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대 튜링반·칭화대 야오반, '중국 천재' 신화를 넘어서려면…

[기고] '천재' 서사, 국가가 호출한 꿈과 침묵의 구조

한국에서 중국을 둘러싼 감정은 오랫동안 이중적이었다. 거리의 정서는 '반중'인데, 국가 정책이나 교육담론에서는 때때로 '친중적 동경'이 나타난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기득권 엘리트는 중국의 과학기술 및 교육에 대해 유난히 큰 관심을 보였다. 반중정서를 부추기는 정치적 언설과는 전혀 다른 면모다. 그들은 중국 칭화대와 베이징대의 영재반(야오반·튜링반)을 '21세기 국가경쟁력의 모델'로 호명하고, 극소수의 천재를 배출하는 메커니즘을 집요하게 분석하며, 한국이 이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식의 위기 담론을 반복한다.

이 모순된 태도는 동아시아 근대가 구축해온 '타자에 대한 열등감과 우월감'이 동시에 작동하는 방식과 정확히 닮아 있다. 한국의 기득권 엘리트들은 중국을 경계하면서도, 동시에 중국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려 한다. 중국을 거울로 삼아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야오반·튜링반이라는 천재 서사는 그 거울 속에서 가장 강력한 상징으로 기능한다.

1. 숫자로 구성된 서사: 1300만 중 50명이라는 주술

중국 영재교육을 다룬 기사에는 유난히 숫자가 많이 노출된다. 칭화대 영재반 야오반을 설명하며 "1300만 명 중 8000명, 다시 그 중 50명." 이 숫자는 교육 제도의 정밀함을 드러내는 통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술적 서사다. 이 숫자는 '선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배제'를 통해 구성된 서사다. 매년 대학입시에 응시하는 1300만 명의 중국 청소년이라는 거대한 집합, 그 중 50명이라는 미세한 점 하나. 이때 '1300만 명의 바깥'에 존재하는 구체적 삶들—농촌에서 도시로 떠난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들, 과밀학급에서 기초수업을 듣는 학생들, 시험에서 한 번 실패하면 평생이 바뀌는 청소년들—은 이야기에서 삭제된다.

숫자는 이야기의 응시점을 좁힌다. 국가가 호출한 50명을 중심에 놓고, 나머지 1299만 9950명을 주변부로 밀어낸다. 이것이 바로 동아시아 근대의 천재 서사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극소수만 '국가의 미래'로 호명되고, 대다수는 침묵 속으로 사라진다.

2. 성공의 배경을 지우는 장치: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야오반 출신의 성공담은 보통 기술영웅 서사로 제시된다. 그러나 기술영웅 서사가 가지는 특징은 언제나 동일하다.

성공의 구조적 배경은 지워지고, 개인의 천재성만 남는다.

메그비의 안면인식 기술은 중국 감시체제와 분리될 수 없다. 포니AI의 자율주행 실험은 '규제면제 구역'이라는 국가적 실험장에서 가능했다. 문샷AI의 대형모델은 국가전략산업 정책의 한 축으로 개발되었다.

이 배경을 제거한 채 '천재들의 창업'만을 남겨두면, 기술의 정치성은 사라지며, 권력의 본질도 가려진다. 동아시아의 천재 서사는 바로 이렇게 작동한다. 국가가 주도한 기술의 정치적 성격은 보이지 않게 만들고, 그 안에서 활동한 소수의 개인은 신화적 존재로 부상한다.

3. 한국의 기이한 태도: 반중정서와 친중 경쟁주의

한국 기득권 엘리트의 태도는 특히 흥미롭다. 대중에게는 "중국은 위험하다", 정책 담론에서는 "중국은 뛰어나고, 우리는 뒤처졌다".

이 두 언설은 모순되지만, 사실 서로를 강화한다. '반중정서'는 외부를 위험한 타자로 구성하고, '친중 경쟁주의'는 내부를 불충분한 존재로 구성한다.

이 두 결합은 한국 사회에 '우리는 충분하지 않다'는 감정, '누군가를 따라잡아야만 한다'는 압박을 만들어내며, 국가주의적 동원과 결합한다.

동아시아 근대는 늘 '타자를 통해 자신을 정의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조선은 중국을 통해 자신을 정의했고,

일본은 서구를 통해 자신을 정의했으며, 한국은 일본과 중국을 거울삼아 자신을 설명했다. 오늘의 중국 영재교육 열풍도 이 거울의 반복된 작동 중 하나다.

4. 경쟁이라는 삶의 형식

야오반·튜링반의 서사는 단순한 교육 이야기가 아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유한 근대적 경쟁의 문화가 응축된 상징이다.

이 서사에는 몇 가지 공통요소가 있다.

1) 소수의 엘리트에 대한 과도한 집중

2) 대다수 학생의 삶과 조건의 삭제

3) 국가 발전을 위한 개인의 희생 정당화

4) 성공을 통한 국가-개인의 동일시

이 구조는 한국의 수능 경쟁, 일본의 엘리트 코스, 대만의 실험반, 싱가포르의 Gifted Program과 모두 연결된다.

동아시아 근대는 '천재'를 통해 자기 존재를 정당화해왔다.

그러나 이 구조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과도한 경쟁은 개인을 소진시키고, 창의성은 다양성보다 일률적 선발로 가정되며, 기술은 권력을 강화하는 도구로 종종 전락한다.

야오반은 이런 구조의 최신 버전일 뿐이다.

5. 새로운 질문: 우리는 누구의 미래를 상상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한국이 중국을 이길 수 있는가"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주의적 경쟁이 만들어낸 가짜 질문이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어떤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

우리는 기술을 누구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우리는 교육을 국가의 도구로 볼 것인가, 시민의 삶의 관점에서 재구성할 것인가?

중국을 부러워하는 태도는 결국 또다른 동원 담론으로 이어진다. 국가가 선택한 소수의 천재만이 미래를 대표하는 방식은 동아시아 근대의 오래된 신화를 반복할 뿐이다.

우리는 그 신화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야오반의 성공을 따라가는 상상'이 아니라, '그 바깥의 1299만 9950명의 삶을 중심에 놓는 상상'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동아시아적 경쟁의 틀을 넘어 다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칭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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