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한 남산 곤돌라 사업 공사로 인해 중앙정보부 6국에서 벌어진 인권침해를 기억하는 전시관이 1년 넘게 문을 닫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사 착수 직후 소송에 휘말려 사업이 중단된 상태임에도 전시관 휴관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곤돌라 운행을 시작할 때까지 휴관을 이어가겠다면서도 대안 공간 마련 등 대책은 제시하지 않아, 민주화 역사보다 관광 수익을 우선시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20일 서울시가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와 <프레시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에 위치한 '기억6 전시관(메모리얼홀)'은 지난해 9월부터 현재까지 휴관을 지속하고 있다. 예상 개장 시점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남산 곤돌라 사업 준공이 마무리되는 2027년 상반기다.
기억6 전시관은 군부독재 시절 시민을 상대로 자행된 인권침해를 기억하자는 의미로 2021년 중앙정보부 6국 옛터에 조성한 기억공간이다. 빨간 우체통 모양의 전시관은 취조실 재현과 영상을 통한 고문 피해자 증언 등으로 군부가 벌인 참상을 기록하고 있다. 또 전시관 인근에는 6국 건물을 해체하면서 남은 콘크리트 잔해와 부서진 기둥을 활용한 벤치 등이 있다.
중앙정보부 6국은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설치돼 학원 사찰과 고문으로 악명을 떨쳤다.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 인혁당 사건 등 군부독재 시절 벌어진 대표적인 인권탄압 사건들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6국 건물은 안기부가 이전하면서 서울시가 매입, 서울시청 남산2청사로 사용되다 2016년 8월 지하를 제외한 지상부가 모두 철거됐다.
전시관이 위치한 남산예장공원은 6국, 사무동, 본관, 5국 등 중앙정보부 옛터를 거치는 '다크투어'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크투어는 잔혹한 참상이 벌어진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여행을 말한다.
군부독재에서 민주화로 나아간 우리나라 현대사를 기리는 뜻 깊은 공간이지만, 서울시는 1년 넘게 이곳의 운영을 중단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후 추진한 남산 곤돌라 사업이 그 이유다.
지난해 9월 착공식을 개최한 남산 곤돌라 사업은 남산예장공원(하부승강장)과 남산 정상부(상부승강장) 832미터(m) 구간을 운행하는 관광사업이다. 현재 케이블카 등 제한적인 방법으로만 남산 정상을 오를 수 있으니 곤돌라 조성을 통해 남산과 도심부 주변 접근성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앞서 오 시장은 2009년 남산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으로 이 사업을 추진했다가 서울시민들과 환경단체들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이후 다시 서울시장에 취임한 오 시장은 '지속 가능한 남산'을 주제로 남산 곤돌라 사업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경관 훼손과 환경 훼손 등의 지적을 받았으나 강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곤돌라 공사 착공과 동시에 예장공원과 기억6 전시관을 폐쇄했다. 공사차량 및 인부의 통행, 자재 적치 등으로 시민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남산 케이블카를 운영해 온 한국삭도공업이 서울시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곤돌라 공사는 착공 2개월여 만에 중단됐다.
공사 중단에 따라 서울시는 예장공원에서 공사구역을 제외한 나머지의 통행을 재개했다. 그러나 기억6 전시관만은 폐쇄를 유지했다. 용역을 맡겨 운영하는 전시관 특성상 신규 용역발주와 계약에 일정 기간이 소요되는데, 서울시에 제기된 소송의 결론이 언제 나올지 모르니 용역을 맡기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는 게 서울시 설명이다.
문제는 전시관을 장기간 휴관하면서도 어떠한 대안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다음 달 19일 선고가 예정된 재판에서 승소할 경우 2027년 상반기 곤돌라 준공 시점에 맞춰 전시관을 재개장할 예정이다. 시가 패소해 상급심으로 넘어갈 경우 전시관은 기약 없이 휴관하는 셈이 된다. 아울러 시는 서미화 의원실에 "(중정 6국이라는) 장소가 지닌 역사적 특성을 반영한 전시기 때문에 대체공간 조성 등의 대안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인권침해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을 관광사업 추진을 이유로 장기간 닫아두는 서울시 행정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광화문 '감사의 정원' 사업과 종묘 앞 재개발 사업 추진 등 최근 오 시장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여러 사업들에서 관광 수익을 우선해 인권과 역사적 책무를 저버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상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프레시안>에 "기억6전시관 폐쇄, 광화문 '감사의 정원' 조성, 종묘 보존 논란은 인권과 역사적 책무를 저버리고 시민의 기억을 외면한 채 관광 수익성만을 우선시하는 오세훈 서울시정의 자기편의적 역사관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일방적 행정은 시민의 기억과 문화공간을 훼손하며 서울을 행정 권력의 욕망에 따라 재편하려는 문제적 흐름을 드러낸다"라며 "서울의 역사·문화공간을 왜곡하고 훼손하는 정책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미화 의원은 "중앙정보부가 자행한 인권침해의 역사를 기억하고 성찰하도록 마련된 공간을 관광사업 추진을 이유로 1년 넘게 닫아둔 것은 부적절하다"며 "서울시는 역사적 공간의 의미를 고려해 임시 개관이나 대체 전시 등 최소한의 조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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