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질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찾는 논의는 빈약한 편이다. 기업과 경제연구소와 경제신문은 항상 기업 지원과 규제 완화라는 답을 제시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그런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경제뉴스N시선'의 안진이 the삶 대표가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3~4개월 동안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번에는 가짜 3.3 고용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하은성 노무사(샛별 노무사사무소)와 진재연 엔딩크레딧 집행위원장, 그리고 가짜 3.3 피해자인 박지우님과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가짜 3.3, 5인 미만 위장의 현실
안진이(이하 안) : '가짜 3.3'이란 무엇인가요? 사업주는 어떤 비용 및 책임을 회피하고, 노동자는 어떤 피해를 입나요?
하은성(이하 하) :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위장했을 때 1년 간 사업주가 돈을 얼마나 아낄 수 있느냐를 계산해봤어요. 단순화해서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일하고 일당이 10만 원이라고 치겠습니다. 근로자로 고용할 때와 개인사업자로 위장할 때 차이가 가장 큰 항목은 주휴수당이에요. 1년이 52주니까 만근한다고 치면 10만 원에 52를 곱해서 520만 원의 주휴수당이 붙죠. 다음으로 4대보험료가 보통 임금의 10% 정도라고 계산하면 300만 원 정도입니다. 퇴직금은 30일치 일당으로 단순 계산하면 300만 원, 연차 유급휴가가 110~150만 원. 여기까지만 해도 1000만 원이 훌쩍 넘어요. 여기에 유급휴일이 평균 15일 정도니까 150만 원. 이 모든 걸 합하면 1년간 1400만 원 내외가 됩니다.
이건 월 260만 원 정도 받는 노동자 기준이고요, 월 400만 원 넘게 받는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위장하면 사업주의 부당한 이득은 더 커집니다. 1년 365일 중에 3분의 1 정도를 공짜로 고용할 수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사업주가 노동자 고용을 회피해서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은 임대료나 원자재 비용 지출과 비교해도 절대 작지 않아요.
안 : 노동자를 여러 명 고용하면 몇 배가 되겠네요.
하 : 업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노동자가 늘어나면 액수가 더 커집니다. 수십, 수백 명을 개인사업자로 고용하는 사업체도 있기 때문에 절감하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요. 산술급수에서 기하급수로 바뀌는 변곡점이 5명이에요. 위장 프리랜서가 4명이라면 사업주가 절감하는 비용은 4배인데, 5명부터는 5배를 훌쩍 넘어선다는 거죠. 우리 법이 5인 미만 사업장과 5인 이상 사업장을 차별하고 있어서 그렇죠. 그래서 가짜 3.3 고용은 5인 미만 사업장 위장과도 연결됩니다.
하나의 사업체에 개인사업자와 근로자가 혼재된 경우가 있거든요. 예를 들면 방송사에서 조연출 정도만 고용보험에 가입시키고 PD와 작가는 안 해줘서, 실제로는 15~20명이 북적북적 일하는데 4대보험 기준으로는 5인 미만 사업장을 만들었다고 해볼까요? 그러면 근로계약을 한 사람들도 연차 유급휴가나 가산수당을 못 받아요. 특히 가산수당의 경우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그냥 일한 시간만 따져서 주면 되는데 5인부터는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하면 최대 2.5배잖아요. 그런데 방송이나 간병 쪽은 연장근로 수당만 해도 월 100만 원이 넘어갈 수 있거든요. 5인 미만으로 위장해서 그걸 다 없애는 겁니다.
안 : 국세통계에 따르면 사업소득세 원천징수 대상자가 862만 명이라고 하는데, 이중 다수가 위장 프리랜서라고 볼 수 있나요?
하 : 업종 코드를 보면 바둑기사, 꽂꽂이 강사 등으로 세분화가 되어 있는데요, 862만 명 중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기타자영업'이 약 450만 명이에요. 그 450만 명 중 99.9%가 사업자 등록증이 없어요.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95%는 독자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정말 독립적인 사업자라면 자기가 일하는 회사 외에 다른 데도 영업을 하고, 가격 결정권도 행사할 수 있어야 해요. 또 제3자를 고용해서 자기 일을 맡길 수 있어야 해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시간을 서로 메워주는 것이나, 택배노동자가 하루 휴가를 쓰려고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 말고요. 기업가적으로 이윤 추구를 위해 제3자를 고용하는지 여부를 봐야죠. 지금 '특수고용'이나 '프리랜서'라고 불리는 사람들 다수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아요. 이들은 스페인이나 프랑스의 판단 기준을 적용하면 다 노동자입니다.
안 : 5인 미만 위장으로 의심되는 업체들의 통계를 업종별, 지역별로 분석하셨지요? 어떤 업종, 지역에서 심각한지 궁금하네요.
하 : 고용보험상으로는 5인 미만인데 사업소득자를 합하면 5인 이상이 되는 사업장을 지역별로 보면, 1위가 서울이고 2위가 인천입니다. 원래 경기가 2위였는데 인천이 역전했지요. 3위가 경기, 4위가 노동부가 위치한 세종. 그리고 모든 지역에서 그래프가 우상향을 그리고 있습니다. 2021년 국정감사에서 5인 미만 위장 사업장 잡아내겠다고 하고 홍보까지 했는데도 위장 의심 사업장이 줄어들지 않았어요. 왜 그럴까요? 적발되더라도 위장 사업주는 원래 노동자에게 지급했어야 할 돈만 지급하면 되거든요. 위장 고용을 10명 했다고 치면 그걸 신고까지 하는 사람은 2~3명도 될까 말까고, 신고했다고 다 인정이 되지도 않아요.
업종별 분석에서는 5인 미만 위장 의심 사업장이 아웃소싱, 물류업, 음식점업, 소매업 같은 곳에서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특히 프리랜서가 있기 어려운 음식점업이나 물류업에서 프리랜서 계약이 많다는 것은 누가 봐도 위장이죠. 택배 상하차를 하러 가서 '저는 무거운 건 안 하고 가벼운 것 위주로 할래요'라고 하지 않잖아요. 백화점 위탁 판매원의 경우도 매대 결정권이 없으니 실질적인 사업자라고 보기 어렵고요.
안 : 가짜 3.3 고용과 사업장 쪼개기를 같이 하는 경우가 있는 거죠?
하 : 네. 사업장 쪼개기는 사업장을 여러 개로 나눠 등록해서 각각이 5인 미만이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실제로는 사업장을 쪼개려면 일이 많아집니다. 세금계산서도 각각 발급해야 하고, 인사관리도 따로 해야 하고, 다른 회사처럼 보이기 위해 채용공고도 따로 내야죠. 그래서 사업장 쪼개기보다는 '무늬만 프리랜서' 고용을 통한 5인 미만 위장이 훨씬 많아요. 그래도 무늬만 프리랜서 고용을 통한 위장은 통계로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는데, 사업장 쪼개기는 통계조차 없어요. 세무서에서 일일이 실사하지도 않고요.
요즘은 부서 분리형이 늘어나요. 회사 내에 영업1팀과 영업2팀이 있었는데 영업1팀을 사업체로 등록해서 쪼개는 겁니다.
노동자인 줄 알고 입사했는데 알고 보니 가짜 3.3
안 : 머니투데이가 사업장 쪼개기 사례였죠? 가짜 3.3 고용의 피해자로서 증언하신 박지우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채용공고를 본 순간부터 업무를 할당받은 과정, 문제를 인지하신 시점 등이 궁금합니다.
박지우(이하 '박') : 저는 기자와 에디터로 일한 경력이 있었어요. 제가 본 채용공고는 무슨 사업본부나 무슨 팀이라는 말이 전혀 없이 그냥 '머니투데이 에디터'라고 되어 있었고요. 면접 보고 채용될 때까지도 그게 쪼개기 사업장인 줄 몰랐어요. 맨 처음에는 '머니투데이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머니투데이에 기자로 이름이 나갈 것이다'라고 들었어요. '각종 영업을 한다'는 말도 있어서, 기자가 영업을 할 게 뭐가 있나 싶었죠.
어쨌든 저는 머니투데이라는 이름을 보고 갔던 겁니다. 채용이 되고 나서 계약서를 쓰는데 용역계약서라서 이상하긴 했어요. 회사에서는 이름만 용역계약서지 실제 일은 계약직이나 정규직 기자들과 똑같이 할 거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야 4대 보험료가 안 빠져나간다, 원하면 4대보험에 가입할 수도 있는데 다른 통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여기 있는 사람들 다 3.3% 세금 내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어요.
근무 일정이 조금 복잡했어요. 제가 처음에는 4일 출근하고 1일은 재택근무를 하면서 기본급을 받았는데, 재택하는 날은 일이 거의 없으니 무급이라는 거예요. 그것도 이상했지만, 당시에 취업도 어려운데 또다시 이직 준비를 하기가 부담스럽기도 해서 일단 일을 계속했습니다.
일하면서 저에게 맡겨진 '영업'의 실체를 알게 되었어요. 머니투데이 기사 형식으로 제품을 홍보해준다고 제안해서 광고비를 받아내는 일이더라고요. 나중에는 저에게 비서 일을 시켰는데 그것도 이상했고, 온종일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급여가 너무 적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팀장에게 이야기했더니 '이제는 재택근무를 안 시키고 프리랜서니까 자유롭게 일하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도 않아서 제가 그만두게 되었어요.
안 : 그 후에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신 과정은 어땠나요?
박 : 퇴사하면서 제가 누락된 급여를 달라고 요구했거든요. 재택근무로 처리된 시간 동안 무급으로 일했는데 사실은 출장도 가고 사무실 나가서 일하기도 하고 회의도 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달라고 했어요. 회사에서는 프리랜서라서 줄 수 없다고 했고, 그런 과정에서 제가 노동청에 가게 된 겁니다.
처음 노동청에 갔더니 근로감독관은 회의적인 태도로, 어차피 신고해봤자 안 된다고 말했어요.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하지 시간 아깝게 이런 신고를 왜 하느냐면서 오히려 저를 탓하기도 했고요.
안 : 노동청에서 신고가 처리되는 데도 오래 걸렸다면서요?
박 : 네. 6개월 넘게 걸렸고,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을 제가 전혀 알 수 없었어요. 계속 전화해서 물어봤는데, 근로감독관은 '혐의없음'으로 나올 것 같다고 대답하더라고요.
저는 운이 안 좋아서 감독관을 잘못 만났다고 판단하고, 제가 프리랜서가 아니라 근로자였다고 인정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문의했습니다. 이론상으로는 전속성 등의 기준에 다 부합하니 제가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버스 타고 출퇴근했던 기록, 사무실에서 일했던 CCTV 기록, 출퇴근하면서 연락했던 내역을 다 보냈지요.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에서는 '하청업체에서 일하신 것 같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곳이 머니투데이가 아니고 머니투데이 기획사업본부라는 다른 사업장이라는 사실을요. 보통 기획사업본부라고 하면 사람들은 '아, 이 부서에서 채용공고를 냈나 보다'라고 생각하지 그게 다른 회사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잖아요. 다른 회사라고 생각했다면 제가 지원하지도 않았겠지요.
그리고 머니투데이 이름으로 명함도 나왔고, 제가 쓴 기사들이 머니투데이 지면에 다 실렸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게 별개의 사업장이라고 생각을 못 했죠. 그게 그렇게 입증하기 어려울 줄은 몰랐어요. 하청업체라는 말을 듣고 너무 황당해서 근로복지공단에 재신청을 했는데 그때도 인정을 못 받았어요. 그래서 노동청에 다시 갔지요.
안 : 여기까지 대리인 없이 혼자 진행하신 거라서 더 힘드셨겠네요.
박 : 솔직히 말하면 제가 노동법 공부를 조금 했어요. 그래서 자료를 거의 다 챙겨서 냈는데도 감독관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귀찮아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권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노동청에서 노동자 편을 안 들어주면 어떡하나 싶었어요. 경찰에 신고하려고 해도, 노동청에서 임금체불 확인서를 받아오라고 얘기하니까요.
근로복지공단은 '우리는 노동청 판단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산하 기관도 아닌데 왜 종속되느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원래 그렇대요. 저 혼자였는데 너무 막막하더라고요.
안 : 마침 노동법도 공부하고 계셨고, 또 노무사님을 만났고, 우연도 작용하긴 했네요.
하 : 보통은 노동청에서 끝나죠. 노동청에 가는 사람도 20~30%일 겁니다. 먹고살기 바쁘니까요. 그리고 노동청에 한번 갔을 때 이런 식으로 문전박대를 당하고 나면 다음번에는 안 가겠죠. 특히 청년 시절에 박대를 당한 기억이 생기면 나중에 30대, 40대에 억울한 일을 당하고 노동청에 갈까요? 그냥 포기하거나, 노동청을 안 거치고 소송을 해버리겠죠. 소송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소수입니다. 그러니까 사업주들의 편법이 더 득세하는 거고요.
박 : 신고를 하면서 여러 사례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더 포기할 수 없었어요. 제가 프리랜서가 아니고 근로자였던 것은 너무 명백했고, 이곳은 대기업의 이름을 빌려서 만든 가짜 사업장이었기 때문에 저는 최악의 경우 법원까지 가더라도, 돈을 못 받더라도 그걸 입증하고 싶었어요. 제가 그렇게 안 하면 계속 같은 피해자가 나올 테니까요.
안 : 모든 걸 노동자가 입증해야 하는 것 자체가 불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 : 미국 몇몇 주에서 제시됐던 ABC 테스트의 경우 독립계약자로 판정되기 위한 3가지 요건을 지정하고, 모든 걸 사용자가 입증하도록 했어요. 이런 식으로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 등을 일단 노동자로 추정하고, 정말 실질이 사업자라면 사용자가 그걸 입증하게 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사용자에게 '이 사람이 정말 노동자가 아니라면 당신이 자료를 다 만들어서 제출하라'고 하면 사용자의 업무량이 늘어나잖아요. 귀찮아서라도 위장을 덜 하겠죠. 월 200~300만 원 주는 경우라면 그냥 근로자로 계약하는 게 낫다고 판단할 겁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정작용이 이뤄지고, 위장 고용의 규모가 줄어들고, 그러면 노동청에서 다투는 사건도 줄어드는 선순환이 있겠죠.
비정규직 백화점, 방송국
안 : 방송계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방송사에서는 하나의 현장에서 정규직도 있고 계약직, 임시직 같은 형태와 프리랜서가 함께 일하는 건가요?
진재연(이하 '진') : 네. 하나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계약직과 프리랜서와 파견 등이 다 섞여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예를 들면 조연출로 일하시는 분들은 계약직이나 프리랜서인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서로서로 상대가 프리랜서인지 계약직인지 정규직인지도 대부분 아는 상태에서 같이 일을 합니다. 다만 PD 중에는 정규직도 있고 프리랜서도 있는데 그 PD가 정규직인지 프리랜서인지는 사람들이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몇 년 전 CJB 청주방송 이재학 PD가 돌아가시고 나서 들었는데, CJB 청주방송 프리랜서들도 3~4년 동안 이재학 PD가 프리랜서인 줄 몰랐대요. 정규직이랑 같이 일하고, 정규직처럼 일하고, 또 프리랜서들한테 지시도 했으니 당연히 정규직인 줄 알았다는 거죠.
조연출의 경우 PD와 함께 촬영하러 다니고, 편집도 하고, 리서치도 하고, 전화도 돌리고, 때로는 운전도 해요. 그 모든 일을 '눈치껏' 하기도 하지만 최종적인 판단이나 지시는 PD나 상급자들이 주로 한다고 합니다.
안 : 계약서는 어떻게 작성하나요?
진 : 다 프리랜서 계약이라고 볼 수 있죠. 이름은 진짜 다양해요. 용역계약서, 작가들 같은 경우는 집필계약서…. 그런데 근로기준법 적용을 못 받는다는 점에서는 다 똑같아요. 그리고 계약서를 쓰는 상대, 즉 갑이 누구냐를 보면 상급자인 PD와 계약하기도 하고 해당 부서의 부장이나 팀장, 아니면 행정 부서와 계약하는 형식을 취하기도 해요. 방송사 사장과 계약서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다툼이 생기면 회사에서는 '그건 회사 차원의 판단이 아니라 그 부서의 일'이라는 논리를 펴기도 해요.
안 : 실제로는 하나도 자유롭지 않고 빡빡한 일정에 맞춰서 통제를 받으며 일하는데 무늬만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하니까 문제인 거죠. 방송계는 언제부터, 어떤 과정으로 무늬만 프리랜서가 넘쳐나게 되었을까요?
진 : 방송 현장의 노동 문제는 한국 사회 전반의 노동 유연화나 노동 정책이 변화한 과정과 연계되는 것 같아요. IMF 때 노동시장 유연화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그리고 2007년 기간제법 제정 이후 단기 계약이 늘어났잖아요. 또 하나, 방송 분야에서 중요한 계기로 1991년에 도입된 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의무편성 제도가 있어요. 지상파 중심의 독점 구조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이후로 외주제작사가 아주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 무렵부터 방송 현장이 프로젝트형 노동시장으로 성격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해요. 영화, 방송, 건설이 다 비슷한데, 필요한 인력을 단기적으로 계약해서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10년, 20년 일해도 근속도 인정 안 되고요. 프리랜서 계약을 하더라도 2년 되기 전에 사람을 자르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요.
안 : 방송사 근로감독이 몇 번 있었는데 어땠나요?
진 : 2021년에 지상파 방송작가 근로감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로감독을 해서 실제로 방송작가들의 노동조건이 좋아졌느냐고 묻는다면, 그게 아닌 측면이 있어요. 당시 지상파 방송사들은 무늬만 프리랜서인 사람들을 정규직화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2년이 안 된 방송작가를 전부 잘라버렸어요. 혹은 정규직화를 한다면서 제대로 된 정규직이 아니라 방송지원직 같은 이름의 직군을 따로 만들었고요. 그래서 근로감독을 한번 하고 끝낼 게 아니고 실제로 노동자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게 해야 합니다.
최근 고 오요안나님 관련해서도 노동부는 '괴롭힘은 있었지만 노동자가 아니다'라면서 사실상 MBC에게 힘을 실어줬어요. 이해할 수 없는 결론이었어요. 그래서 38일 동안 MBC 앞에서 천막농성을 했고, 오요안나가 MBC의 노동자였다는 것을 MBC 스스로 인정하게 하고 대국민 사과까지 하게 만드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 이후 정부는 KBS나 SBS, 종편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에 들어갔고, 12월에 결과가 발표될 예정입니다.
하 : 근로감독을 하는 것에 그치면 안 되고, 그 이후에 감독 결과를 제대로 이행하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무늬만 프리랜서' 고용을 하지 말라고 했더니 방송사들은 '이제부터 진짜 프리랜서로 대우해 주겠다'면서 방송 노동자들에게 사업자 등록증을 만들어오라고 해요. 위장의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카톡 지시를 구두로 대체하고, 기본급을 주면 근로자라는 근거가 될 수 있으니 기본급을 없앱니다. 그런 게 근로감독의 취지는 아니었을 텐데 거꾸로 된 거죠.
안 : 근로감독 후도 문제네요. 방송사들이 자정작용을 하려는 움직임은 없나요?
진 : 방송 노동자 개개인이 법적, 행정적으로 근로자성을 인정받는 사례가 계속 늘어나고는 있어요. 문제는 방송사가 그런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소송을 하거나, 문제 제기한 사람들을 현장에서 고립시키거나 괴롭힌다는 거죠. 구조 자체를 변화시킬 의지가 방송사들에게 없어 보여요.
안 : 방송 외주제작사 쪽은 어떤가요?
진 : KBS의 '생생정보'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처럼 월화수목금 다 하는 방송도 월요일 제작사, 화요일 제작사 이런 식으로 나눠서 제작을 맡깁니다. 생생정보 외주제작사 사례를 보면, 실제로 일하는 사람은 10명인데 조연출 2명만 4대보험에 가입시키고 나머지는 다 사업자 계약을 해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만들었어요. 이 조연출이 근로자로 인정이 됐지만, 나머지 작가나 PD들의 근로자성까지 이분이 입증하기는 정말 어렵죠. 그게 인정 안 되니까 회사는 여전히 5인 미만이라고 주장하고요.
방송사에 있는 작가들은 근로계약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계약서는 쓰는데, 외주제작사에서는 여전히 계약서도 안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일단 계약서를 쓰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안 : 계약서조차 안 쓴다는 건 심각하네요. 방송 인재들을 제대로 대우해야 더 좋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진 : 방송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그게 꿈이었다고 말해요.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이럴 줄 몰랐다고 말하죠. 버티다, 버티다 그만두기도 하고요. 파견으로 일하다 2년 되기 전에 계약 해지당하기를 반복하기도 해요.
박 : 제 주변에도 방송업계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원래는 사람들이 방송업계에 프리랜서 고용이 심각하다는 것을 잘 몰랐고 관심도 적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오요안나님 사건을 거치면서 화제가 되는 것 같아요. 방송업계에서 일하는 분들도 원래 관행이 그렇다고 포기하지 말고,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 더 많은 사람이 목소리 내면 좋겠습니다.
진 :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시대인데, 우리가 보는 무대의 뒤편에서 실제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노동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었다는 보도가 나와야만 관심이 모이는데, 그 사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계속 쌓여온 구조의 문제입니다.
방송사들이 사회 정의를 말하고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노동 문제를 다루지만, 방송사 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외면하고 있어요. 방송사들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사회적 압박이 중요해요.
일터 권리보장 기본법으로 약자를 보호한다고요?
안 : 마지막으로, 이재명 정부가 일터 권리보장 기본법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해서 하실 말씀이 있다면요?
진 : 오늘 이야기한 불법적, 편법적인 위장 프리랜서 계약을 근절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리고 개개인이 문제제기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이 집단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조직과 시스템이 필요해요. 노동조합도 있고요, 엔딩크레딧에 연락을 주셔도 됩니다. 시청자들도 콘텐츠를 향유하는 입장에서 같이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일터 권리보장 기본법에 대해서는, 실질이 노동자인 사람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거나 노동법을 적용하는 방향이 아니라 제3의 차별적인 지대를 만들어낼 것이 우려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고요.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들이 노동자로서 권리를 온전히 누리게 하는 방향으로 논의되면 좋겠어요.
하 : 일터 권리보장 기본법을 추진하는 쪽에서는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를 배제하는 게 아니라 또 하나의 커다란 우산을 씌우는 것처럼 폭넓은 보호장치를 마련한다고 이야기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실패 사례가 너무 많습니다. 해외 사례를 봐도 이런 입법의 결과가 제3지대를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국내의 파견법이나 기간제법도 명칭은 '보호법'인데 원래 말했던 취지대로 안 됐잖아요.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좋아지려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법원까지 가야 어떤 사람이 근로자인지 아닌지를 판정할 수 있다는 건 너무 소모적이에요. 근로자성 판단 기준도 너무 복잡할 필요가 없고요. 계약 형태나 직업과 무관하게 임금 목적으로 일하면 다 노동자로 추정하고 시작하면 좋겠어요. 진짜 프리랜서라 말할 수 있는 자영업자들도 고용보험으로 실업급여를 받고, 거래처의 갑질을 막을 수 있어야 하고요. 그런데 지금 법안을 만드는 방향은 그게 아닌 것 같아요.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 중 대부분이 지금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판단 기준으로도 충분히 노동자로 인정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행 근로기준법 제2조는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근로자로 정의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법원에서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너무 복잡하면서도 현재의 노동관계에 맞지 않아요.
따라서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프리랜서로 위장된 노동자에게 원래대로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사업주의 의도적인 노동자 오분류를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 다음 진짜 프리랜서에 대한 보호 체계를 논의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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