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진실을 외면하면 안 되는가

[프레시안books] <진실에 대하여 : 개소리가 난무하는 사회에서>

'탈진실(post-truth)'이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오른 지 오래다. 정치적 언어는 신뢰를 잃었고, 사실과 의견의 경계는 흐려졌다. 오히려 사실보다 감정과 신념이 여론을 형성하는 데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거나, 불편한 것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

해리 프랭크퍼트 교수의 신작 <진실에 대하여>(생각의힘)는 이러한 시대에 '진실'이 왜 필수적인 가치인가를 묻는다. 진실을 도덕적 당위가 아닌 생존과 사회 유지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규정하며 진실이 무너질 때 어떤 윤리적·사회적 붕괴가 일어나는지를 근본적으로 돌아보자고 제안한다.

이 책은 저자가 앞서 발표한 <개소리에 대하여>의 후속작이다. 전작에서 그는 진실에 무관심한 언어, 즉 '개소리(bullshit)'가 어떻게 사회적 담론을 해치는지를 지적했다. <진실에 대하여>는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이 왜 진실을 필요로 하는지, 진실이 없을 때 무엇을 잃는지를 탐구한다.

ⓒ생각의힘

프랭크퍼트는 "진실은 인간이 세계와 상호작용하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고정된 질서를 갖고 있으며, 인간은 그 질서를 정확히 파악함으로써만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진실에 대한 무관심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오도하는 자해적 행위라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진실이 단지 객관적 사실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도덕적 정체성과 긴밀히 연결된다는 점이다. 진실을 무시하는 삶은 결국 타인과의 신뢰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자아를 왜곡하게 만든다. 이 책은 진실을 외면하는 사회가 얼마나 쉽게 정치적 선동과 조작에 휘둘리는지를 지적하며, 공동체 전체가 진실을 통해 유지된다는 점을 언급하며 '진실'을 추구하는 태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진실이 없다면, 우리는 현실의 실상에 관해 아무 의견이 없거나, 있더라도 잘못된 의견만 가질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서나 우리 안에서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관해 어떤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거짓 믿음은 당연히 우리가 현실에 대처하는 데 효과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는 무지한 나머지 일시적으로 행복하거나 자신을 기만해서 잠시 흡족할 것이며, 이런 식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잠시나마 특히 화가 나거나 불안한 것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무지와 거짓 믿음은 우리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p.62)

이 책을 옮긴이(유강은)는 '개소리'와 '진실'을 구분하고 '진실'의 중요성을 이야기 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했다. 옮긴이는 "거짓말은 진실을 전제로 하지만, 개소리는 아예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며 "20세기까지만 해도 정치인이나 범죄자는 거짓말을 하는 데에도 저어하는 양심이 있었다. 꼬치꼬치 캐묻는 언론이나 법정의 추궁에 진실을 말하지는 않더라도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모른다고 잡아떼곤 했다. 하지만 탈진실의 시대에는 거짓말을 넘어서 개소리를 너무도 자신 있게 늘어놓는다"고 지적했다.

진실에 대한 무관심은 우리 사회가 매일 치르고 있는 소모적인 정쟁이자 사회적 재난의 근원이다. 특히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검증되지 않은 음모론, 정책의 타당성보다 지지층 결집을 위해 동원되는 정치적 수사들은 우리 사회가 처한 공론장의 위기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진실이 설 자리를 잃은 곳에서는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며,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최소한의 합의조차 이끌어낼 수 없다. 즉, 한국 사회의 갈등 비용을 줄이고 민주주의를 정상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진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명확하다. "진실 없이는 사회도 없다"는 것이다. 진실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접착제이며, 이 접착제가 녹아내리면 어떤 거창한 이념이나 정책도 사회를 지탱할 수 없다. 나아가 진실 추구의 연대성을 강조한다. 기자가 사실을 기록하고, 학자가 진리를 탐구하며, 시민이 거짓 정보를 걸러내려는 노력은 개별적인 행위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집단적 실천이라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주장하기를, 그러므로 진실을 경멸하거나 진실에 무관심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경멸하거나 무관심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자신에 대해 이렇게 적대적이거나 무신경한 태도는 극히 드물며, 유지하기도 어렵다. 그리하여 스피노자는 거의 모든 사람—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관심을 기울이는 모든 사람—이 알든 모르든 간에 진실을 사랑한다고 결론지었다. 내가 아는 한, 스피노자는 이 문제에 관해 전반적으로 옳았다. 사실상 우리 모두는 스스로 알든 모르든 간에 진실을 사랑한다. 그리고 삶의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것이 무엇을 수반하는지를 인식하는 한 우리는 진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p.52)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