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영구적 확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담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새 국가안보전략(NSS)에 대해 러시아가 "우리 비전에 부합"한다며 긍정적 입장을 내놨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구실 중 하나로 나토 확장을 꼽은 바 있다.
7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 크렘린(대통령궁) 대변인이 미국의 새 NSS에 대한 의견을 묻는 국영 방송 소속 파벨 자루빈 기자의 질문에 "많은 면에서 우리 비전과 부합한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새 NSS에 명시된 나토의 항구적 확장에 대한 인식 "종식"에 대해선 고무적이라고 밝혔다.
통신은 러시아가 냉전 시절 적이었던 미국의 안보전략 문서에 이러한 극찬을 보낸 것은 처음이며 미·러가 세계 정치 토대에 대해 이 정도로 공개적 합의를 보이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라고 분석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같은 날 러 국영 <타스> 통신에 미 NSS 관련해 "전반적으로 이전 행정부 접근과 확실히 대조되는 메시지"라며 "긍정적 조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통신은 새 NSS가 러시아를 직접적 위협으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타스>에 따르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 국가안보회의 부의장도 미 NSS에 "우리가 1년 넘게 말해 온 내용이 예상치 못하게 반영됐다"며 "미국이 끝없는 무의미한 제재를 가하기보다 안보 구조를 논의할 준비가 됐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제 대화의 창이 열렸다"고 덧붙였다.
백악관은 5일 공개한 '2025년 미국 국가안보전략'에서 러시아를 직접적 위협으로 언급하지 않고 "많은 유럽인들이 러시아를 실존적 위협으로 여긴다" 수준으로 설명했다. 이어 "유럽과 러시아 간 관계 관리를 위해 미국의 외교적 개입이 필요하다"며 미국의 위치를 양자 사이 중재국으로 설정하고 이는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걸친 전략적 안정 재확립과 러시아와 유럽국들 간 갈등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새 NSS는 나토 관련해선 "나토가 영구히 확장되는 동맹이라는 인식을 종식"시키겠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구실 중 하나로 나토의 동진을 꼽았고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에서도 나토 추가 확장이 쟁점 중 하나인 것으로 보도되는 것을 감안하면, 현 시점에서 러시아의 구미에 들어 맞는 선언으로 볼 수 있다.
새 NSS의 러시아 및 나토, 유럽 관련 내용은 바이든 정부 때 공개된 2022년 미 국가안보전략과 크게 대비된다. 2022년 NSS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 체계에 대한 즉각적 위협", "유럽 지역 안보 질서에 대한 즉각적이고 진행 중 위협" 등으로 묘사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항하는 나토 및 유럽의 결집을 강조하고 러시아 코앞의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신규 가입한 것을 환영했다.
반면 트럼프 정부 NSS는 유럽에 대해 "문명 소멸"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새 NSS는 유럽이 "군사 지출 부족과 경제 침체"에 더해 "더 깊은 진짜 문제"를 안고 있다며 "유럽연합(EU) 및 다른 초국적 기구가 정치적 자유와 주권을 훼손하고, 대륙을 변화시키고 갈등을 유발하는 이민 정책·표현의 자유 검열" 등을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럽이 "문명 소멸이라는 실질적이고 더 엄중한 전망"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관련해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국제안보분야 선임연구원 에밀리 하딩은 "이 대목은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들조차 멈칫하게 할 것"이라며 "유럽의 현 상황에 대해 오판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극우 정치 세력 주장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푸틴(블라디미르 푸틴 러 대통령)에겐 달콤한 음악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미국이 종전 관련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와 번갈아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뚜렷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AP> 통신은 7일 트럼프 대통령이 취재진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몇 시간 전 제안을 아직 읽지 않은 것에 좀 실망했다"며 "러시아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젤렌스키가 괜찮은진 모르겠다. 그(젤렌스키 대통령)의 국민들이 좋아함에도, 그는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날까지 3일간 벌인 미-우크라 협상에서 가시적 성과가 도출되지 않은 것을 젤렌스키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읽지 않았다는 제안이 기논의 중인 제안인지 새 제안인지는 불분명하다.
영토 문제가 타협이 가장 어려운 분야로 꼽히는 가운데 지난주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를 "무력"으로라도 점령하겠다고 밝혀 영토 문제에서 양보할 뜻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