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000의 그늘…각자투자도생 사회와 후퇴하는 국가 책임

[시민건강논평] 주가만 오르고 삶은 불안정한 사회

코스피가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러다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코스피 5000을 정말로 돌파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지는 모양새다. 한편에서는 실물 경제와의 괴리나 종목 편중에 대한 지적도 있지만, 많은 이의 관심은 이 상승장이 얼마나 지속될지, 어떤 종목에 투자하면 좋을지, 이 시장에 올라타지 못하면 나만 뒤처지는 것은 아닐지에 쏠려 있다.

한국에서 주식 투자는 젊은 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는(그렇게 인식하게 만드는) 장치로서 역할을 한다. 최근 10년 간 임금근로자 평균임금은 38% 증가하는 동안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 증가는 122% 상승해 평균임금 증가율의 3배를 넘었다(☞관련자료). 금액으로 치면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4억 9000만 원에서 10억 8000만 원으로 증가했으니, 아파트를 소유한 이들은 가만히 앉아 이만큼 번 것이다. 반면 자산이 부족한 수도권 주민, 특히 젊은 세대는 높아진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 더 열악한 주거환경과 더 먼 통근을 감내해야 한다. 노동 소득(괜찮은 직장을 얻기도 힘들다)만으로는 현재 삶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워 보이는 상황에서 주식 투자는 그나마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자산 증식 활동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주식 투자를 우리 삶의 '동아줄'로 받아들이기에는 꺼림직한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주식에 투자할 여력조차 없는 사람은 애초에 배제된다는 점이 중요한 문제이지만, 여기서는 이를 넘어 투자 중심 사회가 만들어내는 함의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사람들이 기본적 삶을 누리는 데 있어서 국가의 책무성이 점차 옅어지는 것이 우려스럽다. 직접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정책을 통해 현대 사회의 위험에 집단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중요한 국가의 책무다. 이것이 충분치 않을 때, 사람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재화를 얻기 위해 시장에서 위험한 노동과 장시간 노동을 감수한다. 또한 투자(투기)에 뛰어드는 사람도 늘어난다. '돈'이 없으면 기본적 생활조차 영위하기 어렵게 되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즉 돈의 효용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더 큰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주식 투자 인구의 증가는 국가가 충분히 삶의 안전망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정부가 코스피 5000과 같은 지수 목표를 국가적 과제로 제시할 경우, 국가의 책임은 희미해지고 시민 개인의 투자 성과에 대한 책임이 강조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국가가 공공서비스 등 탈상품화 정책을 펼치기보다는, 투자 '시장'을 활성화하며 "기회는 제공했다"라는 알리바이를 만드는 셈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안정적 삶이 개인의 자산 운용 성과에 따라 좌우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런 구조가 좀 더 공고해진다면, 투자는 하나의 선택을 넘어 규범이자 도덕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이미 그런 조짐은 곳곳에서 보인다. 투자를 기본 소양처럼 여기고, 이를 모르면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없다는 조언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과거에 투자하지 않았던 사람은 여태까지 본인이 투자를 너무 몰랐다며 반성하는 투로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각자투자도생의 사회에서 사회 정책과 복지제도는 얼마나 지지받을 수 있을까. 투자가 규범에 이른다면, 연대를 기반으로 개인의 위험을 줄이고자 하는 사회적 장치는 낭비로 여겨질 것이다. 투자하지 않는 것이 뒤처짐이나 무능력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 이러한 변화 자체를 문제로 느끼는 감각은 점점 희미해질 것이다.

자본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약해질 가능성도 간과하기 어렵다. 주식 시장에 깊이 연루되고, 그 성과에 삶을 의탁하는 사람일수록 본인이 투자하는 기업에 대한 규제가 탐탁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노동자 착취를 예방하거나 안전한 노동 환경을 보장하는 규제, 혹은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규제라도 주가를 떨어뜨린다면 마냥 환영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계급, 국적, 젠더, 정치적 이념 등등에 따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시민들의 인식과 실천이 오로지 주식 투자로만 수렴되지는 않는다. 또한 모든 일이 무 자르듯 명확한 구분점이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회색지대야말로 사회적 균형이 자본 친화적으로 기우는 공간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짚고 싶은 것은 노동의 가치 절하다. 서울 아파트 가격 사례에서 드러나듯, 노동 소득의 가치는 자산 소득에 비해 실질적으로 약화되어 왔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에 대한 사회적 해석에도 영향을 미친다. 노동 소득만으로는 안정적인 삶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노동은 삶의 중심이 아니라 투자금을 마련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위치하게 된다. 우리가 깨어있는 시간의 많은 시간을 노동에 할애하면서도, 거기서 의미와 존엄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국가의 책무성과 자본에 대한 견제가 약화되는 흐름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적정한 임금, 안전한 노동 환경 확보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투자 담론이 사회 전반을 지배할수록 임금과 노동조건, 노동자 권리 등은 문제화하기 더 어렵다. 지난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하청업체 노동자 1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은 한국GM의 사례나, 노조 파괴를 목적으로 직원들을 해고한 것에 맞서던 세종호텔 고진수 지부장이 336일이나 고공농성을 펼치고, 지상에서 또 투쟁을 이어가는 것은 연일 이어지는 코스피 상승 기사 속에 쉽게 가려진다. 어렵게 쟁취한 노란봉투법 역시 비정규직의 원청 교섭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 때문에 무력화될 위기에 처했지만, 좀처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주식에 투자하느냐 여부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사회가 투자 없이는 존엄한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스피 5000이라는 목표는 단순한 경제 지표가 아니라, 국가가 어떤 삶의 방식을 권장하고 어떤 책임을 후퇴시키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민이 투자하기 좋은 시장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가 삶의 안전망으로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시민건강연구소
시민건강연구소

(사)시민건강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비영리독립연구기관입니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연구소가 발표하는 '시민건강논평'과 '서리풀 연구通'을 동시 게재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