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되고 불평등한 공동체,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시민건강논평] 2025년, 끝나지 않은 '내란'

우두머리를 처벌하는 1심 재판도 끝나지 않았으니 법률적 의미로 한정해도 내란은 마무리되지 못했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더 처참하다. 새로운 범죄들이 줄줄이 드러나지만 발본색원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한둘이 아니다. 실정법의 판단도 형식 논리를 넘지 못하니 마냥 진지하게 유무죄를 다투는 모양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사회적 '내란(內亂)'은 해결은커녕 한 해 전보다 상황이 더 나빠졌는지도 모르겠다. 분열되고 찢긴 공동체, 끝 모를 불평등과 구조적 부정의. 당장 무엇보다, 때로 민생 경제라 하고 또는 물적 토대라고 부르는 '사람의 살림살이'가 불안불안하다. 곳곳에서 살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체감 불평등 또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자신하는 미래의 성장 가능성도 온통 재벌기업, 수출산업, 주식 시장에 한정될 뿐이다.

일부 학자들은 불평등 악화가 그냥 느낌이고 인상일 뿐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론과 통계의 게으른 실패를 의심한다. 국가 수준의 지표가 괜찮았던 때조차 성적은 서울과 도시 지역, 알만한 사람들, 그리고 경제활동인구에 해당하는 연령대를 과잉 대표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모호하게 만드는 그 지긋지긋한 평균의 함정. 경제의 총량 지표가 괜찮으면 괜찮은 대로, 또 부진하면 부진한 대로, 경제적 약자의 고통은 은폐되거나 주의를 끌지 못한다.

현실 정치 또는 제도 정치 또한 '내란 이후'에 맞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우리는 현실 정치의 안정을 바라지만, 그것이 단지 다툼과 갈등 없는 현상 유지를 뜻하겠는가? 현실이든 변혁이든 정치란 마땅히 미래지향적인 의제를 내고 사람들의 희망을 만들어 모아야 하는 것. 가까스로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그 정치가 사회적 '어지러움(亂)'을 이기고 새로운 꿈과 기대를 품게 하는지, 아직은 그럴 의도조차 읽을 수 없다.

내란 척결이나 극복이 법 위반자 처벌과 기존 제도의 정상적 운용, 몇몇 높은 자리를 바꾸는 정도를 뜻하는가? 근본 구조 운운은 바랄 형편도 아니지만, 예를 들어 정권 교체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행정, 입법, 사법의 구태들을 보라. 그 알량한 자유민주주의 또는 헌정질서 회복조차 뭔가 성취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래된 어지러움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형태로 미래의 어지러움을 가중하는 중이다. 가히 '느린 내란'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그런 경제와 제도 정치가 결합한 것이 가장 나쁘다. 결합이란, 완전히 경제 권력의 '집행위원회' 노릇으로 되돌아간 정치를 말한다. 내란의 정치, 사회, 문화, 그 뿌리는 결국 물적 토대 문제까지 이른다. 심화하는 소득 불평등, 줄어드는 일자리, 지역 불평등과 모든 것의 수도권 집중, 성장산업의 몰락과 재편 등이 얽히고설켜 2024년의 계엄과 내란을, 그리고 그 후의 느린 내란까지, '포스트' 나라 만들기 시기를 열어젖혔다.

그러니, 내란은 예외적 사건이거나 변종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물론, 개방된 미래, 열린 역사에서 다른 경로도 가능했을 터지만, 질주하는 한국 자본주의, 한국 발전국가의 (한 가지) 극단적이되 필연적인 경과가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또 다른 내란, 오랜 또는 새로운 내란의 동력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령, 새 정부가 '산재 공화국'을 벗어나야 한다고 했지만, 전쟁과도 같은 그 노동 조건이 달라질까? 이번에도(!) 지역 불평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고 다짐하지만, AI 3대 강국 전략과 데이터 센터 유치로 가능할까? 내란의 직접 증상과도 같은 차별에 대해, 차별금지법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국제정치와 글로벌 경제체제까지 보태면 주변부 국민국가가 내란을 피할 조건은 더 불리해진다. 아니, 결정적 전환을 압박한다. 제국을 포기하는 미국의 대외 정치와 경제가 여러 주변부 국가의 '각자도생'을 압박하는 한 역설적 자유를 얻은 국민국가는 극도의 경쟁 국가적 분할 체계로 진화할 것이다. 일극체제로부터, 유동하는 다극체제로의 전환기, 혼란기.

발전국가 한국의 경우 역사적 유산까지 활용하면 십중팔구 새로운 총동원체제가 모두를 유혹하고 또한 지배하리라. 아니, 새로운 내란을 예비하는 것이라면 벌써 시작되었다. 경제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방위산업과 원자력산업 발전을 말하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AI와 반도체 산업 육성 앞에 기후 위기와 에너지 전환도 언제 이야기인가 싶다. 그 사이 인도주의를 말하던 국제협력과 외국 원조도 한꺼번에 날아갔다.

아무래도 내란을 극복하기는커녕 더 큰 내란을 예비하는 시절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이것이 조건과 환경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시 우리 자신 점점 더 소진과 무력감, 미래와 희망 없음에 익숙해지는 중이라면? 물론 역사적 주체성과 의식의 후퇴는 지난 한 해 막막해진 질곡과 동반한 것이되 필연적 결과가 아니다. 하지만 조건의 엄중함이 주체를 억압하고 소외시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또 다른 결정적 국면.

그리하여, 2025년 끝자락에 스스로 묻는다. 절망을 뚫고 미래로 나아가는 유일한 연결고리. 이제 우리는 어떤 주체 되기를 준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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