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가 구체적인 일정까지 거론되며 속도를 내고 있지만, 대규모 행정통합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합은 단순한 행정구역 조정이 아니라, 주민의 권리와 지방자치구조 전반을 바꾸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상 광역자치단체 간 통합은 특별법 제정이 필수적이다.
단순한 시행령이나 행정협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특별법에는 통합의 명칭, 행정체계, 재정 조정 방식, 공무원 인사·조직 개편, 교육·치안·선거제도까지 포함돼야 한다.
특히 쟁점이 되는 부분은 주민의견 수렴 방식이다.
과거 시·군 통합사례에서도 공청회, 여론조사, 주민투표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돼 왔다.
법적으로 주민투표가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주민동의 절차가 부족할 경우 통합 이후 갈등이 장기화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1995년과 2010년을 전후해 다수의 시·군 통합이 추진됐다.
일부 지역은 행정 효율성 측면에서 성과를 냈지만, 상당수 지역에서는 통합 이후 청사 위치, 예산 배분, 지역 정체성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수년간 이어졌다.
특히 주민투표 없이 추진된 통합 지역의 경우, “절차적 정당성 부족”이 지속적으로 문제로 제기됐다. 통합 자체보다 통합 과정에서의 불신이 행정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반대로 주민투표와 장기간 공론화를 거친 사례는 통합 이후 갈등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분석도 있다.
해외 사례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된다.
일본은 2000년대 초반 이른바 ‘헤이세이 대합병’을 통해 기초자치단체 수를 대폭 줄였다.
행정 효율성은 일부 개선됐지만, 통합 이후 지역소멸 가속, 행정접근성 저하, 주민참여 약화 문제가 동시에 제기됐다.
특히 짧은 기간에 중앙정부 주도로 통합이 이뤄진 지역일수록 불만이 컸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반대의 선택을 했다.
통합 논의에 수년을 투입해 단계적 공론화와 주민참여 절차를 거친 뒤에야 통합 여부를 결정했다.
통합이 무산된 사례도 적지 않지만, 그 과정 자체를 정책적 성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행정통합의 성패가 결과보다 과정의 신뢰도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통합 찬반을 떠나, 누가 어떤 근거로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한 설명과 주민참여가 보장되지 않을 경우 통합 이후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는 일정과 제도 설계 논의가 앞서고, 시민 숙의 구조는 아직 명확히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정치권과 행정당국이 “졸속 추진은 아니다”라고 설명하는 것과 별개로, 숙의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전·충남 통합 논의가 실질적인 공론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특별법 논의와 병행해 주민참여 구조, 정보공개 방식, 쟁점별 선택지가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합은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충분한 과정 없이 내려진 결정은, 이후 더 큰 갈등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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