이 망가져서 그만두게 될 줄은 결코 몰랐다.

병명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의원을 전전하며 '폐가 말라서 죽는 병', '고치지도 못하면서 병원만 전전하다 돈만 쓰다가 죽는 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정형외과에서는 '쉬면 낫는다', '신경성이다', '사용하지 말아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 병원까지 몇 곳을 거친 뒤에 '다발신경병증'이라는 진단명을 받을 수 있었다.

병원도 솔직히 안 가려고 했어요. 제가 그것 때문에 엄청나게 싸웠어요. 왜냐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 근데 돈이 진짜 그때 한 푼도 없었거든요. 그리고 데리고 갈 사람도 없었어, 서울에. 뭐 운전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그래가지고 병원도 안 간다, '그냥 이대로 마비되면 마비되는 대로 때 되면 죽으면 되지'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 나이(22살)에도. 짐이 되고 싶지도 않고, 가난한 형편에 나한테 막 쥐어짜서 돈을 해 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닌 거 뻔히 아는데 강요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때는 생각이 많이 극단적이었던 것 같아요.

다발신경병증은 두 개 이상의 말초신경이 동시에 침범되어 기능 이상을 일으키는 신경 질환이다. 감각 이상 증상으로 손발에 저림이나 따끔거림이 나타나고, 운동 기능 장애로 인해 근력 약화, 보행 장애, 근육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자율신경이 침범될 경우 어지러움, 소화 장애, 변비, 설사, 배뇨 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되게 신기한 게 제 병이 건강검진에서 나오는 병이 아니에요. 제가 말을 하지 않는 이상 내가 아프다는 걸 아무도 몰라요. 솔직히 손의 감각이 많이 무뎌져도요, 보이지 않는 이상은 일반 사람이 잘 못 느끼거든요. 나만 느끼는 거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지금도 어딘가 아파도 제가 말을 안 하면 몰라요. 500밀리리터짜리 물을 못 드는 경우가 좀 있거든요. 그러면은 그냥 특별하게 그걸 떨어뜨리지 않는 이상은 상대편은 알 수가 없어요. 저만 아는 거죠. 내가 이거를 못 드는데 상황이 그러면, 오른쪽 손이 안 되면 그냥 왼손으로 들면 되니까.

▲최유선의 약봉지. ⓒ박정원

열 번 중 한 번

유선은 약을 먹으면 통증도 없고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약에 내성이 생기면 약이 잘 듣지 않고 마비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그게 반복이 되니까. 나을 만하면 또 그러고. 그러니까 그게 그럴 때가 있어요. 열 번 아프잖아요. 그러면은 한 번 정도는 그냥 안 넘어가질 때가 있어요. 어쩔 때는 진짜 화가 나고 이럴 때는 막 울어요. 울면서 딱 그 얘기를 해. "열 번 중에 아홉 번은 참았으니 오늘만큼은 한 번은 울게끔 허락을 해 달라"고. 그렇게 하고 막 울어요. 토해 내고 나면 그다음부터 또 안 울어요. 사람이 열 번 다 순수하게 '그럴 수 있어.' 이렇게 넘어가는 거는 쉽지 않더라고요.

몸 상태는 정신 상태와 무관하지 않다. 당장 몸이 아파서 신경이 예민한데 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은 속편한 소리로 들릴 뿐이다.

아픈 사람들은 자기하고 엄청 싸우거든요. 내려놔야 되는 것도 많고, 욕심도 다 내려놔야 되고. 근데 상대편은 용기를 준다고 막 파이팅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돼." 그거 모르나요? 근데 항암 맞고 있는데 긍정적인 생각 안 돼요. 어느 날 TV를 봐도, 코믹을 그렇게 재밌는 걸 봐도 웃음이 안 나와요. 내 몸이 아프기 때문에 항암을 하고 있을 때. 언제 웃음이 나오냐면 항암이 끝나고 내 몸이 좋아지잖아요. 그러면은 그 웃음이 나와요. 그냥 자연스럽게 몸에서 느껴요. 제가 하나하나씩 인생을 배운다는 느낌이 거기서 들어요.

끝나지 않은 치료와 치료비

다발신경병증은 또 다른 병으로 이어졌다. 유선은 2016년에 유방암을 진단받았고 수술 및 방사선 치료를 진행했다.

약한 쪽으로 염증이 오면서 유방암도 그랬던 것 같아요. 병원에서는 걱정하는 부분이 유방 쪽만 오는 게 아니라 다른 쪽으로 올까 봐 약을 자꾸 변경하길 원해요. 이 스테로이드를 안 먹고, 그 약으로 돌리려고. 왜냐하면 이 스테로이드가 오래 먹으면 뼈가 자꾸 부러져요. 제가 조금만 넘어져도 뼈가 부러지고, 무거운 걸 억지로 힘써서 하면 갈비뼈 같은 게 부러져요. 약해가지고.

의사가 권유하는 약은 한 달에 천만 원이나 한다. 한 번으로 병이 낫는 것도 아니고 매달 맞아야 하는 주사다. 유선은 약값을 감당할 수 없어 4개월 정도 맞고 끝냈다. '또 결국에는 금전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는구나'라는 생각에 서글펐고, 더는 가족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은 생각에 남편과 헤어질 생각까지 했었다. 스물한 살 몸에 마비가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거기 의사 선생님들은 그러더라고요. 저보고 너무 현실적이래요. 너무 계산을 딱딱딱 맞춰 간다는 거예요. 근데 솔직히 내가 지금 가진 돈이 500원밖에 없는데 1000원짜리를 살 수 있는 능력이 안 돼요. 근데 현실적인 것에 직면을 하면 내가 500원 이상을 살 수가 없는 거잖아요.

유선이 비싼 약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은 '현실적'인 성격 탓이 아니다. 약값을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자체가 유선의 선택을 제약한다. 현실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사들은 알지 못한다.

만일에 병이 더 크게 진행되고 내가 진짜 소론도라는 약이 맞지 않을 때는 대체약이 그 약밖에 없거든. 그러면 삶이 좀 쉽지는 않겠네. 그냥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내 삶이 쉽지는 않겠네.

※ 3편에서 이어집니다. 다음주는 설 연휴로 연재를 쉬어 갑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