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과 친노-486의 불행한 결혼
이번 사태의 일차적 원인은 지도력 문제이다. 한명숙 대표의 등장과 더불어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사실 한명숙 대표는 두 차례의 장관과 총리를 지낸 화려한 정치이력에 비해 이렇다할 지도력을 보여준 바 없다. 무난한 관리형 지도자였고, 선량한 이미지의 대독총리였다. MB정부의 표적 수사로 얻게 된 상징성이 그를 띄웠을 뿐이다. 통합야당의 당권 장악을 노린 친노와 486 등은 그의 상징성이 필요했고, 그를 대표로 옹립했다. 친노와 486의 야욕과 그의 욕심이 만난 불행한 결혼이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공천에 대한 불만은 항상 있었다. 돌이켜보면 17대 총선이 있던 2004년 공천에 대해 불만이 제일 적었다. 경선방식은 조금 어설펐지만, 소수의 전략공천을 제외하고 대부분 경선을 실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례대표도 선거인단을 구성해 순위결정을 위한 경선을 실시했다. 중앙당 공천심사위원회는 범법 사실과 같은 자격심사에 충실했고, 이번과 같은 인위적 컷오프는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민주적 정당에서 중앙당이 공천심사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앙당의 공천권한이 커질수록, 정당의 민주주의가 후퇴할수록 공천심사에 대한 불만은 높아졌다. 과거 김대중 총재 시절 공천 불만이 적어 보였던 것은 김 총재 자신이 신진인사 발탁에 적극적이었고, 그의 권위로 당내 기득권 세력의 양보를 종용하고 불만을 잠재웠기 때문이다. 김 총재와 같이 범접할 수 없는 권위가 사라진 야당에서는 또다시 중앙당의 공천권을 강화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민주주의의 후퇴이기도 하고,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한명숙 대표와 손잡고 당권을 장악한 친노와 486이 바로 그런 일을 했다.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엿장수 기준에 맞춰 칼춤을 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친소관계가 중요한 판단이었다, 상호간 기득권 지켜주기가 더 중요한 기준이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민주주의의 원칙은 공천편의주의 앞에 너무도 쉽게 굴복당했다.
출발부터 잘못됐다. 중앙당의 공심위는 범죄사실이나 해당행위 여부 등에 대한 일정한 기준을 정해 자격심사만 담당했어야 했다. 자격을 충족하는 사람이라면 민주통합당의 공천을 희망하는 사람 모두에게 경선참가자격을 부여했어야 했다. 경선후보가 난립하는 것이 문제라면 경선결선제를 도입했어야 했다.
짧은 총선준비기간 때문에 중앙당 공심위의 일정한 역할은 불가피했다고 치자. 어차피 공천에서 탈락한 당사자들의 불만은 불가피한 것이라 치자. 공천결과가 당원과 지지자들의 생각과 이토록 멀지 않았다면 그런 불만 쯤은 무마하고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민주통합당의 출발 자체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다. 민주통합당은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의 통합이다. 당밖의 많은 시민사회세력이 동참했다. 전당대회는 문성근을 제외하면 여전히 기존 민주당 인사들의 잔치가 되었지만, 한때 이학영이 공천심사위원장으로 거론되었다. 한명숙 대표가 임종석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하고, 당 안팎의 공심위원 명단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민주통합당이 새로운 당으로 바뀌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중앙당과 공심위 스스로 너무 기대를 부풀린 것도 한몫했다. 정체성을 어느 때보다 중시할 것이라 자랑했다. 정치신인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 공언했다. 무엇보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드릴 것이라 약속했다. 결과는 공천에서 탈락한 본인들은 물론이고 당원과 지지자들이 보기에 어느 한 가지도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었다.
코메디에 가까운 여론조사, 다면평가제
들리는 바에 의하면 공심위가 현역을 주로 단수 공천하고, 정치 신인들을 제거하는데 사용한 주요 근거는 '경쟁력'이라 한다. 다른 말로는 여론조사다. 여론조사를 공천결정의 근거로 삼는 것처럼 비정치적이고 어리석은 것은 없다. 2002년에 민주당이 여론조사로 대통령 후보를 정했다면 노무현이 아니라 이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의 후예를 자처하는 자들이 여론조사를 공천심사의 핵심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여론조사는 참고사항일 뿐이지 결정권을 가져서는 안된다. 여론조사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호남지역 현역 의원들을 심사하기 위해 도입된 다면평가제는 코미디에 가깝다. 현역 의원들이 동료 현역 의원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동료 현역의원들 공동의 이익을 지키는 데 얼마나 충실한가 여부이다. 의료사고를 규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입증을 도와야 할 동료 의사들이 동료 의사에 맞서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검찰과 사법부의 비리를 전담하는 공직수사비리처가 필요한 이유는 그들의 끈끈한 동료애 때문이다. 어떤 개혁적인 의원이, 동료 의원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 튀는 의원이 동료 의원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 그에 대한 다면평가가 높을 리 만무하다. 부패방지위원장을 지낸 강철규 공심위원장이 동질적 집단 내에서 부패에 대한 내부자 고발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를 리 없건만 이처럼 어리석은 기준을 채택했다는 것이 의아하다.
모바일 경선은 처음부터 적지 않은 우려를 안고 있었다. 지역구별로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총선경선은 전국이 단일선거구로 치르는 전당대회와 다르다. 조직선거, 돈선거가 되는 것이 너무도 자명했고, 진작 우려가 제기되었다. 새누리당과 동시경선 및 모바일 경선 협상이 타결되었더라면 상황은 조금 달랐을 것이다. 협상이 깨졌을 때 방향을 선회했어야 했다. 하지만 전당대회 흥행성공에 눈이 먼 지도부는 귀를 닫았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그토록 소통부재를 비판했던 사람들이, 바로 그 민주통합당의 지도부가 불통에 빠진 결과다.
시민통합당 출신 시민운동가들, 기득권 카르텔의 부속품이 되는가
지금 민주통합당은 심각한 위기다. 그 원인도 자명하다. 당권파의 항변 또는 침묵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시민통합당을 통해 당에 참여한 시민운동 출신 지도자들의 침묵은 이채롭다. 나아가 절망스럽다. 문성근 혼자 최고위원회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듯하나, 백만민란을 추진하던 열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전략공천이나 비례대표를 바라는 주요 인사들은 완벽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남윤인순, 김기식, 최민희, 이학영, 송호창, 이용선 등 시민운동 시절에 보여주던 기개와 비판정신은 온데간데 없다. 민주통합당의 쇄신의 동력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기득권 카르텔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에 참여한 시민운동 지도자들의 진정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총선도 문제지만 총선 이후가 더 문제다. 지도부의 연이은 실책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이 과반의석에 성공하면, 아니 제1당만이라도 된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만약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얻을 경우 민주통합당은 책임론을 둘러싸고 커다란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 이미 공천결과에 대해 당내 계파간 온도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큰 싸움이 예견된다.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의 의회지배를 끝낼 절호의 기회가 점점 우리의 과오 때문에 사라져가는 것에 분노를 멈출 수 없다. 아직은 필자도 그 일원인 민주통합당이 역사 앞에 커다란 죄악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든다. 공천을 포함해 총선준비는 바로 잡을 수 있는 계기를 잃었다. 총선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모든 이들의 과제가 된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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