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에게 근로자 참여 하에 각 사업장이 스스로 위험 요인을 파악하는 위험성 평가를 매년 실시하도록 정한다. 그런데 이 때 위험의 기준은 남성·이성애자·비장애인·주류 인종의 성인을 전제하고 있다. 이 기준에서 벗어난 다양한 몸은 고려되지 못한다. 여성이 대표적 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산하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위험성 평가팀은 '젠더 관점을 포함한 위험성 평가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으로 세 편의 글을 기고한다.
위험은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원래라면 멈춰야 할 그라인더의 날이 멈추지 않은 채 내 몸 앞으로 치고 들어올 때, 제빵 공장 배합기 문을 닫지 않은 채 일하다 옷이 안으로 말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우리는 위험을 직감한다. 어떤 위험은 기계와 설비에서만 오지 않는다. 콜센터 상담 중 수화기 너머로 욕설이 쏟아질 때, 어린이집에서 하루 종일 교구와 낮은 세면대에 몸을 맞추느라 구겨진 자세로 일해야 할 때, 수도 검침을 위해 방문한 집에서 속옷만 입은 남성 고객이 부적절한 동영상을 틀어놓고 있는 상황을 마주할 때도 우리는 분명한 위험 속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뚜렷하게 느껴지는 일터의 위험은 누가, 언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일터에서 어떤 위험은 일상적으로 거론되고 기록되지만, 또 어떤 위험은 당연한 일, 견뎌야 하는 일로 취급되곤 한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은 모든 사업장에 위험성 평가를 의무화했다. 위험성 평가는 사업장이 스스로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개선하도록 설계된 제도로, 노동자의 참여를 전제로 한 매우 중요한 절차다.
그러나 제도적 절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곧 위험이 제대로 평가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2021년부터 3년 연속 위험성 평가 우수사업장으로 평가받았던 아리셀 리튬전지 제조공장에서 2024년 6월 대형 화재·폭발 참사가 발생했다. 사망자 23명 중 20명은 하청업체 노동자였고, 17명은 이주노동자, 15명은 여성 이주노동자였다. 이 참사는 단순한 안전사고가 아니라, 일터에서 위험을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조건 속에 놓여 있었는지를 드러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물을 수 밖에 없다.
위험성 평가에서 '위험을 말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험으로 판단할지 정하는 기준은 누구의 시선인가?
개선 대책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보통의 일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기준
"보통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일하다 다쳤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여기서 같은 일 하는 사람 중에 그 사람처럼 일하다가 다쳤다고 하는 사람들 없어."
재해조사를 위해 방문한 사업장에서 안전보건관리자나 사업주들이 종종 내게 하던 말이다. 진료실에서 환자가 하는 이야기들이 주로 재해 사업장이 얼마나 힘든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현장에서는 해당 근로자를 제외하고는 보통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한 일터임을 내세운다. 이제, 그 '보통의 사람'은 누구인지 우리는 묻고 싶다.
산업안전보건의 기준은 오랫동안 '표준 노동자'를 전제로 발전해 왔다. 이 표준은 흔히 남성·이성애자·비장애인·주류 인종의 성인을 전제한다. 오랜 시간 일해도 무리가 없고, 기계를 다룰 때 팔 길이·악력·어깨 넓이 같은 조건이 규격과 잘 맞고, 보호복이나 안전화도 표준 크기에 자연스레 맞아 떨어지는 몸이다.
그러나 현실의 일터는 이 표준이 상정한 몸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 예컨대 많은 제조업 현장에서 절단기나 사출기, 프레스기 같은 작업대는 평균 남성 신체를 기준으로 고정돼 있어 체구가 작은 노동자는 어깨를 들어 올린 채로 작업해야 한다. 손이 큰 사람을 기준으로 만든 보호 장갑은 오히려 끼임 사고를 늘리고, 장애가 있는 노동자는 손잡이 높이나 레버 강도가 맞지 않아 기본 조작조차 어려운데도 이런 문제들은 대개 개인적 특성으로 간주한다.
위험이 물리적 설비에서만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야간근무 중 밤에 홀로 남겨진 여성 노동자가 느끼는 공포와 불안, 낯선 방문객의 접근 가능성, CCTV 사각지대는 남성의 시선에서는 잘 포착되지 않지만, 결코 사소한 위험이 아니다. 또 남성 중심적 문화 속에서 여성이나 젊은 노동자는 의견을 내기 어렵고, 회의나 위험성 평가 자리에서 "뭐 그런 것까지 말해야하냐"는 말로 불편함이 가볍게 덮이는 순간들이 반복된다. 이런 소외와 발언권의 억제는 스트레스와 사고 위험을 높일 뿐 아니라, 위험을 말할 수 있는 통로 자체를 좁혀 그 경험을 안전보건의 시야에서 점차 지운다.
이렇듯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청소년·노년층 등 표준에서 벗어난 다양한 몸은 종종 '예외' 취급받으며 위험성 평가의 시야에서 밀려난다. 작업대 설계와 보호구 크기, 기계 규격, 노출 기준 등 산업안전보건의 기본 틀이 사실상 '평균적인 성인 남성'의 몸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런 누락은 우연이 아니다. 그 결과 생식독성 물질처럼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노출, 지방조직에 축적되는 화학물질, 호르몬 교란 물질, 성희롱·성폭력 등 젠더 기반 위험은 오랫동안 '핵심 위험'이 아니라 '부수적 위험'으로 취급됐다.
주변의 몸들이 처한 위험을 지우는 구조
사실 이 문제의 뿌리는 보다 깊다. 자본주의는 이윤과 효율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이 체계에서 '생산적 노동'은 기계를 돌리고, 직접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로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는 역사적으로 남성 중심 제조업을 중심으로 형성됐고, 그 과정에서 여성의 돌봄, 감정, 재생산 노동은 경제적 가치가 낮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부차적 노동'으로 취급돼 왔다.
여기에 가부장제의 오랜 성별 규범이 겹치면서 여성에게 부과된 돌봄, 가사 노동이 '자연스럽고 타고난 역할'로 간주한 것처럼, 일터에서 여성의 직무는 섬세함, 친절함, 감정 관리를 요구하는 업무로 치환됐고 '힘들지도 위험하지 않은 일'이라는 왜곡된 인식 속에 배치됐다. 이는 노동의 본질적 피로감과 건강 영향을 사회적으로 삭제하는 효과를 낳았다.
또한 가족부양의 책임을 남성에게 돌봄 책임을 여성에게 부과하는 젠더 이데올로기는 노동을 이분화한다. 생계부양자는 남성, 여성은 부업노동자라는 오래된 인식은 오늘날 비정규직, 시간제, 감정노동, 돌봄 노동이 여성에게 집중된 현실과 맞물려 여성 노동의 '가벼움'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해 왔다.
이 구조에서는 여성 노동자의 위험은 개인적 불편, 감정적 스트레스 정도로 축소된다. 근골격계 부담, 성희롱과 성폭력, 화학물질 노출,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건강 악화 같은 실질적 위험은 제대로 기록되기 어렵고, 사업장의 개선 우선순위에서도 밀려나기 십상이다.
결국 이러한 구조의 결합은 여성 노동의 가치를 낮게 책정하고, 위험을 포착할 언어 자체를 제한하며 '조용히 감내하는 노동'을 여성에게 당연한 것으로 요구하게 만든다. 여성 노동자가 겪는 위험이 보이지 않고 기록되지 않으며,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부주의나 부족한 자료 때문이 아니라 노동과 위험을 바라보는 사회적 기준 자체가 표준 노동자-남성 중심적으로 형성돼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일터는 그런 기준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우리는 조직을 지탱하는 수많은 사람이 서로 다른 몸과 조건 속에서 일하고 있고, 그들이 겪는 위험이 결코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위험을 말하고 개선할 수 있으려면
현장에서 만나는 사례는 이런 구조적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고객의 골프 가방을 옮기다 발가락 골절상을 입은 골프 캐디가 산재 치료를 받자, 회사는 재발 방지 대책으로 철제 덮개가 달린 안전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캐디 업무는 고객을 따라 5시간 이상 걸어 다니고 뛰어야 하는 노동이다.
이 업무 특성에 철제 안전화가 맞는지, 그 제안이 실제 위험을 해결하려는 시도인지, 혹은 단지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목소리가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위험성 평가의 핵심은 기술적 절차가 아니라 민주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위험의 발굴, 위해도 평가, 개선 대책의 마련 및 실행 과정에서 누구의 경험이 반영되었는지가 위험성 평가의 품질을 결정한다.
젠더 관점의 위험성 평가는 단순히 한 성을 위한 추가 보호 조치가 아니다. 그동안 보편적 기준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됐던 좁은 틀을 벗어나, 실제 일터에서 다양한 몸과 조건을 가진 노동자들이 겪는 위험을 더욱 정확하게 보기 위한 접근이며 노동자가 스스로 위험을 드러내고 개선을 논의하는 일터 민주주의의 과정과 맞닿아 있다. 여성, 이주노동자, 장애인, 청소년·노년층 등 다양한 노동자가 겪는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면 위험성 평가는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더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첫 단계는 낯설지만 단순하다. 누구의 경험이 기준이 돼 왔는가, 그리고 누구의 위험이 빠져 있었는가를 다시 묻는 것이다. 젠더 관점은 바로 그 질문을 가능하게 하고, 기존의 틀에서 보이지 않던 위험을 평가의 중심으로 가져오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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