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DC에서 주방위군 2명이 아프가니스탄 출신 용의자에 총격 당한 것을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제3세계 국가로부터의 이민 영구 중단을 선언하고 '우려국' 출신자에 대한 영주권 전면 재조사를 지시하는 등 반이민 강경책 고삐를 당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추수감사절을 맞아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미군 장병들과 화상 통화하며 전날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에서 근무 중 총에 맞은 주방위군 새라 벡스트롬(20)이 "방금 숨졌다"고 밝혔다. 그는 함께 총격을 받은 동료 주방위군 앤드루 울프(24) 또한 위독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어 이들을 쏜 용의자를 "괴물(monster)"로 부르며 그 또한 "심각한 상태지만 그에 대해 말조차 하고 싶지 않다"고 불쾌감을 표명했다.
웨스트버지니아 주방위군 소속인 총격 피해자들은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한 트럼프 대통령 명령으로 지난 8월 워싱턴DC에 배치됐다. 약 2000명의 주방위군이 워싱턴DC에서 임무 수행 중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병력 500명 추가 투입을 지시했다.
<AP> 통신을 보면 당국은 용의자를 아프간 출신 라마눌라 라칸왈(29)로 식별했다. 존 래트클리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성명을 통해 라칸왈이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CIA와 협력한 "파트너 부대의 일원"이었다고 밝혔다.
라칸왈의 사촌이라고 밝힌 아프간 동부 코스트주 주민은 <AP>에 라칸왈이 칸다하르에서 CIA 지원 준군사 조직 '제로 유닛'에 속해 활동했다고 전했다. 칸다하르는 탈레반 중심지에 위치해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 뒤 활발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CIA가 이 지역에서 통역, 최전선 전투 등에서 아프간 현지인에 의존했다고 통신은 설명했다.
최전선 전투에 투입되기도 했던 제로 유닛은 2021년 미군이 철수할 때 카불 국제공항 주변을 경호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인권단체는 이러한 준군사 조직들이 아프간에서 인권 침해를 저질렀다고 비판한 바 있다.
라칸왈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뒤 미군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 받아 2021년 9월 미국에 입국했다. '동맹 환영 작전'으로 불린 바이든 정부의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약 7만6000명가량의 아프간인이 미국으로 들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장병들과 통화에서 용의자가 "아프간 국적자"로 바이든 정부가 아프간인들을 대거 입국시킬 때 "심사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로이터> 통신은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동맹 환영 작전' 프로그램은 미 대테러 기관 및 정보 기관을 포함한 심사 절차를 거쳐 설계됐다고 지적했다.
라칸왈의 입국은 바이든 정부 때지만 망명 승인이 난 것은 트럼프 정부 아래 올해 4월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이 사안에 정통한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도 입수한 미 정부 문서를 통해 용의자가 올해 트럼프 정부 집권 뒤 망명을 허가 받았다고 전했다. 27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에 이번 정부에서 용의자에 대한 망명 신청이 허가됐냐는 질문을 받고 "망명에 관한 한, 일단 그들이 들어오면 내보내기 매우 어렵다"며 즉답을 회피했다. 이어 "하지만 우린 이제 그들을 모두 내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반이민 강경책을 쏟아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제3세계 국가로부터의 이민을 영구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제3세계 국가'가 어느 나라들을 의미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어 "비시민에 대한 모든 연방 혜택과 보조금을 중단"하고 "국내 평화를 해치는 이민자의 시민권을 박탈"하며 "공공에 부담이 되거나 안보에 위험이 되거나 서구 문명과 양립할 수 없는 외국 국적자들을 추방"하겠다고 했다.
앞서 조세프 에들로 미 이민국(USCIS)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따라 "모든 우려 국가(country of concern) 출신 외국인의 영주권에 대한 철저한 전면 재조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우려 국가'가 어느 국가인지 밝히진 않았다. 미 CNN 방송은 관련해 질문하자 이민국이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 선언에 명시된 입국 제한 19개 국가 목록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이들 국가엔 아프간, 이란, 쿠바, 베네수엘라 등이 포함돼 있다.
미 이민국은 26일 아프간 국적자에 대한 이민 신청 절차를 즉각적으로 무기한 중단했다.
아프간 전쟁 동안 미군을 도운 아프간인들의 미국 정착을 돕는 단체 '아프간이벡(#AfghanEvac)'은 26일 성명을 통해 총격 사건에 애도를 표하며 한 사람의 행동을 빌미로 "아프간 공동체를 악마화"해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이 단체 창립자 숀 밴다이버는 27일 <AP>에 "한 정신 나간 남성 탓에 사람들이 외국인 혐오에 빠지고 있다. 그는 모든 아프간인을 대표하는 게 아니다"라고 우려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