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가을, 매스컴의 주요 뉴스는 세계적으로 보나 국내적으로 보나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모두가 목도하고 있듯이 미국을 비롯해 서구의 많은 선진 민주국가에서 인류의 고귀한 유산인 민주주의가 심한 고역을 치르고 있는 모습이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 인정 하에 시민 개개인 권리가 존중되는 제도적 토대 위에 성립해 운영되는 것이거늘 이런 원칙과 전제가 간단치 않게 흔들리고 있다. "불법이민은 물론 난민을 거부해야 한다", "우리가 못 살겠으니 그들을 내쫓아야 한다" 등 우파적 주장이 사회 안정성 차원에서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이에 많은 국가가 유사한 시대적 이슈로 거대한 사회 혼란과 갈등에 빠진 형국이다.
인권과 주권이 가지는 관계와 긴장
난민과 성소수자 등 소위 사회적 약자의 인권도 중요하고, 사회 안정을 바라는 많은 구성원의 주권 행사도 중요하다. 다수 주권자의 다수결로 주로 운영되는 민주주의는 이래서 어렵다. 그래서 인권과 주권은 역사적으로 상충적 관계로 그려지기도 했다. 몇몇 특정 국가의 경우 해당 국민의 인권 침해에 대해 유엔 등 국제사회가 인권문제에 개입하려 할 때 해당 국가는 국가주권을 내세우며 국제적 인권기구의 요구를 거부하며 충돌하곤 했다.
살펴보건데, 근대 자연법 사상에서는 인간은 생명과 개인적 자유, 사적 소유물의 권리를 천부적으로 갖고 있으며 국가권력(국가주권)은 바로 이러한 자연권(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위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인권(자연권)은 주권의 근원이며 주권 신장은 인권 신장 위에서 성립한다고 로크(John Locke)는 <통치론>에서 일찍감치 제시했다. 필자가 좋아하는 루소도 이 둘은 동일한 원천을 가진다고 강조하며 인권은 주권행사를 통해 비로소 완전하게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현대 정치철학자 하버마스(J. Habermas)는 인권과 주권을 서로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지 않고, 민주적 공론장에서 동시적으로 실현되는 관계로 설명한다. 아렌트(H. Arendt) 역시 인권은 '권리를 가질 권리'이며, 이는 정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보장된다고 보았다. 결국 오늘날의 민주주의에서는 시민(주민)이 정치 주체로 참여(주권 행사)할 수 있을 때 인권도 실질적으로 보장된다.
예컨대 이민과 난민 또는 외부인을 수용할 때 지역주민들이 사전에 충분한 논의를 통해서, 아니면 적어도 시민의회를 거쳐 지역주민 단위에서 결정하고 그들 이주민 또는 난민집단, 외부인이 문제를 일으킬 때도 그들의 주민주권 인정 하에 그들과 함께 충분히 협의해 해결점을 찾아보았다면 그들의 인권과 주권도 살리고 원주민들의 인권은 물론 주권도 신장되는 길이 아닌가 싶다. 독일의 알테나(Altena) 도시나 스웨덴의 말뫼(Malmo")도시처럼.
현대적 민주주의 원리도 반영하고 있지 못한 '권익위'와 '국가인권위'
하지만 우리나라 해당 행정기구는 이러한 주민통합의 실적은 커녕 역할 기대도 어렵고 현대적 민주주의 원리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인권과 주권 신장 관련 행정기구로는 인권 보장을 담당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그리고 부패·불공정 민원을 주로 다루는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존재한다. 업무는 각각 기능별로 분산되어 있는데 중복적 업무도 많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특히 시민들의 주권 행사 지원은 이들 기관에는 미래 목표인 듯 기대난망이다. 주권 행사는 인권 신장의 척도가 되어야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선거나 청원 등 간헐적이고 수동적인 방식 지원에 국한된다. 그 결과, 우리 주민은 이러한 행정제도 안에서 명목상 '권리의 주체'이지만 동시에 '절차의 객체' 신세로 전락해 있다. 사회적 문제의 발생 시 주권자로서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집단이 될 뿐이지 해결의 주체가 되고 있지 못하다.
이제는 국가 운영 전반에 걸쳐 주권의 실질적 확대와 인권의 구조적 보장을 통합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진정한 거버넌스 기구가 필요하다. 이에 필자는 '국민주권위원회' 설립을 제안한다. 이재명 정부가 국민주권정부를 내세우는 만큼 시기적으로도 그 타당성이 충분하다. 이 위원회는 기존의 권익위와 인권위를 흡수·통합하여 시민의 권리 보장과 참여 확대를 아우르는 범국민적 조직으로 재편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수동적인 인권 침해 방지와 수호를 넘어 불공정 및 민원처리도 당당하게 요구, 처리하고 더 나아가 적극적 주권행사 지원으로 주권 신장에 앞장서야 한다. 주민참여예산, 중대 현안에 대한 주민숙의제 및 디지털 공론장 등 현대적 민주주의 도구들을 제도화하고 선도하여, 참된 주권자 '권리의 행사'와 대리 권력자들에 대한 '권한의 견제'가 동시에 가능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권익위는 과거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 등의 기능을 통합해 2008년 출발한 국무총리 산하의 독립적 행정기관이다. 약 200명의 인력이 1년에 약 3000억 원의 예산으로 고충민원 처리, 부패 방지, 공정성 해결, 국민의 권리 보호, 공직사회의 청렴, 행정의 공정성을 위한 업무를 하며 나름대로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성 문제, 고충처리 지연, 일선부서로 민원 해결 떠넘기기, 효율성 부족, 내부신고자 보호 불충분 등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과거 권익위가 침해된 국민의 권리를 수동적 위치에서 문제시하고 해결을 도모했다면 '국민주권위원회(국주위)'에서는 능동적, 적극적인 입장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에 권익 보호 업무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더 높일 수 있다. 공직사회의 청렴과 행정의 공정성을 높이는 업무는 감사원으로 이관하면 된다.
인권위는 헌법 및 국제인권규범에 근거해 모든 사람의 인권을 증진·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독립기구다. 인권위 업무는 인권침해사건 조사, 인권교육·연구, 제도개선 권고 등을 1년에 약 220억 원 국가예산으로 하고 있으나 인권침해의 구제 해결이 미흡(광주사무소 경우 20년간 13.5% 수준)한 실정이다. 더불어 정권교체에 따른 정치중립성 문제, 장애인·성소수자에 대한 포용성 부족, 신뢰성 의문, 권고 이후 실행여부 관리 미흡 등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피동적으로 피상적으로 해오던 인권수호 업무를 주권 신장 차원으로 업무방식을 바꾸면 인권 신장은 뒤따라 온다. 국민들이 주권자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도록 주권 행사 지원업무 위주로 하면 그 활성화는 명약관화하다.
시민이 권리 주체로 설 때, 국가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공화국이 된다.
국민주권위원회는 단순한 조직 통합이 아니다. 이는 현대 정치가 지향하는 시민 중심의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제도적 전환점이다.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 이제는 '인권과 주권이 만나는 제도'를 상상하고 설계할 때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위기 시대에 처해 있고, 이번 정부는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하고 있는만큼 실질적으로 인권위와 권익위를 국민주권위원회(전문가와 함께 다수의 국민참여형 위원으로 구성)로 통합 개편하고, 전국 시군구에 국민주권센터를 설치해 생활현장에서 실천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인권 보호를 넘어 국민주권을 신장, 발휘케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는 '세계 표준이 될 K-민주주의'로, 명실공히 세계적 민주주의 선도국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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