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극우파' 득세 속 '尹 정부 퇴행' 업어치기한 한국, 다음 길은?

[복지국가SOCIETY] 국민주권, 시민의회로 물꼬를 열자

한 달 남짓 지나면 12·3 계엄 1주년이 된다. 지금도 그날 밤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이들이 많다. 만약 그날 밤의 계엄을 막지 못했으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주권자 국민의 힘을 등에 입고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도 4개월이 훌쩍 넘었다. 이재명 정부는 자칭타칭 '국민주권정부'로 불리고 있다.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 만큼 국민주권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과 일정을 제시해야 한다. 계엄령이 공포되고 국민이 막은 12·3 1주년을 기념해 이날을 '국민주권의 날'로 선언하고 구체적인 방향과 내용을 발표하는 것은 어떨까?

득세하는 극우파와 퇴행하는 민주주의

세계적으로 극우파가 득세하고,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평화의 시기가 끝나고 다시 전쟁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는 진단도 하고 있다. 세계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전 세계적으로 극우파가 득세했던 때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극우파가 권력을 잡고 세계대전을 일으켰지만, 다른 나라들도 극우파가 득세하고 있었다.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극우파가 득세하는 것은 허약한 민주주의 때문이다.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주지 않고, 단순히 투표 거수기 노릇만 하도록 하는 대의제도가 문제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사실 허구에 가깝다. 좋은 정치인이 선거를 통해 뽑히지 않을 뿐더러, 선거가 끝나면 당선자들은 표변해 버린다. 그래서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한 장 자크 루소는 선거를 이렇게 표현했다.

"영국인들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여기지만, 이는 심한 착각이다. 그들은 단지 선거일에만 자유로울 뿐이며, 다음날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

루소의 사회철학 덕분인지 루소가 살았던 스위스는 전 세계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다. 국민발안, 국민투표 등 전 세계 직접민주주의 정치활동의 절반 가량이 스위스에서 일어난다. 인구 900만의 스위스를 빼놓고 직접민주주의를 한다고 이야기할 만한 국가는 없다. 그 덕분인지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이고,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사회적으로 역동적인 국가로 꼽힌다.

대한민국도 헌법 제1조에 국민주권을 명시하고 있지만, '빛깔 좋은 개살구'에 가깝다. 국민이 직접 행사할 만한 주권은 거의 없다. 헌법이나 법률을 발의할 권리도 없고, 사회적 중대현안에 대해 국민투표로 결정하자고 제안할 수도 없고…. 단지 정부나 국회에 청원하는 정도의 권리가 근래에 주어졌을 뿐이다. 청원을 통해 시민들의 권리가 확장되고 제도화되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국민주권의 실질화가 가져올 수 있는 사회변화는 대단하다. 대만은 몇 해 전만 해도 민주주의 지수가 대한민국보다 한참 떨어졌지만, 2018년 대만사회의 중대현안을 국민이 국민투표를 통해 제안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국민투표법을 개정함으로써 민주주의 지수(EIU기준)가 30대 초중반에서 10위 안팎으로 급성장해 '아시아 민주주의의 등대'로 불리고 있다. 반면에 문재인 정부에서 20위 내외를 기록하고 있던 대한민국은 12·3내란 사태로 10단계나 추락하며 다시 불완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2025년 대한민국의 세계민주주의 지수는 32위)

국민주권의 실질화가 가져올 수 있는 효능감은 매우 높지만, 이재명 정부가 실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사회 기득권들의 벽은 높고 단단하기에 정부의 힘만으로 성취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국민의 집단지성이 모이고, 내란을 막았던 에너지가 다시 결집되지 않으면 국민주권은 빈 말에 그칠 수 있다. 2016년 촛불시민혁명의 힘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무력하게 윤석열을 낳았던 것처럼, 2025년 빛의 혁명으로 탄생한 이재명 정부가 다시 허망하게 끝날 수도 있다.

지방선거, 지역부터 시민의회를 준비하자

내년 6월 지방선거를 7개월 남짓 앞두고 있다. 벌써부터 후보자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고, 정치판도 선거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하지만 왜 35년이 되도록 아직 지방자치가 제대로 지역에서 자리 잡지 못하는지를 근본적으로 성찰해봐야 한다. 헌법의 국민주권론이 빛 좋은 개살구인 것처럼, 지방자치도 주민과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권리와 권한이 없는 탓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시민의회를 중심으로 제대로 접근을 해볼 필요가 있다. 기존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자치 등 유사한 형태가 있기는 했지만, 주민들에게 공적 권한을 보장하면서 제대로 된 숙의과정과 결론을 만들어 본 적은 없다. 지역에서부터 민주주의의 혁신을 만들어보라고 시작한 것이 지방자치·주민자치지만, 많은 것들이 중앙에 예속되어 있는 한국사회에서 혁신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시민사회의 뜻을 모아 '2026지방선거 시민의회추진단'을 통해 지역에서부터 시민의회 조례를 만들고 지역모델을 만드는 일을 시작한다. 강한 민주주의 없이는 복지국가도, 행복사회도, 제대로 된 자치도 기대할 수 없기에 강한 민주주의를 시민의회를 통해 시작해보려는 시도다. 지난주에 깃발을 올렸으니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시민의회전국포럼 홈페이지를 통해 뜻있는 시민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지역조례제정, 지역모델발굴 등 다양한 주권자운동을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

▲ 2026 지방서거 시민의회추진단 발대식. ⓒ시민의회전국포럼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지만, 한국사회는 윤석열 정권의 퇴행을 멋지게 업어치기 했다.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무력을 가진 권력자들이 일으킨 친위쿠데타를 국민이 막은 역사는 거의 없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독일의 히틀러, 대한민국의 박정희와 전두환이 무력으로 친위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막을 방법은 없었다. 친위쿠데타를 막은 대한민국이 스위스처럼 국민주권, 직접민주주의까지 나아갈 수 있다면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때는 당당히 'K-Democracy'라 불러도 손색없을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는 지역에서부터 국민주권·주민주권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국민주권,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재명 정부가 '국민주권정부'를 지향한다 해도 실현은 쉽지 않아 보인다. 기득권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국민의 일상은 너무 바쁘고 정치인들의 상상력은 빈곤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이재명 정부는 국민의 집단지성을 믿고 과감한 시도와 혁신을 해야 한다.

12.3 내란 사태가 일어난지 1년이 돼가지만, 여전히 사태의 진실과 책임자 처벌은 오리무중이다. 기득권들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지를 실감하고 있고, 다양한 영역에서의 저항을 체감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시간이 흐른다면 자연스럽게 정치적 의지와 힘은 소멸해갈 것으로 보인다. 과감히 국민에게 주권을 부여하면서 국민과 함께 헤쳐 나가지 않으면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볼 수 있을까?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할 수는 없으니 시민의회를 통해 국민주권의 우선 순위와 내용을 정해보자. 국민의 헌법과 법률 발안권, 중대한 사회문제에 대한 국민투표권, 1조 원이 넘는 정부 광고를 국민에게 3만 원 정도의 미디어바우처로 주고 국민이 직접 좋은 미디어를 키우거나 직접 만들도록 해 언론주권을 주는 방법, 권한 없이 무늬만 있는 국민참여재판 대신에 미국처럼 시민들이 유무죄를 판단할 수 있는 배심제도 도입, 검찰과 사법카르텔을 깨기 위해 교육감처럼 지역 법원장·검사장을 직접 선출하는 방법 등등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방법의 국민주권방안과 정치적 상상력이 나올 것이다.

국민이 제안하는 국민주권의 내용들을 백서로 묶고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우선적으로 해야 할 10대 주권 핵심과제를 6개월 이상의 숙의과정을 통해 정해보자. 2020년에 프랑스 기후시민의회가 유사한 형태로 진행된 사례가 있으니 참고해서 진행하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프랑스 기후시민의회는 층위별로 무작위 추첨된 시민 150명이 9개월의 숙의과정을 거쳐 149개의 정책과제를 도출하고 실행하도록 권고했으며, 프랑스 전역에서 1만 회 이상의 토론회와 모임이 열렸다.

이름 붙이자면 '국민주권 시민의회'를 정부와 시민사회가 협력방식으로 진행해보자. 물론 시민사회가 주도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정부는 지원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만약 정부가 주도한다면 왜곡된 시민의회가 될 것이기에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관심이 없거나 주도하려고 하면, 시민사회는 독자적으로 기금을 마련해 추진하면 된다. 벨기에 시민사회가 6억 원의 기금을 모아 독자적으로 진행한 G1000 시민의회 프로젝트도 있으니 참조할 만하다.

윤석열 정권의 어처구니 없는 만행에서 가까스로 벗어났으나 한국사회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이재명 정부에서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하면 미래는 다시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4반세기 가량 세계 최고의 자살률 국가, 세계 최저의 출생률 국가를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금세기 안에 인구는 반 토막 나면서 국가 소멸의 단계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기후시민의회처럼 지역을 중심으로 1만 번 이상의 토론회와 자발적 모임들이 이뤄지도록 지원한다면 자연스럽게 보수와 진보, 남녀노소, 호남과 영남출신들이 함께 논의하고 집단지성을 모으는 민주주의 교육장이자, 훈련장이자 될 것이다. 대한민국 도약과 추락의 갈림길은 '국민주권'의 실현여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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