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 급진전" 관세협상, 최악은 피했다

'불확실성 해소'는 성과…트럼프 압박에 국익 출혈

한미가 29일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통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방식에 합의했다.

2000억 달러를 직접 투자하되, 연간 한도를 200억 달러로 설정한 것이 골자다. 나머지 1500억 달러는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 기업 주도로 투자한다.

한미 정상회담 뒤 김용범 정책실장은 "연간 200억 달러를 상한으로, 총 2000억 달러를 직접 투자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내 외환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라고 했다.

직접 투자 연간 한도는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외환 시장의 충격없이 우리가 조달 가능한 달러는 연 150억~200억 달러"라고 했던 범주의 상한선이다.

지난 7월말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정부 협상단이 합의 내용과 관련해 '2000억 달러의 경우 대부분 보증과 대출로 구성해 직접 투자 비중이 낮을 것'이라던 설명과는 차이가 크다. 당시 연 70억 달러, 총 700억 달러를 제시했던 정부안보다 후퇴한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전액 선불 투자"를 주장하며 한국을 압박해온 상황 전개에 비춰보면, 외환 시장에 급격한 충격을 가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는 피했다는 평가다. 이창용 총재는 국회 국정감사 중 관세협상 타결 소식에 "굉장히 잘 됐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연간 투자하는 200억 달러는 외화 자산의 운용 수익을 중심으로 조달할 계획이다. 김 실장은 "이자, 배당을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시장 조달 방안으로는 "정부보증채 형식으로 할 것 같다"며 "외환 시장에 이것 때문에 공급이 늘어날 일은 절대 없다"고 했다.

미국에 투자한 자금의 원금 회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먼저 투자 의사결정은 양국 상무부 장관(미국 러트닉 장관, 한국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각국의 협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서로 협의하는 구조로 구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투자 프로젝트를 선정할 가능성을 방어하기 위한 장치로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를 선정한다는 데에도 합의했다. 김 실장은 상업적 합리성을 "투자금을 환수할 수 있는 현금 흐름이 보장되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하며, MOU 문안에 "원리금이 보장되는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만 추진하기로 한다고 명시하기로 했다"고 했다.

수익은 한미가 5대 5로 배분하기로 했다. 미국 측이 먼저 합의한 미일 관세협상을 기준점으로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김 실장은 "5대 5 배분에 대해선 마지막까지 굉장히 강한 문제제기를 했다"면서도 "우리가 원하는 비율로 명시한 합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는 "일본은 우리보다 대외자산이 월등히 많고, 기축통화국으로서 외환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덜하다"면서 미일 협상의 영향을 받은 데에 "우리에게 좀 야속한 면도 있다"고 아쉬워했다.

다만 20년 내에 원리금 전액을 회수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면 수익 배분 비율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무리한 사업에 투자해 원리금 전액 상환이 어려워질 경우, 수익 배분 비율을 한국에 보다 유리하게 조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것이지만, 구체적인 기준이 뒷받침되지 않아 실제로 관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밖에 김 실장은 전체 투자 프로젝트를 총괄 관리하는 '엄브렐라(우산) 구조'로 투자 펀드를 운영해 특정 프로젝트에서 손실이 나도 다른 프로젝트에서 한국에 돌아가는 몫을 늘리도록 한 점도 안전장치로 설명했다.

당초 타결이 어려워 보이던 협상이 급진전된 배경은 주력 산업인 자동차 분야 타격 장기화가 우려되는 한국과 아시아 순방 성과를 챙기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김 실장은 "어제 저녁에도 (협상 타결) 전망이 밝지 않았고 당일 급진전됐다"며 "(난항을 겪어온 협상이) 며칠 만에 우리가 양보해서 타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국익 수호를 원칙으로 배수진을 치고, 미국 측의 양보를 얻어냈다는 자평이다.

관세 협상과 안보 분야 협상 결과를 담은 '팩트시트'는 조만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MOU 문안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게 김 실장의 설명이다.

정부는 관세협상 MOU 이행에 필요한 특별법 제정 등 입법 절차도 신속히 밟을 방침이다. 가급적 11월 내에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고 국회가 이를 통과시키면 양국 상무장관이 MOU에 서명하는 수순이다.

안보 분야에선 이재명 대통령이 요청한 핵추진 잠수함 개발에 트럼프 대통령이 호응한 대목이 눈에 띈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우리가 공급받을 수있도록 결단을 해 주시면 좋겠다"며 핵추진 잠수함 확보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핵추진 잠수함은 원자력을 동력으로 하는 잠수함으로, 디젤 엔진 잠수함보다 잠항 능력이 우월해 수개월 동안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미국의 협조 없이는 농축우라늄 연료 확보가 어려운 만큼, 이 대통령은 북한이나 중국 잠수함 추적 활동 등 한국의 안보책임 강화 차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요청에 트럼프 대통령은 공감을 표하며 후속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관련 권리를 보유할 수 있도록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논의하는 과정에 핵잠수함 연료 확보 문제도 함께 의제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평화적 이용' 외에 군사적 이용을 금지하고 있는 원자력 협정 개정이 뒷받침돼야 핵추진 잠수함 원료 확보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원론적 호응이 실제 연료 공급 지원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미국이 수용하더라도 이 대통령이 중국 잠수함 추적 활동을 명시한 만큼,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개발에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위 실장은 "특정국의 잠수함을 지칭한것이라기 보다 중국 쪽 수역에서 잠수함들에 대한 대처를 말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안보분야 쟁점인 '동맹의 현대화'와 관련해선 국방비 증액 방침을 재확인했다. 자체 방위 역량 강화 차원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경북 경주박물관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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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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