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한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 발생한 학대 의심 사건과 관련해 발달장애인 근로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한 진정내용이 민원인의 이름과 함께 공문 형태로 해당 시설로 전달돼 인권위 조사 절차와 민원인 보호 원칙을 두고 2차가해를 유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진정 이후 민원인 A씨는 시설 관계자들로부터 압박성 면담과 강제 민원 취하 요구를 받고 실제 민원을 취하한 뒤 다시 민원을 제기하는 등 인권위의 민원인을 보호하지 않은 조치가 결과적으로 2차 가해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앞서 익산에 위치한 해당 시설 2공장에서 관리자가 장애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드릴을 이용해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익산경찰서가 지난 4일 공장 관리자를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한 바 있다.
이를 신고한 민원인 정보가 시설 측에 전달된 사실은 해당 시설 소속 사회복지사 B씨와 통화 과정에서 나왔다. B씨는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민원 내용과 민원인 이름이 적힌 공문이 왔다"고 밝혔다.
이후 B씨는 인권위 명의의 '서면진술서 및 자료 제출 요구' 공문을 <프레시안>에 이메일로 보내왔으며 해당 메일에는 공문과 함께 민원인 A씨의 평소 근무 태도와 상담 과정에 대한 B씨의 개인적인 평가도 덧붙여 있었다.
B씨는 민원인을 따로 불러 면담한 이유에 대해 "이전에 진정한 건이 있었고 올해 1월부터 A씨 직장 생활과 동료 관계, 금전 문제 등을 두고 상담을 이어왔다"며 "이번 면담도 학대 사건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안과 관련한 상담이었다"고 설명했다. 면담 당시 참석자에 대해서는 "A씨와 나만 있었다"고 말했다.
민원 원문을 출력해 면담에 사용했냐는 질문에 B씨는 "강압이나 추궁이 아니라 절차 설명을 위해 국가인권위에서 온 안내문과 함께 사실관계를 차근차근 확인했다"며 "A씨 본인도 민원을 취하하고 싶다고 해서 면담을 진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B씨는 면담 과정에서 민원 문구를 거론하면서 A씨에게 질문한 사실은 인정했다. 그는 "'옹졸' 같은 단어는 평소 A씨가 쓰지 않던 표현이라 그 뜻을 아느냐고 물었고 혼자 썼다고 하길래 앞으로 이런 글을 쓸 때는 시설과 상의하라는 조언을 했다"고 말했다. A씨가 발달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표현을 사용한 점이 "믿기 어려웠다"고도 했다.
'무고죄'나 '법적 대응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A씨가 잘못 오해해서 민원을 넣었을 경우 무고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취지로 조언한 것"이라며 "시설 차원의 법적 대응을 실제로 검토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스피커폰으로 민원 접수 기관에 전화를 걸어 민원 취하를 하게 한 데 대해서는 "A씨가 도와 달라고 해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면담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내 업무였다고 생각한다"며 "근로 환경과 회사 지원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눴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A씨는 이 같은 면담이 강한 압박으로 느껴져 결국 민원을 취하하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해당 시설을 벗어나자 마자 다시 민원을 제기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 과정이 과연 발달장애인 민원인을 상대로 한 적절한 절차였는지에 의문을 제기된다.
무엇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침해나 차별 사건 진정을 접수하면 피진정기관의 소명권 보장을 위해 진정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라며 "피권고 대상의 방어권을 위해 피해자 실명을 결정문에 밝히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이 2015년 인권위가 장애인시설 인권침해 사건 조사 후 피해자와 참고인의 실명이 담긴 결정문을 시설에 전달했다가 이후 보복성 징계와 따돌림 등 2차 피해로 이어진 바 있고 이외에도 유사한 절차로 인해 2차 피해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왔다.
인권위 내부 규정인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 조사구제규칙'에는 사건 조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진정인의 신상은 원칙적으로 보호돼야 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고 인권위법에도 진정이나 진술을 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에서는 발달장애 민원인 실명과 구체적인 진정 내용이 그대로 시설에 전달됐고 이후 해당 민원인은 시설 관계자들로부터 민원 문구를 하나하나 짚는 면담과 취하 요구를 받았다고 호소하고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처럼 자기 방어나 의사 표현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신고자의 경우 신원 노출이 곧바로 압박이나 회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심지선 장애인인권연대 군산지회 대표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오히려 인권 침해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며 "민원인의 실명과 진정 내용이 그대로 전달된 것은 개인정보 보호 원칙과 2차 가해 방지 취지에 반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위법에는 개인정보 보호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0조에는 기밀보장의 원칙이 명시돼 있고 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중대한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며 "시설에서 민원인을 따로 불러 면담한 것 자체도 2차 가해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이번 사안에 대해 법적 대응도 준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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