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는 민간 영리 플랫폼 기업의 돈벌이 터전이 될 것인가

[기고] 공공 플랫폼 중심의 원격의료가 대안

10년 넘게 법제화가 막혀 있었던 원격의료가 비대면진료라는 이름으로 법제화되려 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원격의료 법제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 여러 개 올라 왔다. 의료 환경과 관련해 무엇이 그리 달라졌길래 여야 가리지 않고 원격의료 법제화에 열을 올릴까?

국민들이 원격의료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원격의료를 경험해 본 국민들은 극소수기 때문이다. 정부와 원격의료산업계가 원격의료가 국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의료 수단이 된 것처럼 말하지만, 2025년 8월 14일 보건 복지부가 발표한 5년간의 원격의료 실시 통계를 보면 이것이 크게 과장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체 외래 진료 대비 원격의료가 차지한 비중은 0.2~0.3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마치 많은 국민들이 원격의료를 원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원격의료 법제화를 위한 의도적인 과장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대부분이 원격의료가 법제화 직전에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럼 누가 원격의료 법제화를 이토록 요구해 급속도로 법제화가 진행되고 있는가?

의사, 약사들이 강력하게 이를 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의료인과 환자 모두 원격의료에 목메지 않고 있는데, 오직 한 세력만이 이를 강력히 원하고 정부를 압박해 왔다. 바로 원격의료를 중개하는 민간 영리 플랫폼 업체들이다.

물론 노골적 친기업 정부인 윤석열 정부는 이들 기업의 요구에 적극 호응했고,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를 진압하고 뽑은 이재명 정부 역시 여기에 호응하고 있다. 사실 민주당 의원들이 국민의힘 의원들보다 의료법 개정안을 더 많이 냈다. 아마도 원격의료 법제화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과 국정과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매우 씁쓸한 일이다. 이전에 민주당 의원들은 의료 민영화 사안이라며 원격의료 반대에 함께 하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AI 등 IT기술 산업의 발전에 뒤처지지 말고 선도해야 한다는 단순한 장밋빛 미래에 홀려 원격의료 법제화를 추진하는 것은 매우 성급하고 부실한 대응이다.

원격의료에서 IT기술 발전을 위한 혁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리 플랫폼들은 이미 존재하는 IT기술을 이용해 환자와 의료기관 사이에서 일종의 통행세를 받아 먹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공적 성격이 강한 기존 의료 체계에 끼어 들어와 기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원격의료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게 결코 아니다.

어떻게 영리 플랫폼들은 이렇게 힘을 키워서 정부를 압박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고 있는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비상 상황이 좋은 기회가 됐다. 이때 한시적으로 광범위하게 원격의료를 실시했다. ‘닥터나우’ 등 원격의료를 중개하는 플랫폼 업체들이 비상 상황을 이용해 우후죽순 생겨나 미래의 원격의료 시장을 위한 터를 닦았다. 일종의 재난자본주의인 것이다.

코로나19 감염병 사태 시기 원격의료는 일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충분한 공공 병원과 인력이 없어 원격의료로는 정말 치료해야 할 중환자들과 감염병 환자들을 치료할 수 없었음에도, 정부는 턱없이 부족한 자원으로 감염병 환자를 전담 치료하던 공공의료 확충보다는 원격의료를 택했다. 그리고 독버섯처럼 우후죽순 생겨나는 영리 플랫폼들에 아무런 규제도 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 국감에서 과잉 진료, 향정신성의약품 처방, 불투명한 비급여 진료 등 원격의료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들이 지적됐음에도 그랬다.

2023년 6월 1일 코로나19가 위기 대응 ‘심각’ 단계에서 ‘경계’로 조정되면서, 원격의료가 불법 상황에 놓일 위기에 처하자 영리 플랫폼들은 원격의료를 중단하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며 시범사업 추진을 압박했다. 결국 윤석열은 이를 받아들여 기약도 없는 이상한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또 다른 계기가 있었다. 바로 2024년 봄부터 시작된 전공의 파업에 의한 ‘의료 대란’ 상황이었다. 이는 원격의료와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의사가 파업하고 없는데 원격의료가 무슨 소용인가 말이다. 그러나 영리 플랫폼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또다시 원격의료를 확대하는 기회로 삼았다. 윤석열이 이에 적극 호응해 이때 전면적인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시작됐고, 지금까지 시범사업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대학병원에서 이동하는 의료 관계자. ⓒ연합뉴스

의료비 증가와 건강보험 재정 축내기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는 의사, 약사들의 원격의료 시범사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건강보험 재정에서 추가 수가를 30퍼센트나 올려 주면서까지 영리 플랫폼 업체들의 이익에 복무했다. 이 때문에 이미 건강보험 재정에서 2천 5백억 가량 추가 지출됐다.

영리 플랫폼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은 환자, 건강보험공단, 의료기관으로부터 수수료 등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힘 있는 전문직 의료 단체들은 이를 부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영리 플랫폼들이 수익 극대화를 추구할수록 환자와 건강보험공단 재정은 축날 수밖에 없다. 영리 플랫폼들이 시범사업 중인 지금은 수익 사업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지만, 법제화되면 일제히 수익 모델을 구축해 수익 극대화 경쟁에 나설 것이다. 평범한 서민들은 원격의료 법제화로 의료비와 보험료가 증가해 하지 않아도 될 지출을 타의에 의해 해야 할 판이다. 안 그래도 생계비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데 말이다.

의료 영리화·민영화 그리고 민간보험

영리 기업이 공적 의료 체계에 끼어 들어와 자유롭게 돈벌이를 하게 되는 것이므로, 의료 영리화·민영화라 할 수 있다. 영리 플랫폼 중심의 원격의료가 지속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 보험사들이 여기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미 거대 보험사가 플랫폼을 인수(KB손해보험 자회사 KB헬스케어가 '올라케어' 인수)한 사례가 있다. 미국식 의료 체계처럼 거대 민간 보험사들이 환자와 의료 기관 사이에서 진료를 통제하며 수익을 극대화하고, 의료진의 진료권을 침해하고 환자들에게 큰 고통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 그러면 미국처럼 의료 민영화 천국이 되는 것이다.

사실 2010년 10월 공개된 이명박 정부의 “미래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산업 선진화 방안”으로 이름 붙여진 삼성의 보고서에 원격의료가 등장했는데, 당시 삼성은 장기적으로 미국식 의료 체계로 나아가기 위한 계획을 내놓았었고, 역대 모든 정부들이 그 방향을 향해 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대안: 공공 플랫폼 중심의 원격의료

무상의료운동본부는 대면 진료가 원칙이며 팬데믹 등 불가피한 경우들에만 원격의료를 허용하고, 이 때 중개는 공공 플랫폼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최근 정부는 이러한 반대 여론을 감안해 공공 플랫폼도 수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공공 플랫폼과 영리 플랫폼이 경쟁하는 체제는 위험하다. 정부가 공공 플랫폼에 계속해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영리 플랫폼을 당해 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배달 등 다른 분야에서 공공 플랫폼이 도입됐지만 모두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 플랫폼이 중심이 되고 영리 플랫폼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규제를 가해 부차화시키고 종국에는 고사하도록 해야 한다.

11월 4일에 열린 관련 국회토론회에서 복지부 고위관료는 공공 플랫폼 구축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따라서 하루 빨리 공공 플랫폼을 구축한 다음에 법제화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영리 플랫폼들이 우리 의료 체계에 미칠 영향 악영향 등에 대해 철저히 따져 본 다음에 법제화해도 늦지 않다. 원격의료 법제화는 촌각을 다투는 일이 전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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