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를 어떻게 부를까…독립도 해방도 아닌 ‘광복’으로 바로 세워야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사상계' 특별기고 "역사 왜곡의 출발은 '바른 이름'을 찾지 못한데서 비롯"

광복 80주년을 맞은 올해, 8·15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다시 한국 사회의 전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독립’, ‘해방’, ‘광복’이라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혼용되는 가운데, 그 언어 선택이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인식과 가치 판단을 근본적으로 규정해 왔다는 문제의식이 학계에서 제기됐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는 최근 <사상계> 겨울호에 발표한 광복 80주년 특별기고에서 “8·15를 무엇이라 부르느냐의 문제는 단순한 용어 선택이 아니라, 누가 역사의 주체인가를 가르는 문제”라며 “‘광복’이라는 명칭을 바로 세우는 것이야말로 식민과 분단의 역사를 넘어서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름이 흐려질 때 역사는 왜곡된다”

김병기 명예교수는 글의 서두에서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을 통해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어그러지고, 말이 어그러지면 사회 질서와 정의가 무너진다는 고전적 통찰을 제시한다. 그는 이를 오늘의 한국 사회에 적용하며 “역사를 규정하는 핵심 명사들이 흐려진 사회에서는 책임과 평가 역시 뒤집힌다”고 지적했다.

▲심석 김병기 교수. ⓒ

실제로 8·15를 ‘독립기념일’로 인식하는 시각은 한국이 역사적으로 종속 상태에 있다가 1945년에야 비로소 국가로 출현한 것처럼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해방’이라는 표현은 외부 세력이 한국을 풀어주었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어, 독립운동과 민중의 투쟁을 주변화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김 교수는 “이 두 용어 모두 한국 역사를 타율적·수동적으로 재구성하는 언어”라고 단언했다.

“광복은 선물이 아니라 회복이다”

김 교수가 강조하는 대안은 명확하다. 1945년 8월 15일은 ‘독립’도 ‘해방’도 아닌 ‘광복’의 날이라는 것이다.

광복은 본래 독립국이었던 나라가 외세에 의해 빼앗긴 주권을 다시 회복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대한제국의 국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항일 독립운동의 연속성을 전제하는 개념이다.

김 교수는 “광복을 연합국 승리의 부산물이나 선물로 규정하는 순간, 김구·윤봉길·안중근으로 이어지는 독립운동의 역사는 주변부로 밀려난다”고 지적한다.

그는 특히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김구 선생의 태극기와 윤봉길 의사의 유언을 인용하며 ‘연합국의 역할’을 강조한 대목을 강하게 비판했다.

독립운동의 주체를 흐리게 하는 ‘곡학아세’

김 교수는 김형석의 기념사를 “곡학아세의 전형”이라고 규정한다. 김구 선생의 태극기에 담긴 절박한 독립 의지는 설명되지 않은 채, 해외 인사들의 지원과 국제 정세가 과도하게 부각됐다는 것이다. 윤봉길 의사의 유언 역시 ‘다양한 해석’이라는 이름 아래, 독립투사의 결연한 각오가 희석됐다고 지적했다.

▲독립기념관 이사인 더불어민주당 문진석(오른쪽 두번째부터)·송옥주·김용만 의원이 17일 국회 소통관에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가 특히 문제 삼은 것은 이러한 해석이 우연이 아니라는 점이다. “광복을 민족 내부의 투쟁이 아닌 외부 질서의 결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냉전 반공 서사와 맞닿아 있다”고 김교수는 주장했다. 이는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해방 이후 친일 세력의 책임을 흐리는 효과를 낳아 왔다는 비판이다.

김 교수는 ‘해방’이라는 단어가 미군정 시기부터 적극적으로 사용됐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미군은 스스로를 ‘해방군’으로 규정하며 한국을 점령했고, 한국인을 “오랫동안 노예처럼 살아온 존재”로 묘사했다.

이는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미국 중심의 냉전 질서와 반공 이데올로기를 자연스럽게 이식하는 언어적 장치로 작동했다는 분석이다.

그 결과 독립운동의 계승자들은 '빨갱이'로 몰렸고 친일 협력 세력은 반공의 이름으로 권력의 중심에 편입됐다. 김 교수는 “광복 이후 80년 동안 반복된 역사적 부정의는 잘못된 명명(이름짓기)에서 출발했다”고 평가한다.

▲제80주년 광복절을 맞아 15일 전북도청 공연장에서 열린 경축식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힘차게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명은 통일과 정의의 출발선”

김 교수는 광복의 미완성을 남북 분단 현실과 연결하며 “광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냉전 질서에 편승한 결과가 분단의 고착화였고 정권과 학계가 반공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동안 민족 자주와 통일의 가치는 후순위로 밀려났다”고 거듭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제라도 8·15를 ‘광복’으로 정확히 부르고 그 의미를 사회적으로 공유해야 한다”며 “정확한 이름을 되찾는 일이야말로 친일 청산과 역사 정의, 남북 화해로 나아가는 가장 현실적인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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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홍

전북취재본부 김대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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