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선생님들 지켰죠”…교권침해의 최후 보루에서 버텨낸 변호사

프레시안 전북취재본부 연말기획 <전북과 사람> ④최성민 전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교권전담 변호사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거센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혼란 속에 시작된 2025년은 결국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을 거치며 또 한 번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권력은 교체되고, 국정 운영의 방향도 달라졌지만, 사회 곳곳에 켜켜이 쌓여온 불평등과 구조적 모순은 여전히 지역과 현장을 짓누르고 있다.

전북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역소멸 위기, 새만금 논란, 교육·환경·노동 현안까지 긴박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있는 가운데 그 시간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를 헤쳐나가기 위해 온 몸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다.

프레시안 전북취재본부 연말특집기획 <전북과 사람>은 상대적으로 주목은 받지 못했지만 모든 것이 촘촘히 엮여 있는 ‘지방권력의 기득권’ 구조 속에서 홀로 질문하고, 침묵을 거부하고, 불합리를 견뎌 온 이들의 활동상을 다시 불러내 본다. 때로는 고립되기도 하고 지역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 사회 정의와 상식, 존엄을 지키기 위해 '외롭지만 멈추지 않았던 이름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2025년, 전북을 살았던 사람들의 시간. 침묵 대신 질문을 선택했던 사람들의 한 해를 통해, 우리는 다시 지역 민주주의의 좌표를 확인하려 한다. <편집자주>


▲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교권전담변호사로 활동하던 당시 최성민 변호사. ⓒ프레시안 / 최성민 변호사

교사 곁에 서겠다고 선택한 변호사

형사고발과 민원, 여론의 압박 한가운데서

1년 8개월, 교권의 최전선을 버텨낸 기록

전북 최초 교권전담변호사 최성민의 시간


2024년과 2025년, 전북의 교실은 흔들렸다. 교육활동 침해가 일상처럼 번지고, 사소한 갈등조차 곧장 형사 고발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교사들은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 버텼다. 그 최전선에서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교라는 공동체에 드러난 균열을 온몸으로 받아낸 사람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최초의 교권전담변호사로 임용돼 1년 8개월 동안 수백 건의 교권 침해 사건을 마주했던 최성민 변호사다.

그는 지난해 여름 교육청을 떠나며 짧은 인사말을 남겼다.

“학생보호, 교사보호, 교육청보호. 그 원칙 하나만 붙잡고 목숨 걸고 일했습니다.”

과장이 아니었다. 그가 자리를 떠난 뒤 현장의 평가는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교사들은 “한 시대의 교권을 지탱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고, 전북교총과 전북교사노조가 동시에 감사패를 전달하는 보기 드문 장면도 연출됐다. 이념과 입장이 다른 조직들이 같은 이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은, 그가 서 있었던 자리가 어디였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지금 그는 군산에서 다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남긴 흔적은 여전히 전북 교권의 지층 속에 깊게 남아 있다. 무엇을 지켜냈고, 무엇을 끝내 제도화하지 못했는지-교육 현장은 아직도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 전북교육청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 개정 작업 중 최성민 전 교권전담변호사와 실무 관계자들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프레시안 / 최성민 변호사 제공


◇ “울었고, 싸웠고, 버텼습니다”… 1년 8개월의 시간

최성민 변호사가 지나온 1년 8개월은 말 그대로 ‘감정의 롤러코스터’였다. 그는 그 시간을 돌아보며 “두렵고 막막했던 순간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교사들이 안심하고 가르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지켜냈다는 안도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말했다.

출발은 단순했다. 서거석 전 교육감의 요청을 받고 “고향의 선생님들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전북으로 돌아왔다. 교사들에게 “뒤에 변호사가 있다”는 감각을 말이 아닌 제도로 남기고 싶었다. 부족했을지라도, 최소한의 안전망을 현장에 구축할 수 있었다는 점은 그에게 무엇보다 큰 의미였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우발적 사고 하나, 오해 하나로 교사가 형사 처벌의 문턱에 서는 구조 속에서 그는 늘 복합적인 압박을 감내해야 했다. 교사와 학부모, 수사기관과 여론, 노조의 시선이 동시에 얽힌 사건들 속에서 때로는 수사기관뿐 아니라 행정 내부로부터도 이의를 제기받았다.

그는 “거의 고립돼 있다는 느낌을 받은 순간들도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전북교육인권센터 동료들과 일부 간부들의 보호가 없었다면, 끝까지 버티기 어려웠을 시간이었다.

▲ 전북교육청 교권전담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현장 대응에 쫓겨 식사를 급히 해결하던 최성민 변호사의 모습. ⓒ프레시안 / 최성민 변호사 제공


◇ 티볼 사고 무혐의… “교육실습생도 버려질 수 없다”

2024년 전북의 한 중학교에서 발생한 티볼(T-ball) 수업 중 사고는 교권 논쟁의 방향을 바꾼 사건으로 남았다. 수업 중 사고로 학생이 다치자, 보호자 측은 교사와 함께 교육실습생까지 동시에 형사 고발했다. 교육 현장은 충격에 빠졌다. ‘사고’와 ‘범죄’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에서 최성민 변호사는 전국 최초로 교육실습생까지 포함한 형사 대응 지원 체계를 가동했다. 교육활동 보호라는 원칙 아래,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모두에게 필요한 보호 조치를 병행하면서도, 교사와 실습생을 법적 공백 속에 방치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결과는 ‘무혐의 불송치’였다. 교사와 실습생 모두 억울한 법적 굴레에서 벗어났고, 교육실습생 역시 보호받아야 할 교육 주체라는 인식이 처음으로 제도화된 사례로 남았다. 교육 현장에서는 “실습생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확인한 사건”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최 변호사는 이 사건을 이렇게 돌아봤다.

“교육은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활동입니다. 모든 것을 법으로만 해결하려 들면, 결국 모두가 상처만 남게 됩니다.”


◇ 이념을 넘은 감사패… “교권은 결국 학생의 권리”

전북교총과 전북교사노조가 동시에 감사패를 전달한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이념과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른 두 단체가 같은 인물에게 같은 평가를 내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최성민 변호사가 서 있었던 자리가 어디였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최 변호사는 공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았다. 그는 “교총과 교사노조가 함께해줬기에 가능한 성과였다”고 말했다. 그의 인식에서 교권은 결코 교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교권 침해는 곧 학생의 수업권 침해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교육 공동체 전체를 흔드는 문제라는 판단이 늘 그의 선택의 출발점이었다.

전북교육인권센터 유재복 교권보호관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주말도 반납하고, 경찰·검찰·법원을 오가며 뛰었어요. 힘든 선생님들에게는 정말 구세주 같은 존재였습니다.”

▲ 전북교육청 교권 보호 현장에서 함께 활동해온 관계자들이 최성민 전 교권전담변호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 최성민 변호사 제공


◇ “교권은 처벌이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질문

최성민 변호사가 끝까지 우려했던 것은 ‘사후 대응’에만 머무는 교권 보호 구조였다. 사건이 발생한 뒤 법으로 해결하는 방식은 이미 많은 피해를 남긴 이후라는 것이다. 그는 “교육은 교육으로 풀어야 한다”며 교권 문제 역시 처벌이 아니라 예방과 관계 회복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전북교육인권센터가 추진해 온 학부모·학생·교사가 함께하는 교육활동 보호 예방 교육도 같은 맥락에 있다. 날카로운 법적 대립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 그것이 교권 문제의 본질적인 해법이라는 인식이었다.

“누구도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교사도, 학부모도 모두 각자의 절박함 속에서 움직였다고 봤다. 그래서 편을 가르기보다는, 모두가 교육을 지키는 동지로 남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전북 교육의 가장 중요한 행위자는 어느 한쪽이 아니라, 교사·학생·학부모 모두였다.


◇ 전북에 남긴 질문

최성민 변호사는 전북 교육이 다시 세워야 할 출발점으로 ‘신뢰’를 꼽는다. 교권 논쟁이 제도와 처벌의 언어로만 소비되는 현실에 대해 그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교육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위에 서야 합니다. 제도와 법률도 결국은 존중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퇴임을 앞두고 남긴 마지막 말 역시 현장을 향해 있었다.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교사가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누군가는 분명히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25년, 전북이 잃을 뻔했던 한 사람의 기록. 그리고 교권 위기의 한복판에서도 ‘인간의 얼굴을 한 행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증명한 이름. 최성민 변호사가 남긴 질문은 지금도 전북의 교실을 향해 조용히 되묻고 있다.

▲ 전북교육청 교권전담변호사 퇴임 이후에도 군산에서 변호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최성민 변호사를 교육청 관계자와 교사들이 찾아 현장의 고민을 나누고 있다. ⓒ프레시안 / 최성민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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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수

전북취재본부 양승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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